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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600161
한자 豪族
영어의미역 Local Gentry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기도 부천시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배성수

[정의]

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에 경기도 부천에 근거하면서 사회 변동을 주도적으로 이끈 지방 세력.

[개설]

통일신라 말기 혼란스러운 정국 속에서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되자 지방에서는 호족이라는 새로운 사회 세력이 독자적 세력으로 대두하였다. 호족은 지방으로 낙향한 귀족 세력, 지방의 토착 세력인 촌주, 지방의 군사 세력 등으로 스스로 장군(將軍)이나 성주(城主)를 자처하면서 지방 사회를 통치하였다. 호족은 대토지를 지배하고, 사병(私兵)을 중심으로 한 무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중앙과 비슷한 관부(官府) 조직을 갖추고 있었다.

호족은 사회 변동을 주도하였고, 신라왕조의 존립을 위협하였으며, 골품제를 타파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여 고려왕조 성립에 새로운 세력으로서 큰 역할을 하였다. 송도에 기반을 둔 호족 출신인 왕건(王建)은 후삼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다른 호족들을 끌어들이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고려 건국 후 이들은 중앙으로 진출해 문벌 귀족화하는 부류와 지방에 남아 향리의 길을 걷는 부류로 분리되었다. 호족들은 대부분 후자의 길을 걸었으며, 과거와 천거를 통해 중앙 관리로 진출하였다.

[고려시대 호족 세력]

고려시대 부천과 그 인근 지역을 근거로 하여 위세를 떨쳤던 호족 세력으로는 부평이씨를 비롯한 많은 성씨가 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따르면 부천[부평] 지역의 토성은 김·이·류(柳)·형(邢)·손·최·진(陳)으로 모두 7개의 성씨가 있다. 이 성씨들는 본관이 성씨와 결부되기 시작하는 고려 후기부터 『세종실록』을 편찬할 당시인 15세기 전반까지 부평에 토착한 지배적인 성씨 집단을 가리킨다.

7개의 성씨 가운데 고려시대에 가장 명망 있는 가문으로 활약한 성씨는 부평이씨다. 부평이씨의 시조는 이희목(李希穆)으로 고려 태조가 후삼국을 통일하는 데 큰 공을 세워 개국공신에 책봉되었으며, 고려 말까지 명문으로 그 가계를 이어갔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고려시대 부천과 그 인근 지역의 토성들 가운데 부평이씨·소성이씨·금주강씨·수안윤씨·동성이씨·공암허씨·공암최씨 등 7개 성씨는 고려의 후삼국 통일을 전후한 시기에 각기 출신지 및 거주지를 본관으로 삼게 된 성씨들이었다고 한다. 물론 이들은 후삼국시대에 성주·장군·촌주 등의 직함을 지니고 각 고을을 대표한 호족들이었다.

고려시대의 토성들은 해당 지역의 호족으로 세력을 지니기도 했으나, 상경하여 벼슬자리에 오르면서 명문 거족으로 크게 성장하기도 하였다. 부천 지역의 호족 가운데서도 관직에 진출하여 이름을 떨친 인물을 배출한 토성들이 적지 않았다. 특히, 부평이씨는 고려 중기의 최고 문벌이면서 외척 가문인 인주이씨와 통혼 관계를 이루면서 십 수 명의 인물이 벼슬길에 올랐다. 부평이씨 외에도 수안윤씨와 부평손씨 등의 토성 호족 세력들도 중앙의 벼슬길에 오른 인물들을 배출하여 위세를 떨쳤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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