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토리분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600948
한자 三幕-
영어공식명칭 Sammakgol|Sammakgol Valley
이칭/별칭 삼말골
분야 지리/자연 지리
유형 지명/자연 지명
지역 경기도 부천시 작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영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전구간 삼막골 - 경기도 부천시 작동
해당 지역 소재지 삼막골 - 경기도 부천시 작동지도보기
성격 골짜기

[정의]

경기도 부천시 작동에 있던 골짜기.

[명칭 유래]

최현수의 『부천사연구』1[1992]에는 삼막골에 대하여 “새말에 소재한 소지명으로 지골 부근이다.”라고 하였다.

한도훈의 『부천의 땅이름 이야기』[2001]에는 “이 삼말골을 어원적으로 풀이하면 삼(三)의 고대어가 시(枾)이고 말은 마(馬)를 뜻한다. 삼정(三井)의 고대어가 시우물[三井里]에서 찾아질 수 있는 것에서 유추할 수 있다. 삼말골은 그러니까 시말골이라 불러야 한다. 또한 시는 감이다. 감은 ᄀᆞᆷ으로 삼한시대 이전의 족장을 의미한다. 삼말골은 ’ᄀᆞᆷ말골’이 변형된 것으로 [중략] 족장이 살고 있던 으뜸 골짜기를 말한다.”라고 하였다. 이것이 “숯을 구울 때 쓰던 막이 있던 골짜기라는 땅이름이라는 뜻인 삼막골로 바뀌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는 하오정면의 산곡명(山谷名) 조에 작동(鵲洞) 소재 삼막골[三幕谷]으로 조사되어 있다. 언문으로 ‘삼말골’로 썼다가 ‘삼막골’로 고친 것 같은데, 삼말골=시말골=ᄀᆞᆷ말골로 확대 해석하고 있다. 삼정을 시우물로 부르고, 삼이 시라는 주장에 대해 살펴보면 『지지조서(地誌調書)』[2019]에는 오정면 조에 삼정리(三井里)가 나와 있고, 『지지조서』 다주면의 십정리(十井里)에는 상십정리(上十井里)[윗열우물]와 하십정리(下十井里)[아ᄅᆡ열우물]라고 되어 있다. 삼[三=셋, 세]과 십[十=열]은 분명 의미가 다르므로 추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양경직은 『부천문화』88호[2014]에서 “삼정동은 과거 약대동에 속해 있을 때 부평 관아에서 보기에 바깥쪽에 있다고 하여 삼정동과 더불어 밖약대라고 불렀습니다. 이후 삼정동으로 나누고 마을에 세 개의 우물이 있다고 유래하여 시우물이라고 불렀습니다.”라고 적고 있다. 『지명조사철』[1959]에는 삼정리의 유래에 대해 “예전에 큰 우물이 세 개가 있고, 그 물맛도 좋고 하여 삼정이라 하였음”이라고 하였다. “삼의 고대어가 시”라는 말은 삼정을 시우물로 불렀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삼정이 시우물이 된 것은 세 우물[三井]→서우물→시우물의 변화 과정을 말하는 듯하나, 삼의 고대어가 시는 아니다. 그리하여 시가 감이고, 감은 ᄀᆞᆷ이며 족장이란 유추도 근거에 의한 추론이 아니다. 양경직은 『고강동·성곡동 마을지』[2015]에서 삼막골 유래에 대해 “항아리나 질그릇을 빚거나 가마에 불을 때기 위해 지었던 막사(幕舍)가 세 개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하였다. 막(幕)의 경우는 진(陣)이나 군막 등 군사 시설이거나 임시 거처의 의미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삼을 한 무리, 한 떼의 의미로 보아 숯이나 도기 등을 구워 생활하던 사람들의 거처로 제법 흥성했던 곳으로 볼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 발음상의 편의성에 주목한다면 ‘삼막골’은 발음상 산막골[山幕洞]에서 왔을 가능성도 있다.

[자연환경]

과거에 비릿내 혹은 베르네천이 흐르고 주위에 뽕골과 시루뫼, 탑골이 있던 곳이라고 한다.

