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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602014
영어의미역 Village Tutelary Festival in the Jangmal
이칭/별칭 도당할아버지굿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경기도 부천시 중동 장말
집필자 변남섭

[개설]

부천 장말도당굿은 덕수장씨들의 집성지인 장말에서 오래도록 전해 내려온 마을 공동체적 축제로 승화된 굿 의식이다. 덕수장씨들은 평택에서 임진왜란을 전후로 이곳으로 이주해 와 농경을 주업으로 생활을 하면서 음력 10월 10일을 맞아 추수에 대한 감사 의식과 마을의 안녕을 위해서 조상을 섬기고 조상의 음덕을 기리는 행사로 치러왔다.

장말의 굿 의식은 전통적인 경기도 도당굿의 절차로 나타나고 있으며, 도당할아버지라고 부르는 장씨 문중에서 도당신에게 선택을 받은 인물과 무녀와 화랭이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의식으로 타 지역의 도당굿과는 또 다른 형태로 나타나는 의식이다. 장말도당굿에서 모시는 신위는 도당할아버지와 도당할머니 그리고 돌팡구지라고 부르는 암석과 당나무인 서낭을 모신다. 그러나 이 모든 신위보다도 장말에서는 덕수장씨의 조상신을 우선적으로 섬긴다고 할 것이다.

장말은 여느 당처럼 탱화를 그려 모신 것이 아니고 당 안 천장 가로대에 도당굿을 할 때 걸어 놓은 흰 소창이 즐비하게 걸려 있다. 특히 장말도당굿의 가장 두드러진 점은 조상신의 현신(顯神)이다. 조상신은 바로 도당할아버지 자신이다. 도당할아버지는 당에 모셔져 있는 도당신의 신복인 두루마기를 입고 굿을 진행하는데 그 옷을 입는 순간 조상신과 접신이 되어서 본인 스스로가 조상으로 현신하게 되는 것이다.

[마을의 굿, 도당굿]

촌락공동체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마을굿은 부족국가 시대 이래의 유구한 전통으로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의 것이며 협동을 다짐하는 민중의 축제이다. 한 마을에 사는 사람들끼리 모여 동네의 재수를 빌고 한해가 무사하게 지내기를 기원하는 마을굿은 고대 국가적인 규모로 행해졌던 종교 의식과도 그 맥락이 닿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경기도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굿은 정월과 10월에 마을의 안녕과 가내의 안과태평을 기원하고 생업의 형태에 따라서는 풍농이나 풍어를 기원하며 대동(大同)이 모두 참여하는 도당굿이다. 이는 지역의 특성에 따라 곶창굿, 성황굿으로도 불린다.

이규경(李奎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州衍文長箋散稿)』에 보면 “옛날 우리 나라에는 호랑이나 범에 의한 피해가 많아 밤에는 집 밖으로 출입을 하기 어려웠다. 백성들이 돈을 모아 제물을 마련하여 동리의 진산(鎭山)에 있는 신당(神堂)에서 제를 올렸는데 무격들이 분으로 단장하고 북을 두드렸는데 이를 도당제라 한다.”는 기록이 있다.

그 도당이 처해 있는 지리적인 여건에 따라서 모셔지는 신위가 각기 다르게 나타는데 내륙 지방에서는 대개 산치성이나 산제라고 하여서 도당할아버지나 도당할머니가 산신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경기도의 서해안과 섬 지방의 풍농과 풍어의 성격을 함께 띠고 있는 도당굿도 섬기는 신위는 용왕이나 임경업 장군 혹은 바다라는 지역적 특성과 무관하지 않은 신격(神格)들을 모시고 있는 경우가 많다.

섬 지역인 제부도·영종도·떼무리섬·살섬·용유도·덕적도 등에서도 풍어를 위한 대동굿을 풍어제라고 부르지 않고 도당굿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그 절차나 의례를 보아도 서해안 별신굿으로 나타나는 풍어제와는 다르다. 또한 해안가에 나타나는 각종 도당굿의 주무(主巫)를 보면 강신(降神)을 받은 기능세습무(技能世襲巫)와 단골무들이 공유하고 있어서 경기도 내의 도당굿에서 보이는 형태의 다양함을 알 수 있다.

