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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6B020202
지역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작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조택희

“복숭아가 팔리지 않으면 오목교[목동]까지 들고 가서 팔기도 하고 그랬지. 오목교 둑방 너머 집들이 많았으니까.”

부천은 대표적인 여흥민씨 집성촌으로 많은 여흥민씨들이 모여서 살고 있는 공간이다. 그 중 한 명인 민경재 할아버지는 부천 복숭아에 대한 즐거운 기억들을 몇 가지 꺼내 놓으셨다. 특히 복숭아 서리는 고픈 배를 채우고 동네 친구들과 추억을 남기는 수단이었다고 한다.

“복숭아나무도 무척 많았지만, 수박밭도 많아서 복숭아랑 수박이 서리의 주 대상이 되곤 했지. 늦은 시간에 복숭아나무 사이로 들어가 몰래 복숭아를 따기도 하고, 수박은 몰래 기어 다니면서 조금씩 깨물어봐서 익은 것을 찾아냈어. 과수원 원두막이 있었지만 실제로 사람이 지킨 적은 많지 않아서 잡힌 적은 드물었지.”(민경재, 작동 토박이, 1931년생)

하지만 어린 시절의 복숭아 서리에 대한 즐거움은 잠시, 할아버지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나무지게를 지고 복숭아를 직접 팔러 다녀야 했다고 한다. 요즘은 복숭아를 수확하면 여러 방법과 경로 등을 통해서 처분할 수 있지만 당시에 주로 활용했던 방법은 그저 아낙들이 광주리에 복숭아를 잔뜩 담아서 머리에 이고 다니며 직접 팔러 다니는 것뿐이었다.

농부들은 지게를 이용하거나 좌판을 벌려 복숭아를 팔았는데 할아버지도 오류초등학교 근처에 좌판을 깔고 복숭아 노점을 시작했다. 불법으로 장사를 시작했으니 순경들의 등쌀이 여간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자리에서 장사를 하니 고생은 덜한 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목청껏 소리를 질러도 못 팔 때가 허다하니 재차 나무지게를 지고 길거리로 나왔다. 부천에서 복숭아가 팔리지 않을 것 같으면 지금의 오목교[목동]까지 들고 가서 장사를 계속 하셨다는데 그 근처에는 일반 가정집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민경재, 작동 토박이, 1931년생)

염치 불구하고 주택가에 판을 깔고 얼마 간 가격을 낮추어 목청을 높이면 아낙들이 대부분 떨이로 사 갔단다. 남는 장사는 아니었지만 손해는 얼마간 만회할 수 있었다. 산 넘고 물 건너 부랴부랴 자리를 잡은 시장에서 인근 마을로, 그리고 마을에서 또 다른 마을로 쉴 새 없이 걸음을 재촉한 민경재 할아버지. 딱히 타고 갈 것이 없어 또 다시 백리 길을 되짚어 갔을 그 뒷모습이 연상되어 마음이 절절하다. 유난히 걸걸하고 다부진 목소리, 그 안에는 강한 삶의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정보제공]

  • •  민경재(작동 토박이, 1931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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