[현황]

삼막골은 2022년 현재 지하철 7호선 까치울역 3번, 4번 출구 일대를 가리킨다. 인근의 시루뫼산 터에는 까치울 전원주택단지가 들어서 있으며, 수많은 음식점과 특색 있는 카페 등이 성업 중이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1.02 삼막골 <참고문헌> <문헌><서명 검색어='조선지지자료'>『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서명>(<출판사항>조선총독부, 1919</출판사항>)</문헌> <문헌><저자>김기빈</저자>, <서명 검색어='한국의 지명 유래'>『한국의 지명유래』</서명>1~4(<출판사항>지식산업사, 1990~1997</출판사항>)</문헌> <문헌><저자>이민우</저자>, <서명 검색어='한국지명사전'>『한국지명사전 1993-1994』</서명>(<출판사항>한국교열기자회, 1993</출판사항>)</문헌> <문헌>한도훈, 부천의 땅이름 이야기(부천문화원, 2001)</문헌> <문헌><서명 검색어='부천시사'>『부천시사』</서명>(<출판사항>부천시사편찬위원회, 2002</출판사항>)</문헌>
2010.12.16 삼막골 1) <지역>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작동 산7-1<공간 식별자='부천:삼막골' /></지역> --> <지역>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작동 산7-1 일대<공간 식별자='부천:삼막골' /></지역> 2) <소표제>[명칭유래]</소표제> <문단><지명 검색='1' 검색어='삼막골'>삼막골</지명>은 <서명 검색='0' 검색어=''>『조선지지자료』</서명>에 <지명 검색='0' 검색어=''>삼막곡(三幕谷)</지명>으로 표기되어 있다. 우리 말로는 <지명 검색='0' 검색어=''>삼말골</지명>·<지명 검색='1' 검색어='삼막골'>삼막골</지명> 두 가지로 불리고 있었다고 표기되어 있다. 한자로 표기하면서 <지명 검색='0' 검색어=''>삼말골</지명>은 포기하고 <지명 검색='1' 검색어='삼막골'>삼막골</지명>만 선택해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이 <지명 검색='0' 검색어=''>삼말골</지명>을 어원적으로 풀이하면 삼(三)의 고대어가 시(枾)이고 말은 마(馬)를 뜻한다. 삼정(三井)의 고대어가 <지명 검색='0' 검색어=''>시우물</지명>에서 찾아질 수 있는 것에서 유추할 수 있다.</문단> <문단>시는 감이고, 감은 으로 삼한시기 이전의 족장을 의미한다. <지명 검색='0' 검색어=''>삼말골</지명>은 말골이 변형된 것으로 여겨진다. 은 족장을 지칭하는 말이고 말[馬]은 으뜸이라는 뜻이므로 족장이 살고 있던 으뜸 골짜기를 말한다. <지명 검색='1' 검색어='삼막골'>삼막골</지명>에 샘이 있어 이 샘물을 기점으로 해서 족장의 주거지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해 본다. 삼한시기 족장이 살고 있는 골짜기라는 땅이름이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숯을 구울 때 쓰던 막이 있던 골짜기라는 뜻인 <지명 검색='1' 검색어='삼막골'>삼막골</지명>로 바뀌었을 것이다.</문단> --> <문단><지명 검색='1' 검색어='삼막골'>삼막골</지명>은 <서명 검색='0' 검색어=''>『조선지지자료』</서명>에 <지명 검색='0' 검색어=''>삼막곡(三幕谷)</지명>으로 표기되어 있다. 우리 말로는 <지명 검색='0' 검색어=''>삼말골</지명>·<지명 검색='1' 검색어='삼막골'>삼막골</지명> 두 가지로 불리고 있었다고 표기되어 있다. 한자로 표기하면서 <지명 검색='0' 검색어=''>삼말골</지명>은 포기하고 <지명 검색='1' 검색어='삼막골'>삼막골</지명>만 선택해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이 <지명 검색='0' 검색어=''>삼말골</지명>을 어원적으로 풀이하면 삼(三)의 고대어가 시(枾)이고 말은 마(馬)를 뜻한다. 