경기도 도당굿은 일반적으로 한강 이남 지역에 전해져 오는 마을굿을 가리키는데, 많은 지역의 전승이 끊어지고 지금은 부천의 장말에서만 완전한 형태의 경기도 도당굿을 볼 수 있다. 굿은 오전에 시작해서 다음날 아침에 끝나며, 집안의 대를 이어 기능을 연마하고 음악과 무용에 뛰어난 세습무당이 진행한다. 경기도 도당굿은 다른 지방의 도당굿과는 다르게 남자 무당인 화랭이들이 굿의 많은 부분을 연행하고 춤이 단아하며 우리 음악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장단(長短)이 다른 지역보다도 짜임새 있고 다양하게 나타난다.

음악은 장구·징·꽹가리·북 등의 타악기와 피리·대금·해금이 어우러져 대취타 같은 궁중음악에서부터 자진굿거리와 같은 신나는 가락이 연주된다. 무가에 있어서는 섭채장단에 얹어 부르는 본풀이를 비롯하여 판소리와 같은 형태의 노정기와 놀이를 통하여 액을 물리치는 굿놀이인 뒷전 등이 펼쳐짐으로써 독특하고 풍부한 예술성을 지니고 있다.

[할아버지당 할머니당의 이야기]

장말도당굿은 현 부천시 중동에 있는 당에서 이루어지는데 현재의 당은 주변을 정리하고 당을 보수하여 담장을 둘러쳐서 보존하고 있다. 기와지붕에 한 칸으로 되어 있다. 원래는 1982년까지만 해도 두 개의 당이 있었다. 현재의 당은 중동 범양아파트 뒤에 있고 그 곳에서 150여m 정도 떨어진 곳에 당나무가 있다. 그리고 당의 오른쪽에는 돌팡구지라고 부르는 신석(神石)이 있는데 이 돌은 가로 4m, 세로 2.5m 높이 1m 가량 되는 큰 바위로 암석숭배로 위해지는 대상이다.

이 돌은 고인돌로 추정되고 있으며 할아버지당(큰당, 웃당이라고도 한다) 옆에 자리하고 있으며 마을을 수호하고 부와 다산을 기원하는 기자석(祈子石)의 기능도 함께 갖고 있다. 또 하나의 당은 할머니당(아랫당, 작은당이라고도 한다)으로 헐리기 전에는 개저나무와 당집으로 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헐리어서 흔적조차 찾기가 어렵다.

이 할머니당의 당집은 일제강점기에 있던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지었는데 그때 허문 자리에서 조그마한 쇠말뚝이 하나 나왔다고 한다. 이 쇠말뚝은 묘하게도 한 다리를 들고 있었다고 하는데 마을에 전하는 전설을 보면 임진왜란 때 이 마을에 용감한 장씨 장군이 있었는데 왜군이 놓은 덫에 치여 사람과 말의 다리가 부러진 일이 있어 장군을 기념하기 위해서 도당굿을 할 때 도당할아버지가 외다리 춤(깨끔춤)을 춘다고 한다. 그러나 도당굿에서 추어지는 깨끔춤은 화랭이들이 각처의 도당굿에서 터벌림이나 진쇠춤 등에서 추는 동작으로 장말에 전해지는 전설은 장말이 도당굿의 원조임을 나타내기 위해서 나타난 설화로 보인다.

[부정을 물리치고 재액을 없애는 마을굿]

10월이 되면 마을에서는 굿이나 고사를 담당할 당주를 선정한다. 제물을 준비하고 굿을 총괄하는 앉은당주와 재정, 물건 구입 등 바깥일을 맡는 선당주 두 명을 생기복덕을 가려 뽑는다. 굿날이 정해지면 당주들은 부정을 피하기 위하여 상가나 해산한 집 등을 가거나 보지 않고 출입을 삼간다.

