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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600258
한자 星州呂氏
영어의미역 Seongju Yeo Clan
이칭/별칭 성산여씨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기도 부천시 내동
집필자 김원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세거지 경기도 부천시 내동
입향시기/연도 1800년대
성씨시조 여양유
입향시조 여윤검

[정의]

여양유를 시조로 하고 여제분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부천시 세거 성씨.

[연원]

성주여씨는 여양유(呂良裕)를 시조로 하고 있다. 본래 성주여씨의 시조는 여어매(呂御梅)였다. 그러나 병란으로 관련 문헌이 소실되어 계보를 명확히 알 수 없게 되자, 후손들이 고려시대에 삼중대광(三重大匡)을 지낸 여양유(呂良裕)를 시조로 삼게 되었다. 여어매는 당나라 사람으로 877년(헌강왕 3)에 황소의 난을 피해 신라로 귀화해 성주[옛 성산]에 정착하였다. 이후 후손들이 성주를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성주여씨를 빛낸 인물로 여양유의 아들 여위현(呂渭賢)은 고려시대에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냈다. 조선시대에는 공조판서를 지낸 여극회(呂克誨)가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고, 5세손 여문승(呂文承)이 사복시정(司僕寺正)을 지내면서 성주여씨를 중흥시켰다. 중종 때의 유생으로 왕자사부(王子師傅)를 지낸 여희림(呂希臨)은 현량과에 합격했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성주에서 성리학 연구와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선조 때 군수를 지낸 여대로(呂大老)는 청백리에 피선되었다. 이밖에 조선 말기 의병장으로 전라북도 임실군의 대운치전투에서 전공을 세운 여주목(呂株穆)과 북간도에서 이동녕(李東寧)·이상설(李相卨)과 함께 서전의숙을 설립하여 후진 양성에 힘쓴 독립운동가 여준(呂準) 등이 있다.

[입향경위]

16세손 여제분이 경기도 과천에서 부천으로 이주하면서 세거하게 되었다.

[현황]

현재 성주여씨내동을 중심으로 부천시 전역에서 살고 있다. 부천시의 성주여씨는 원정공 여희감의 손자인 한성좌윤 여윤겸을 파조로 하는 좌윤공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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