삼정(三井)의 고대어가 <지명 검색='0' 검색어=''>시우물</지명>에서 찾아질 수 있는 것에서 유추할 수 있다.</문단> <문단>시는 감이고, 감은 으로 삼한시기 이전의 족장을 의미한다. <지명 검색='1' 검색어='삼막골'>삼말골</지명>은 말골이 변형된 것으로 여겨진다. 은 족장을 지칭하는 말이고 말[馬]은 으뜸이라는 뜻이므로 족장이 살고 있던 으뜸 골짜기를 말한다. <지명 검색='1' 검색어='삼막골'>삼막골</지명>에 샘이 있어 이 샘물을 기점으로 해서 족장의 주거지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해 본다. 삼한시기 족장이 살고 있는 골짜기라는 땅이름이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숯을 구울 때 쓰던 막이 있던 골짜기라는 뜻인 <지명 검색='1' 검색어='삼막골'>삼막골</지명>로 바뀌었을 것이다.</문단> <문단>이 <지명 검색='1' 검색어='삼막골'>삼막골</지명>이 <지명 검색='1' 검색어='서름이골'>서름이골</지명>, <지명 검색='1' 검색어='식골'>식골</지명>, <지명 검색='1' 검색어='봉천이골'>봉천이골</지명>과 더불어 <지명 검색='1' 검색어='봉배산'>봉배산</지명> 골짜기이다. 그러기에 <지명 검색='1' 검색어='봉배산'>봉배산</지명>에서 족장이 살았음을 나타내주는 움집들이 21채나 발견되어 <지명 검색='1' 검색어='삼막골'>삼막골</지명>의 유래를 증명해준다.</문단> 3) <소표제>[현황]</소표제> <문단><지명 검색='1' 검색어='지골'>지골</지명> 옆 <기관 검색='0' 검색어=''>황계가든</기관>이 있는 아래 골짜기를 말하고, <기관 검색='0' 검색어=''>황계가든</기관> 아래쪽에는 낚시터가 있다. 현재 이곳 중턱에는 포도밭이 가꾸어져 있고 논농사를 짓기 위한 논들이 계단식으로 연이어져 있다.</문단> --> <문단><지명 검색='1' 검색어='삼막골'>삼막골</지명>은 <지명 검색='1' 검색어='잠조당약수터'>잠조당약수터</지명>를 시작점으로 해서 그 옆으로 아래로 넓게 펼쳐진 골짜기이다. <지명 검색='1' 검색어='잠조당약수터'>잠조당약수터</지명>에서 흘러내려오고 <지명 검색='1' 검색어='삼막골'>삼막골</지명> 골짜기에서 내려온 물이 합류되어 신작동을 거친다. 다시 바로 곁에 있는 서름이골에서 내려온 물과 합류하고 아래에선 <지명 검색='1' 검색어='봉천이골'>봉천이골</지명> 물과 합쳐져 마침내 <지명 검색='1' 검색어='고리울내'>고리울내</지명>로 합류했다. 도시개발로 인해 <지명 검색='1' 검색어='삼막골'>삼막골</지명> 골짜기에 대규모 주택단지가 들어서면서 골짜기 면모가 사라지고 현재는 상류에 밭들을 일구는 정도로 밖에 남아 있지 않다. <지명 검색='1' 검색어='잠조당약수터'>잠조당약수터</지명> 주변은 베드민턴장이 거대하게 지어져 있다.</문단> 4) <참고문헌> <문헌><서명 검색어='조선지지자료'>『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서명>(<출판사항>조선총독부, 1919</출판사항>)</문헌> <문헌><저자>김기빈</저자>, <서명 검색어='한국의 지명 유래'>『한국의 지명유래』</서명>1~4(<출판사항>지식산업사, 1990~1997</출판사항>)</문헌> <문헌><저자>이민우</저자>, <서명 검색어='한국지명사전'>『한국지명사전 1993-1994』</서명>(<출판사항>한국교열기자회, 1993</출판사항>)</문헌> <문헌><서명 검색어='부천시사'>『부천시사』</서명>(<출판사항>부천시사편찬위원회, 2002</출판사항>)</문헌> --> <문헌><서명 검색어='조선지지자료'>『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서명>(<출판사항>조선총독부, 1919</출판사항>)</문헌> <문헌><저자>김기빈</저자>, <서명 검색어='한국의 지명 유래'>『한국의 지명유래』</서명>1~4(<출판사항>지식산업사, 1990~1997</출판사항>)</문헌> <문헌><저자>이민우</저자>, <서명 검색어='한국지명사전'>『한국지명사전 1993-1994』</서명>(<출판사항>한국교열기자회, 1993</출판사항>)</문헌> <문헌><서명 검색어='부천시사'>『부천시사』</서명>(<출판사항>부천시사편찬위원회, 2002</출판사항>)</문헌> <문헌>한도훈, 부천의 땅이름 이야기(부천문화원, 2001)</문헌>