본굿을 하기 전날 저녁에 마을에서 정해진 당주 집에서 행해지는 당주굿으로 시작된다. 당주굿은 저녁 7시경에 시작되는데 일반적인 경기도의 안당굿과 같은 형태로 진행된다. 본굿은 부정굿→ 도당모셔오기→ 돌돌이→ 장문잡기→ 시루돋음→ 시루말→ 꽃반세우기→ 제석굿→ 터벌림→ 손굿→ 군웅굿→ 중굿→ 도당할머니굿→ 도당 모셔들이기→ 뒷전의 순으로 진행된다.

부정굿은 화랭이가 앉아서 장구를 치며 무가를 부르는 것으로 시작하고 이어서 무녀가 선부정을 치는데, 악사들이 부정장단을 치면 무녀가 부채와 방울을 들고 부정청배 무가에 이어서 무가를 부르면서 굿청에 모인 모든 잡귀와 잡신을 물리치고 굿청을 깨끗이 해서 굿이 더 영험하기를 바라는 굿이다.

부정굿이 끝나면 도당할아버지는 도당할아버지옷을 입고 부채와 희고 긴 수건을 들고 할아버지당으로 간다. 할아버지당인 돌팡구지 앞에 상을 차려 놓고 절을 한 뒤 여러 차례 격렬한 춤을 추어 도당신을 모셔가지고 할머니당으로 돌아가 좌정시킨다.

마을의 사방에는 장승이 세워지고 돌돌이가 시작된다. 돌돌이는 수살(守煞)의 기능을 갖고 있는데 오방장군(五方將軍)의 기를 앞세우고 도당할아버지와 군웅할머니를 앞세우고 악사들이 뒤를 따르면서 길군악을 친다. 정해진 신목(神木: 장승의 기능을 갖는다)에 도착하면 화랭이가 장승굿을 하고 나무에 북어를 길지로 엮어 매단 후 다시 길군악을 치면서 간다. 장승이 끝나면 공동우물과 개인우물 순으로 고사가 이어진다. 현재는 마을을 도는 형태로만 이루어진다.

당으로 돌아 온 일행은 당 앞에 의자를 놓고 군웅할머니를 좌정시킨 후 대취타 등의 음악을 연주하고 소리를 한대목 하고 춤을 추는 등 여러 재주를 보여준다. 이는 재주를 보임으로 굿을 하는 잽이들의 기예를 뽐낸다는 것과 돌돌이의 결과를 보고하는 등의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이어 당앞에 시루를 놓고 시루돋음을 한다. 시루상을 앞에 놓고 시루 머리에 도당할아버지가 와서 자리를 잡으면 시루청배에 이어서 마을이 편하도록 축원을 하고 소지를 올린다. 시루말이 끝나고 나면 보통은 제석거리가 오는데 장말의 특별한 꽃반세우기가 이루어진다. 무당이 참여하지 않고 도당할아버지가 하는 거리이다.

도당할아버지가 신을 청배해 자신에게 신이 강림이 되면 마을의 집집마다 바친 꽃반(상에 쌀을 수북히 쌓은 후 초를 꽂는다)에 부채를 세워 부채가 서면 그 집이 평안하다고 하여서 꽃반마다 부채를 세운다. 이때 도당할아버지가 추는 춤이 깨끔춤이라고 하여서 한쪽 다리를 들고 추는데, 도당굿에서 흔히 나타나는 터벌림춤의 동작과 유사하다. 꽃반세우기는 별도로 진행을 하기도 하고 군웅굿 뒤에 도당할아버지굿에서 하기도 한다.

화랭이가 앉아서 장구를 치며 제석본풀이로 신을 청배하면 무녀가 서서 제석거리를 한다. 흰 고깔에 붉은 띠를 두른 장삼을 입고 본풀이 마당, 당공수, 장삼춤, 당놀림, 「바라 타령」, 「거리 노래」 등 많은 장단과 무가 춤 등을 하며 자손의 명과 복을 기원한다.

