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토리분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601014
한자 店-
영어공식명칭 Jeommal|Jeommal Village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기도 부천시 여월동 170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경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점말 - 경기도 부천시 여월동 170지도보기
성격 마을

[정의]

경기도 부천시 여월동에 있던 자연 마을.

[명칭 유래]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는 하오정면(下吾丁面) 여월리에 있는 점촌(店村)[졈말]으로, 1918년 지도에도 ‘점촌’으로 쓰고 일본어로 ‘졈말’이라 표기하고 있다. 조선 후기에는 농업을 비롯한 모든 산업 분야에서 발전이 이루어졌다. 수공업 분야도 민영 수공업이 발달함에 따라 옹기점·유기점·철기점 등 수공업촌인 점촌이 전국에서 많이 생겨났다.

여월동 점말도 조선 후기부터 옹기장들이 모여 살며 옹기를 제작 판매하던 옹기점이 있던 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한편으로는 이름에 점(店) 자가 들어간 마을은 대개 옹기와 관련이 있으므로 점말 역시 점토(粘土)[찰흙]로 옹기를 굽는 마을이란 뜻이라고 유래를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점(店)을 점(粘)으로 잘못 해석한 데서 온 유래일 가능성도 있다. 한편 1866년(고종 3년) 병인박해를 피해 점말로 이주해 온 천주교도들이 두 개의 가마를 설치하고 옹기를 구워 팔아 생계를 이어 간 데서 유래하였다는 견해도 있다.

[형성 및 변천]

점말에서는 1980년대 말까지도 떡시루·화분·술동이 등을 생산하였으나 2000년대를 전후해서 가마는 없어지고 옹기를 성형하던 물레만 있었다. 마을 앞에는 200여 년 된 느티나무가 서 있었고, 길 건너 성골에는 돌을 캐는 채석장이 있었다. 그 때문에 성골에서는 도자기를 만드는 세라 아트 영업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현재는 여월휴먼시아 5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자연환경]

1970년대 지도를 보면 점말에는 길 건너 성곡보다 여러 채의 집이 더 있었다. 점말 앞으로 대로가 뚫려 있고, 당아래에서 장자골을 지나 봉골을 넘어 점말로 들어오는 소로길이 있었다.

[현황]

