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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장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600263
한자 安東張氏
영어의미역 Andong Jang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기도 부천시
집필자 김원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시기/연도 1500년대 말~1600년대 초
성씨시조 장정필(張貞弼)
입향시조 장세강(張世綱)

[정의]

장정필을 시조로 하고 장세강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부천시의 세거 성씨.

[연원]

『안동장씨대동속보』에 의하면 시조 장정필은 888년(진덕여왕 2)에 중국 절강성 소흥부에서 대사마대장군 장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를 따라 망명하여 강원도 강릉 땅에 머물다가 경상북도 노전으로 옮겨 살았다. 930년(태조 13)에 고창 성주인 김선평·판관 권행과 함께 태조를 도와 후백제 견훤의 군대를 대파하였다. 그 공으로 고창에 봉해져 후손들이 본관을 안동으로 하였다.

장정필의 15세손 장사길은 1390년(공양왕 2)에 밀직부사(密直副使)로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에 가담하여 공신에 책록되었다. 1392년(태조 1)에 조선 개국에 공을 세워 개국일등공신(開國一等功臣)에 녹훈되었고, 동지절제사(同知節制事)를 지냈으며, 1398년에 이방원의 난을 도와 정사이등공신으로 화산부원군(花山府院君)에 진봉(進封)되었다.

장사길의 삼남 장철은 1398년(태조 7)에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이방원을 도와 정사이등공신으로 화산군으로 봉해졌으며, 이어 첨절제사·영흥부사에 이르렀다. 장흥효김성일유성룡에게 글을 배우고 정구의 문하에서 학문을 연구하여 문장과 덕행으로 문명이 높았다. 장몽설·장낙현 부자는 순조홍경래의 난에서 공을 세웠다.

장세강(張世綱)[1525~1592]의 부친 장한공(張漢公)은 중종 때 정국공신 영산군(永山君)으로 시호는 충양(忠襄)이다. 장세강은 자는 기중(紀中)이고,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이 되었고, 임진왜란 때 신립(申砬) 장군의 종사관으로 탄금대 전투에 출전하였다가 달천(達川)에서 순절(殉節)하였다.

[입향경위]

안동장씨가 부천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장세강의 장인 채윤경(蔡允卿)에게 아들이 없어 장세강의 후손들이 외손봉사를 위해 경기도 김포로 내려와 김포파의 입향조(入鄕祖)가 되면서부터인 것으로 여겨진다.

[현황]

1985년 11월 1일 경제기획원의 자료에 의하면 부천에 거주하는 안동장씨는 231가구 915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관련유적]

장세강의 묘소가 경기도 부천시 작동에 있다. 장세강은 임진왜란 중에 전사한 관계로 시신을 찾지 못해 의관(衣冠)만으로 장례를 치렀다고 한다.

[참고문헌]
  • 『부천시사』 (부천시사편찬위원회, 2002)
  • 부천족보전문도서관(http://www.jokbo.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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