손굿에 앞서 손님마마라는 바깥의 신과 마을을 지키려는 안의 신이 서로 씨름을 했다는 깨낌이 이루어졌다고 하나 지금은 여흥거리라는 터벌림으로 기예를 보인다. 손굿은 천연두를 손님마마라 하여 모시는 굿으로 화랭이가 판소리와 같은 형태로 손님이 강남서 장말까지 오시는 노정기를 길게 연행한다.

도당굿에서 중요한 거리로 여겨지는 군웅굿은 화랭이의 앉은 청배로 시작되어 무녀가 서서 무가를 부르고 군웅상을 중심으로 사방 방수밟이를 한 후 닭을 놀리고 활을 쏘아 마을의 액운을 물리친다. 이어서 무녀와 화랭이가 쌍군웅을 선다. 화랭이는 꽹가리를 치고 무녀는 철륙자락으로 마주서서 춤을 추며 사방 방수를 밟는다. 마을이 잘되라는 공수와 소지를 올리는 도당할머니굿을 한다. 굿을 마치고 나면 도당할아버지가 돌팡구지로 도당신을 다시 모셔간다.

마지막 뒷전에서는 미리 짚으로 만들어 놓은 정업이(정애비)를 당 앞으로 옮겨 놓고 화랭이가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터벌림춤 동작을 하면서 나타난다. 예전에는 화랭이와 광대가 함께 뒷전의 재담을 하고 서로 붙들고 씨름을 하기도 하는 등 극적인 요소가 많았으나 현재는 정업이 놀이만 한다.

의딩이(의둔이라고도 한다)라는 명칭을 쓰는 화랭이가 정업이를 들고 재담을 하면서 정업이를 때리기도 하고 씨름을 하기도 하면서 정업이에게 마을에 있는 모든 재액을 걷어가고 잡귀 잡신을 걷어가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그러다가 정업이를 타고 앉아서 「집장가」를 부른 후에 정업이를 불지른다. 이렇게 해서 도당굿이 끝나게 되면 굿판에 모인 많은 사람들이 서로 어우러져 춤을 추고 음식과 술을 먹고 마시면서 함께 즐긴다.

[뿌리이자 정신적인 지주]

장말도당굿은 40여 년 전인 1960년대만 하여도 격년으로 음력 10월 10일에 행해졌으나 그 후 쇠퇴 일로에 있다가, 1990년 10월 10일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98호 경기도 도당굿으로 지정되면서 활기를 띠며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그 후 1992년 9월 8일에는 장말 도당의 유래비를 세우고 1992년, 1993년, 1994년 계속해서 도당굿을 열었으며 현재는 음력 10월 10일마다 도당굿을 펼치고 있다.

주무는 장한복을 이어받아 장현수 도당할아버지와 장말도당굿보존회가 이끌어 가고 있으며 무녀로는 경기도 도당굿의 기능보유자였던 고 조한춘과 장모 서간난, 그리고 수원 화랭이 이용우와 오수복 등이 맡아서 하다가 경기도 도당굿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은 후 조한춘과 오수복에 의해서 굿이 진행되었다. 현재는 1995년 조한춘이 타계하자 기능보유자 오수복과 화랭이 오진수 등의 경기도도당굿보존회에 의해서 굿이 진행되고 있다.

근래에는 전통의 방식을 잘못 이해하는 이웃이 있어서 도당을 모셔 가지고 인근 부천중앙공원에서 굿을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좁은 당보다 넓은 곳에서 하면 많은 시민들이 올 수 있어 시 차원의 행사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다행이다. 여기에 장씨 자체적으로 도당굿보존회를 결성하여 당을 관리하고 도당굿을 준비·진행하며 시에서도 후원하고 있어 시대에 맞추어 거듭나는 장말도당굿이 되리라 믿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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