도시화가 진행되고 택지개발 사업이 진행되면서 옹기터마저 사라졌다. 2022년 현재 점말에는 부천여월휴먼시아 3단지가 들어서 있고, 점말 끝자락엔 부천옹기박물관부천시립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200년 된 느티나무는 옛날에는 점말 한가운데에 있었지만 지금은 여월로 한길가에 서 있다. 사루개고개로 넘어가는 여월공원에도 오래된 느티나무가 서 있다. 두 나무는 모두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3.08.26 [명칭유래] 수정 <변경 전> 점촌인 졈말로 표기되어 있다./ 질그릇을 구운데서 도자기마을 <변경 후> 점촌인 점말로 표기되어 있다./ 질그릇을 구운데서 옹기마을
2011.01.02 점말 <참고문헌> <문헌>한도훈, 부천의 땅이름 이야기(부천문화원, 2001)</문헌> <문헌><서명 검색어='부천시사'>『부천시사』</서명>(<출판사항>부천시사편찬위원회, 2002</출판사항>)</문헌> <문헌><서명 검색어='부천시의 역사와 문화유적'>『부천시의 역사와 문화유적』</서명>(<출판사항>부천시·한양대학교 문화재연구소, 2005</출판사항>)</문헌> <문헌><서명 검색어='내 친구 부천'>『내 친구 부천』</서명>(<출판사항>부천시, 2007</출판사항>)</문헌>
2010.12.17 점말 1) <소표제>[명칭유래]</소표제> <문단><서명 검색='0' 검색어=''>『조선지지자료』</서명>에는 <지명 검색='0' 검색어=''>점촌(店村)</지명>으로 표기되어 있다. 조선 후기 박해를 받던 천주교 신자들이 이 마을로 들어와 생계를 위해 질그릇을 구운 데서 마을 이름이 생겼다. 마을 이름에 ‘점’자가 들어간 동네는 거의 옹기나 그릇과 관련이 있는 마을이다.</문단> --> <문단><서명 검색='0' 검색어=''>『조선지지자료』</서명>에는 <지명 검색='0' 검색어=''>점촌(店村)</지명>인 졈말로 표기되어 있다. 조선 후기 박해를 받던 천주교 신자들이 이 마을로 들어와 생계를 위해 질그릇을 구운 데서 도자기마을이라는 마을 이름이 생겼다. 마을 이름에 ‘점’자가 들어간 동네는 거의 옹기나 그릇과 관련이 있는 마을이다.</문단> 2) <소표제>[형성 및 변천]</소표제> <문단>1866년(고종 3) 천주교 신자들이 병인박해를 피해 들어와 마을을 이루었다. 주민들은 두 개의 가마를 설치하고 질그릇을 구워 내다 팔아 생계를 유지하였으며, 옹기를 팔러 다니면서 천주교 신앙을 전파하기도 하였다. <지명 검색='1' 검색어='점말'>점말</지명>에서는 1880년대 말까지도 떡시루, 밥솥, 자배기, 술동이 등을 생산하였으나 지금 가마는 없어지고 흔적만 남아 있다.</문단> <문단>마을 앞에는 200여 년 된 느티나무가 서 있고, 길 건너 <지명 검색='0' 검색어=''>성골</지명>에는 돌을 캐는 채석장이 있었다. 그 때문에 <지명 검색='0' 검색어=''>성골</지명>에서는 도자기를 만드는 세라아트 영업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현대에 들어 생업으로 옹기를 굽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전문적으로 도자기 굽는 공장이 생겨났으나 택지지구 개발 공사가 시작되면서 옹기 굽는 사람들은 모두 이주하였다.</문단> --> <문단>1866년(고종 3) 천주교 신자들이 병인박해를 피해 들어와 마을을 이루었다. 주민들은 두 개의 가마를 설치하고 질그릇을 구워 내다 팔아 생계를 유지하였으며, 옹기를 팔러 다니면서 천주교 신앙을 전파하기도 하였다. <지명 검색='1' 검색어='점말'>점말</지명>에서는 1980년대 말까지도 떡시루, 밥솥, 자배기, 술동이 등을 생산하였으나 지금 가마는 없어지고 흔적도 없어졌다.</문단> <문단>마을 앞에는 200여 년 된 느티나무가 서 있고, 길 건너 <지명 검색='0' 검색어=''>성골</지명>에는 돌을 캐는 채석장이 있었다. 그 때문에 <지명 검색='0' 검색어=''>성골</지명>에서는 도자기를 만드는 세라아트 영업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현대에 들어 생업으로 옹기를 굽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전문적으로 도자기 굽는 공장이 생겨났으나 택지지구 개발 공사가 시작되면서 옹기 굽는 사람들은 모두 이주하였다.</문단> 3) <소표제>[현황]</소표제> <문단><지명 검색='1' 검색어='점말'>점말</지명>은 <지명 검색='1' 검색어='여월'>여월</지명> <지명 검색='0' 검색어=''>안동네</지명>에서 <지명 검색='0' 검색어=''>사루개고개</지명>를 넘어 남쪽에 있던 마을로 지금의 <지명 검색='1' 검색어='여월동'>여월동</지명> 입구 170번지 일대이다.</문단> --> <문단>1970년대 지도를 보면 <지명 검색='1' 검색어='점말'>점말</지명>에는 길 건너 성곡보다 여러 채의 집이 있었다. <지명 검색='1' 검색어='점말'>점말</지명> 앞으로 대로가 뚫려 있고, <지명 검색='0' 검색어=''>당아래</지명>에서 <지명 검색='1' 검색어='장자골'>장자골</지명>을 지나 <지명 검색='1' 검색어='봉골'>봉골</지명>을 넘어 <지명 검색='1' 검색어='점말'>점말</지명>로 들어오는 소로길이 있었다. 현재는 <지명 검색='0' 검색어=''>부천여월휴먼시아 아파트 단지</지명>가 들어서 있고, <지명 검색='1' 검색어='점말'>점말</지명>끝자락엔 <지명 검색='1' 검색어='부천옹기박물관'>부천옹기박물관</지명>이 들어서 있다. 200년된 느티나무는 옛날에는 <지명 검색='1' 검색어='점말'>점말</지명> 한 가운데에 있었지만 지금은 <지명 검색='0' 검색어=''>여월로</지명> 한길가에 위치해 있다. 사루개고개로 넘어가는 <지명 검색='0' 검색어=''>여월공원</지명>에도 오래된 느티나무가 서 있다. <지명 검색='1' 검색어='점말'>점말</지명> 위쪽에 <기관 검색='0' 검색어=''>대한불교조계종삼보사</기관>가 위치해 있다.</문단>
이용자 의견
오** 명칭유래-첫줄 졈말->점말
도자기마을보다는 옹기마을로 표현하는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 답변
  • 디지털부천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당 부분 확인 후 수정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2013.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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