2010.12.16 삼막골 1) <지역>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작동 산7-1<공간 식별자='부천:삼막골' /></지역> --> <지역>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작동 산7-1 일대<공간 식별자='부천:삼막골' /></지역> 2) <소표제>[명칭유래]</소표제> <문단><지명 검색='1' 검색어='삼막골'>삼막골</지명>은 <서명 검색='0' 검색어=''>『조선지지자료』</서명>에 <지명 검색='0' 검색어=''>삼막곡(三幕谷)</지명>으로 표기되어 있다. 우리 말로는 <지명 검색='0' 검색어=''>삼말골</지명>·<지명 검색='1' 검색어='삼막골'>삼막골</지명> 두 가지로 불리고 있었다고 표기되어 있다. 한자로 표기하면서 <지명 검색='0' 검색어=''>삼말골</지명>은 포기하고 <지명 검색='1' 검색어='삼막골'>삼막골</지명>만 선택해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이 <지명 검색='0' 검색어=''>삼말골</지명>을 어원적으로 풀이하면 삼(三)의 고대어가 시(枾)이고 말은 마(馬)를 뜻한다. 삼정(三井)의 고대어가 <지명 검색='0' 검색어=''>시우물</지명>에서 찾아질 수 있는 것에서 유추할 수 있다.</문단> <문단>시는 감이고, 감은 으로 삼한시기 이전의 족장을 의미한다. <지명 검색='0' 검색어=''>삼말골</지명>은 말골이 변형된 것으로 여겨진다. 은 족장을 지칭하는 말이고 말[馬]은 으뜸이라는 뜻이므로 족장이 살고 있던 으뜸 골짜기를 말한다. <지명 검색='1' 검색어='삼막골'>삼막골</지명>에 샘이 있어 이 샘물을 기점으로 해서 족장의 주거지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해 본다. 삼한시기 족장이 살고 있는 골짜기라는 땅이름이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숯을 구울 때 쓰던 막이 있던 골짜기라는 뜻인 <지명 검색='1' 검색어='삼막골'>삼막골</지명>로 바뀌었을 것이다.</문단> --> <문단><지명 검색='1' 검색어='삼막골'>삼막골</지명>은 <서명 검색='0' 검색어=''>『조선지지자료』</서명>에 <지명 검색='0' 검색어=''>삼막곡(三幕谷)</지명>으로 표기되어 있다. 우리 말로는 <지명 검색='0' 검색어=''>삼말골</지명>·<지명 검색='1' 검색어='삼막골'>삼막골</지명> 두 가지로 불리고 있었다고 표기되어 있다. 한자로 표기하면서 <지명 검색='0' 검색어=''>삼말골</지명>은 포기하고 <지명 검색='1' 검색어='삼막골'>삼막골</지명>만 선택해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이 <지명 검색='0' 검색어=''>삼말골</지명>을 어원적으로 풀이하면 삼(三)의 고대어가 시(枾)이고 말은 마(馬)를 뜻한다. 삼정(三井)의 고대어가 <지명 검색='0' 검색어=''>시우물</지명>에서 찾아질 수 있는 것에서 유추할 수 있다.</문단> <문단>시는 감이고, 감은 으로 삼한시기 이전의 족장을 의미한다. <지명 검색='1' 검색어='삼막골'>삼말골</지명>은 말골이 변형된 것으로 여겨진다. 은 족장을 지칭하는 말이고 말[馬]은 으뜸이라는 뜻이므로 족장이 살고 있던 으뜸 골짜기를 말한다. <지명 검색='1' 검색어='삼막골'>삼막골</지명>에 샘이 있어 이 샘물을 기점으로 해서 족장의 주거지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해 본다. 