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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600160
한자 高麗時代
영어의미역 Goryeo Period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기도 부천시
시대 고려/고려
집필자 배성수

[정의]

918년에서 1392년까지 고려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경기도 부천 지역 역사.

[행정구역의 변천]

936년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는 940년(태조 23) 전국에 있는 지방 군현의 지명을 바꿨다. 이때 부천의 지명도 장제군에서 수주(樹州)로 개칭되었다. 995년(성종 14)에는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기 위해 전국에 지방관을 파견하였다. 이때 수주에도 단련사(團練使)라는 지방관이 파견되었다.

1150년(의종 4)에는 지명이 수주에서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로 변화되면서 읍격도 상승하였다. 고려 전기의 도호부는 군사적으로 중요한 거점에 설치되었다. 당시 부천에 안남도호부를 설치한 것은 12세기에 백성들의 유망이 많아지고,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 등 정치적 변란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수도 개경의 방위를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후 고려시대 부천의 지명은 계속 변화했으며, 읍격 또한 승강을 반복하였다. 1215년(고종 2)에 안남도호부에서 계양도호부(桂陽都護府)로 개칭되었다. 1308년(충렬왕 34)에 길주목으로 승격되었으나 1310년(충선왕 2) 다시 부평부로 강등되었다.

[관할 속읍]

고려시대에는 모든 고을에 지방관이 파견된 것은 아니어서 지방관이 파견된 고을이 그렇지 못한 고을을 속읍으로 삼아 함께 관할하였다. 부천에는 통일신라시대에 처음으로 속읍을 두었는데, 당시 장제군의 관할에 수성현·김포현·동성현·분진현 등 4개의 현이 있었다. 고려시대에 금주현과 공암현이 추가되어 수주의 속읍은 모두 6개 지역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1172년(명종 2) 금주현·김포현·수안현은 각각 감무가 파견되면서 독립하였고, 공암현·동성현·통진현은 고려 후기에 각각 분리하여 독립하였다. 『고려사』 지리지에 따르면, 1018년(현종 9) 지금의 인천인 인주(仁州)를 수주의 속읍으로 예속시켰다가 숙종[1096~1105] 때 인예태후 이씨의 내향이라는 이유로 경원군(慶源郡)으로 승격시키면서 분리하여 독립시킨 것을 볼 수 있다. 인주도 거의 100년간 수주의 속읍으로 있었던 것이다.

[대표적 수령]

고려시대 부천을 거쳐 간 수령들에 관한 기록은 거의 없는 편이다. 그러나 『고려사』와 묘지명(墓誌銘) 등의 기록에서 그 면면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부천의 수령으로 부임했던 인물 가운데 장문위(張文緯)에 대한 기록이 그의 묘지명에 남아 있다.

장문위는 본관이 홍천으로 수주(樹州) 관기(管記)[문독을 관리하는 벼슬이름]로 재임할 당시 부천에 기근이 들어 백성들의 공역을 줄여주었으며, 밭으로 개간되지 않은 곳에는 마른 풀을 베고 씨를 뿌렸다고 한다. 이에 곡식이 넉넉해져 주민들의 칭송이 자자했다고 한다. 또 강물이 범람하고 땅에 습기가 많은 동쪽 땅에 2,500여 보의 수로를 파서 물의 흐름을 고르게 했다고도 한다.

고려시대 부천의 수령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은 이규보일 것이다. 이규보는 1219년(고종 6)부터 1년여간 계양도호부의 수령으로 재임하였다. 그는 재임 기간 43편의 시를 포함하여 모두 53편의 시문을 남겼으며, 이는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수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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