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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601922
한자 樹州誕生百週年記念脾
영어의미역 Monument for Suju's 100th Birth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유적/비
지역 경기도 부천시 수주로 64-1[고강동 산 63-7]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유영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비|시비
건립시기/일시 1998년 4월연표보기
관련인물 수주 변영로
재질 화강석|마천석
높이 159㎝
너비 41㎝[가로]|118㎝[세로]
소재지 주소 경기도 부천시 수주로 64-1[고강동 산 63-7]
소유자 밀양변씨 종중

[정의]

경기도 부천시 고강동에 있는 수주 변영로 기념비.

[개설]

수주 변영로는 1898년 5월 9일 서울 회현동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했다. 변영로의 아호는 고려 때의 부천 행정 명칭인 수주(樹州)이며,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의 일장기 말살 사건과 관련하여 동아일보사를 퇴사하면서 향리 고강동에서 큰 형 변영만, 둘째 형 변영태와 칩거하기도 했다.

변영로는 14살에 영시 「코스모스」를 1914년 『동명』에 발표한 천재 시인으로 3·1운동 당시에는 YMCA에서 「독립선언서」를 영문으로 번역하여 해외에 발송하기도 하였다. 3·1운동 실패 후 희망을 잃은 젊은 세대들에게 민족 의식을 고취시킨 애국적인 시인이다.

[건립경위]

변영로가 태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1998년 4월에 복사골 문학회에서 심포지엄을 마련했고, 변영로를 존경하며 따르던 이용상이 변영로 묘 앞에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묘비를 세우고 비문을 썼다.

[형태]

묘비 형태로 묘비에는 한옥의 지붕이 있다. 비의 높이는 159㎝이고, 가로 41㎝, 세로 118㎝이다.

[금석문]

"사람들이여! 수주가 누구더냐. 호탕한 시인이더냐. 두주불사 경음(鯨飮)이더냐. 천재의 생애는 그렇게도 고독한 것이라더라. 특히나 스스로의 자존과 자유 없이는 인생이 무의미했던 수주가 아니었더냐. 빼앗긴 조국에서, 불우한 세월 속에서 쌓이고 쌓인 수주의 분노는 경음(鯨飮)이 아니고서야 어찌 달랬겠는가.

울분에 취하고 술에 취하고 수주는 하루에도 억 년을 울고 갔던 사람, 수주는 그토록 영원한 고행의 순례자였다. 수주는 우리의 민족이 가장 어려웠던 고난의 시기에 이 땅에 다녀간 불후의 음창(吟唱) 시인이었다. 우리들은 쓰라린 가슴의 수주 변영로 선생을 기억할 것이다.

저 난 고장에 살면서도/ 나그넨양 서투를 뿐/ 먹고 자긴 제 집이나/ 울고 우네 아닌 상하여"

-수주 「포도(鋪道)를 걸으며」에서-

[현황]

밀양변씨종친회에서 관리하며, 복사골 문학회에서 기념일에 참배하기도 한다.

[의의와 평가]

시인이며 지식인 수주 변영로를 기리기 위해 묘비를 세운 것은 변영로의 생애가 우리 민족의 고난의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변영로가 부천을 고향으로 둔 역사적 인물이기에 변영로의 업적을 돌에 새겨 세상에 길이 남기고자 함이다. 이는 현재를 사는 우리들에게 보배로운 정신적 유물로 남기려는데 큰 의의가 있다 하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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