삼한시기 족장이 살고 있는 골짜기라는 땅이름이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숯을 구울 때 쓰던 막이 있던 골짜기라는 뜻인 <지명 검색='1' 검색어='삼막골'>삼막골</지명>로 바뀌었을 것이다.</문단> <문단>이 <지명 검색='1' 검색어='삼막골'>삼막골</지명>이 <지명 검색='1' 검색어='서름이골'>서름이골</지명>, <지명 검색='1' 검색어='식골'>식골</지명>, <지명 검색='1' 검색어='봉천이골'>봉천이골</지명>과 더불어 <지명 검색='1' 검색어='봉배산'>봉배산</지명> 골짜기이다. 그러기에 <지명 검색='1' 검색어='봉배산'>봉배산</지명>에서 족장이 살았음을 나타내주는 움집들이 21채나 발견되어 <지명 검색='1' 검색어='삼막골'>삼막골</지명>의 유래를 증명해준다.</문단> 3) <소표제>[현황]</소표제> <문단><지명 검색='1' 검색어='지골'>지골</지명> 옆 <기관 검색='0' 검색어=''>황계가든</기관>이 있는 아래 골짜기를 말하고, <기관 검색='0' 검색어=''>황계가든</기관> 아래쪽에는 낚시터가 있다. 현재 이곳 중턱에는 포도밭이 가꾸어져 있고 논농사를 짓기 위한 논들이 계단식으로 연이어져 있다.</문단> --> <문단><지명 검색='1' 검색어='삼막골'>삼막골</지명>은 <지명 검색='1' 검색어='잠조당약수터'>잠조당약수터</지명>를 시작점으로 해서 그 옆으로 아래로 넓게 펼쳐진 골짜기이다. <지명 검색='1' 검색어='잠조당약수터'>잠조당약수터</지명>에서 흘러내려오고 <지명 검색='1' 검색어='삼막골'>삼막골</지명> 골짜기에서 내려온 물이 합류되어 신작동을 거친다. 다시 바로 곁에 있는 서름이골에서 내려온 물과 합류하고 아래에선 <지명 검색='1' 검색어='봉천이골'>봉천이골</지명> 물과 합쳐져 마침내 <지명 검색='1' 검색어='고리울내'>고리울내</지명>로 합류했다. 도시개발로 인해 <지명 검색='1' 검색어='삼막골'>삼막골</지명> 골짜기에 대규모 주택단지가 들어서면서 골짜기 면모가 사라지고 현재는 상류에 밭들을 일구는 정도로 밖에 남아 있지 않다. <지명 검색='1' 검색어='잠조당약수터'>잠조당약수터</지명> 주변은 베드민턴장이 거대하게 지어져 있다.</문단> 4) <참고문헌> <문헌><서명 검색어='조선지지자료'>『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서명>(<출판사항>조선총독부, 1919</출판사항>)</문헌> <문헌><저자>김기빈</저자>, <서명 검색어='한국의 지명 유래'>『한국의 지명유래』</서명>1~4(<출판사항>지식산업사, 1990~1997</출판사항>)</문헌> <문헌><저자>이민우</저자>, <서명 검색어='한국지명사전'>『한국지명사전 1993-1994』</서명>(<출판사항>한국교열기자회, 1993</출판사항>)</문헌> <문헌><서명 검색어='부천시사'>『부천시사』</서명>(<출판사항>부천시사편찬위원회, 2002</출판사항>)</문헌> --> <문헌><서명 검색어='조선지지자료'>『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서명>(<출판사항>조선총독부, 1919</출판사항>)</문헌> <문헌><저자>김기빈</저자>, <서명 검색어='한국의 지명 유래'>『한국의 지명유래』</서명>1~4(<출판사항>지식산업사, 1990~1997</출판사항>)</문헌> <문헌><저자>이민우</저자>, <서명 검색어='한국지명사전'>『한국지명사전 1993-1994』</서명>(<출판사항>한국교열기자회, 1993</출판사항>)</문헌> <문헌><서명 검색어='부천시사'>『부천시사』</서명>(<출판사항>부천시사편찬위원회, 2002</출판사항>)</문헌> <문헌>한도훈, 부천의 땅이름 이야기(부천문화원, 2001)</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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