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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6D010201
지역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송내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웅규

부천의 유서 깊은 교육지대

송내동은 부천에서 교육열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적으로 부천의 명문학교인 부천고등학교를 중심으로 십 여 개의 학교가 송내동에 몰려있으며 유서 깊은 학교 상당수가 이곳에 터를 잡고 있다.

“왜 학교가 송내동에 많이 생겼냐 하면 땅 주인들이 학교를 유치할 수 있는 부지를 선뜻 내놓았기 때문이에요. 지금 부천여고는 당시에 부지를 확보를 못해서 다른 학교들과 동떨어진 곳에 지을 수밖에 없었어요. 원래 부천중학교 위에다 세우려고 그랬거든요.”(신동명, 지역 토박이, 1954년생)

이렇게 송내동에는 뜻 있는 몇몇 사람들의 도움으로 학교가 세워지게 되었다. 학교를 설립하는 데 가장 중요한 부분인 학교 부지가 해결된 것이었다. 당시 부천에는 학교 수가 많지 않아서 대부분 학생들이 서울까지 통학하던 때였다. 품을 팔아 생활하던 주민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작은 정성을 보태서 열악한 교육여건을 해결하고자 했다. 자라나는 후학을 위해 물질적인 도움을 아낌없이 제공하는 분들도 있었다.

부천공고가 생기기 전에 야산이 있었는데 그 야산이 옛날 교육감이었던 신능순 씨 산이였죠. 조상님이 물려주신 재산이니 얼마나 귀하겠어요. 그런데 그 분이 학교를 확장하라고 산 일부를 내놓은 거에요. 그래서 부천공고를 확장하고 당신 임기 때 부천고등학교를 세웠어요. 부천여중도 유치했고요. 이렇게 세 개의 학교가 들어오면서 송내동이 학교타운이 됐다시피 했지요. 아직도 부천여중에 가면 300년 된 나무가 있어요. 그 나무는 원래 신능순 씨의 본가 마당 끝에 있었던 나무인데 학교 부지가 확정되면서 나무가 자연스럽게 포함되었어요.”(신동명, 지역 토박이, 1954년생)

이처럼 송내동이 교육 중심 지역으로서 자리를 잡게 된 것은 학교를 짓기에 좋은 입지조건이기도 했지만 넓은 대지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흔쾌하게 학교를 짓도록 땅을 내놓았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상류층의 도덕적 의무이기도 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서구의 전통으로 보지만 우리 민족 역시 품앗이·향악·계·두레 등 마을단위의 조직적인 자선과 기부활동의 전통을 갖고 있었다. 기나긴 전쟁과 산업화를 거치면서 나눔의 문화가 퇴색했을 뿐이다. 송내동은 비록 빠른 도시화를 겪었지만 자선사업과 공공사업을 위한 자발적인 참여율이 높았고 그 결과 수준 높은 문화도시로서 정체성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 송내동은 지역을 대표하는 초·중등지역 교육기관들을 토대로 교육의 기능을 확대하면서 교육 중심지역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정보제공]

  • •  신동명(지역 토박이, 1954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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