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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600963
영어공식명칭 Seommal|Seommal Village
이칭/별칭 널말,자연마을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기도 부천시 대장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영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섬말 - 경기도 부천시 대장동
성격 마을
가구수 50여 채

[정의]

경기도 부천시 대장동에 있는 마을.

[개설]

대장동은 조선시대 부평도호부 시절 주화곶면에 속했다가 1914년 부천군이 탄생되자 부천군 소속이 되었다. 1973년 부천군이 시로 승격될 때 김포군 오정면으로 이속되었다가 1975년 다시 부천시로 복귀하면서 부천시 오정동의 법정동이 되었다. 이 지역은 인천광역시 계양구 계산동으로 가는 길목이다.

[명칭 유래]

최현수의 『부천사연구』1[1992]에는 “섬말: 7통 지역”이라고만 언급하고 구체적인 명칭 유래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도훈은 『부천의 땅이름 이야기』[2001]에서 “섬말은 한강수리조합이 생기기 전에는 섬이었다. 한강수리조합이 생긴 뒤에도 서해 조수가 완전히 정리되기 전에는 나무토막과 널빤지를 이어 만든 다리가 있었다. 그러다가 이 다리가 없어지고 섬말과 큰말 사이에는 징검다리가 놓였다. 서해 조수가 이곳을 통과했기 때문이었다.”라고 하여 섬말의 기원은 과거에 이 지역이 서해 조수로 인해 섬이 되었던 것에 기인한다는 견해를 제기하였다.

[형성 및 변천]

큰말[6통 지역]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마을을 새롭게 형성하였다. 섬말 입구에는 마을 공동의 대동 우물이 있었고 50여 채의 집들이 마을을 형성하였다. 1923년 부평수리조합이 인가되고, 1925년에 완공되었다. 배수갑문은 홍수 시 문을 닫아 한강이 역류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전의 마을 단위 수리 시설 관리를 국가가 관리하는 체제로 바뀐 것이다.

경기도 부천시 대장동 일원도 당시에는 김포 땅이었다. 『지명조사철』[1959] 행정구역명 대장리의 ‘동부간선(東部幹線)’의 유래에는 “왜정 시 부평들을 개간하여 수리사업을 하기 위한 것으로 한강물을 퍼너어 부평들에 경작용 수리간선[水路幹線]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행정구역명 한강수리조합의 지명[A]의 ‘간선(幹線)’에는 유래에 대하여 “한강수리조합의 주요 수로(水路)로서 한강양수장에 연한 간선수로이어서 흔히 간선이라고 부르고 있음. 지도상 기재의 부평은 부르지 않고 있음”이라고 설명하며 지도상 정정을 요구하고 있다.

광복을 하고 1961년 양천수리조합은 양동수리조합과 합병되어 한강수리조합이 되었다. 한강 하구인 김포는 홍수 시 드넓은 평야가 대부분 범람원 역할을 하였다. 범람하게 되면 농토는 비옥하여 농사에는 적합했지만, 지대가 낮아서 침수에는 매우 취약하였다. 따라서 한강수리조합은 농사용 물 공급 못지않게 홍수의 피해로부터 농지를 보호하는 임무도 중요하였다.

[현황]

대장동은 드넓은 평야에 동부간선수로[데부둑]를 끼고 논농사와 밭농사가 주를 이루는 풍요로운 들녘으로 1960~1970년대의 모습이 남아 있는 추억의 고향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최근 3차 신도시 개발에 힘입어 새로운 아파트 단지로 거듭나기 위해 보상 및 기반시설 공사가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1.02 섬말 <참고문헌> <문헌><저자>김기빈</저자>, <서명 검색어='한국의 지명 유래'>『한국의 지명유래』</서명>1~4(<출판사항>지식산업사, 1990~1997</출판사항>)</문헌> <문헌><저자>이민우</저자>, <서명 검색어='한국지명사전'>『한국지명사전 1993-1994』</서명>(<출판사항>한국교열기자회, 1993</출판사항>)</문헌> <문헌>한도훈, 부천의 땅이름 이야기(부천문화원, 2001)</문헌> <문헌><서명 검색어='부천시사'>『부천시사』</서명>(<출판사항>부천시사편찬위원회, 2002</출판사항>)</문헌>
2010.12.16 섬말 1) <소표제>[현황]</소표제> <문단><지명 검색='0' 검색어=''>큰말</지명>에서 이주한 <인명 검색='0' 검색어=''>김진태</인명>의 오래된 옛 집이 남아 있는데, 집의 구조가 특이해서 지붕에 이층 마루가 덧대어져 있다.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에는 <기관 검색='0' 검색어=''>대장어린이집</기관> 자리에 연자방앗간이 있었는데, 지금도 연자방앗돌이 초입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예전에는 마을로 들어가는 길가에 대동우물이 있었다. 현재는 약 50여 채의 집들이 여기저기 늘어서 있다.</문단> --> <문단><지명 검색='1' 검색어='섬말'>섬말</지명>에는 <지명 검색='0' 검색어=''>큰말</지명>에서 이주한 <인명 검색='0' 검색어=''>김진태</인명>의 오래된 옛 집이 남아 있는데, 집의 구조가 특이해서 지붕에 이층 마루가 덧대어져 있다.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에는 <기관 검색='0' 검색어=''>대장어린이집</기관> 자리에 <지명 검색='0' 검색어=''>연자방앗간</지명>이 있었다. 지금도 <기관 검색='0' 검색어=''>대장어린이집</기관>이 다른 공장으로 바뀌었지만 연자방앗돌이 초입에 마을 장식으로 놓여져 있다. 예전에는 마을로 들어가는 길가에 대동우물이 있었다. 현재는 약 50여 채의 집들이 여기저기 늘어서 있다. 현재는 마을 북쪽에 공동우물이 있는데 사용하지는 않고 있다.</문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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