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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고단함을 잊는 황금시간 니나노~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6B020303
지역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작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조택희

막걸리 한 사발에 목청을 틔우며 시름을 달래주던 니나놋집

교통편이 좋지 않았던 시절, 작동 주민들은 나무로 만든 사과박스에 과일과 채소를 잔뜩 싣고서 화물차를 부르거나 소마차에 복숭아를 싣고 시장으로 출발했다고 한다.

장사가 잘 되는 날이면 사람들이 꼭 거치는 곳이 있었다. 생활이 고단하고 어려웠던 시절, 해가 떨어지고 땅거미가 짙어질 무렵이면 생활과 일에 찌든 노동자들이 피곤과 시름을 달래기 위해 삼삼오오 어울려 찾아들던 이른바 ‘니나놋집’이었다.

어려웠던 시절 해가 떨어지고 땅거미가 짙어지면 도시의 한 모퉁이에는 어김없이 젓가락 장단에 맞춰 하루의 고달픔을 달래는 노랫가락 소리가 이 골목 저 골목에서 울려 퍼졌다. 복숭아를 팔고 돌아서는 상인들이 거나하게 취해 부르는 한 곡조 한 곡조는 서민들의 시름만큼이나 애달픔이 물씬 풍겨났다. 단숨에 연거푸 몇 잔을 들이킨 시장 상인들의 얼굴은 금세 붉어졌다. 상인들은 비록 하루 끼니를 위해 헤매는 노점상이지만 언젠가는 큰 돈 모아 떳떳하게 살 수 있을 거라면 희망을 새기며 술잔이 깨어지도록 건배를 외쳐대곤 했다.

이렇게 니나놋집은 당시를 살아가는 우리네 평범한 사람들에게 편안한 휴식처요, 내일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보약과도 같은 존재로서 사람들을 위로하고 달래주었다.

그런데 즐겁게 들이킨 술 한 잔이 돌이킬 수 없는 과오로 연결되는 경우도 있었다.

깡시장이 새벽 5시나 6시쯤이면 시작하니까 직접 가지고 팔러 다니기도 했지. 내가 소마차를 끌고 출발하면 형은 버스를 타고 깡으로 가는 거야. 그래서 팔고 올 때는 한 사람이 돈 관리를 하고 한 사람이 마차 관리를 했지. 그런데 하루는 형이 돈 관리를 했어. 그런데 복숭아를 팔고 오다가 돈을 소매치기를 당해서 그대로 다 잃어버린 적이 있었어. 그때 형이 아주 몇날며칠을 앓아누웠다고.”(한경택, 복숭아 과수원 주인, 1942년생)

그 때 잃어버린 돈 액수가 대략 3~4만 원 정도. 버스요금이 4원 할 때니 매우 큰돈이었다. 복숭아를 팔고 오는 길에 벌막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 곳에 술집이 많았다고 한다.

장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친구들과 자주 들러 회포를 풀었다고 하는데 모처럼 두둑한 지갑에 콧노래를 불렀을 사람들, 그 가운데 우애가 두터웠던 두 형제도 있었을 것이다.

막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하루살이 인생들이 막걸리 한 사발에 목청을 틔우며 시름을 달래주던 ‘니나놋집’, 고단한 하루일과를 끝내고 삼삼오오 모여서 거나하게 하루의 피곤함을 풀었던 ‘니나놋집’. 이처럼 괴로워도 한 잔, 슬퍼도 한 잔, 즐거워도 한 잔 인생의 쓴맛 단맛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그 낭만의 ‘니나놋집’은 언제부터인가 고급화된 향락문화에 밀려 우리의 곁에서 완전히 종적을 감췄다.

[정보제공]

  • •  한경택(복숭아 과수원 주인, 1942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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