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600778
한자 民俗
영어공식명칭 Folk Customs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기도 부천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나정숙한명희

[정의]

경기도 부천 지역의 민간에서 전승되고 있는 생활 풍속.

[개설]

부천은 넓은 벌판을 중심으로 산자락을 따라 구성된 농경문화가 주류를 이루어 마을 단위의 당굿이나 우물과 밀접한 마을 축제가 두레 풍물을 바탕으로 정형화되어 있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으로, 중동 신시가지가 들어선 부천들 일대에서 행해졌던 농기고두마리[상좌다툼]와 중동 장말의 장말도당굿, 상동의 사래이도당굿, 원종동에서 행해지고 있는 도당우물대동제, 소사동역곡동에서 행해지고 있는 산신제, 원미동에서 행해졌던 조마루도당제 등을 들 수 있다. 농기고두마리, 사래이도당굿, 조마루도당제의 경우는 이미 그 원형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지만 장말도당굿, 원종동 도당우물대동제, 산신제는 매년 또는 격년제로 지금도 행해지고 있다. 부천 지역의 옛 마을들은 농경 사회를 기반으로 조성되었기 때문에 음력 24절기에 따라 씨를 뿌리고 제때에 맞추어 거두어 들이고 즐기는 행위가 자연스럽게 세시풍속(歲時風俗)이 되었다. 세시풍속을 통해 제철에 추수한 곡물로 전래 음식을 마련하여 이웃과 정을 돈독히 하고 풍요로운 생활 문화를 추구해 나갔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거쳐야 하는 평생의례(平生儀禮)는 관혼상제(冠婚喪祭)를 중심으로 기자 의례(祈子儀禮), 출산 의례부터 일생의 마지막 과제인 탈상 후 제례까지를 말한다.

[민속놀이]

1. 집단 놀이

1) 농기고두마리

농기고두마리는 옛 부천군 석천면을 중심으로 행해졌으며, 논농사와 밀접한 두레놀이의 으뜸이라 할 수 있다. 백중 절기에 맞춰 세벌 논매기 후 치러진 마을 대항 깃발 뺏기 놀이로 1800년대 중반 이후에는 농악이 주를 이루었으나 나중에는 마을 대항 힘겨루기 놀이로 변모하였다. 마을 공터에서 행하는 농기고두마리는 농민들이 서로의 노고를 위로하며 따뜻한 이웃 간의 정을 나누는 한마당 마을 잔치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현재 부천시 송내동상동중동 일대에서 풍미해 온 흥겨운 놀이로, 오늘날 서울로 편입된 궁동과 온수동 지역에서도 볼 수 있었다.

2) 중리 풍물놀이

중동 지역인 장말넘말을 중심으로 전승되어 온 풍물놀이이다. 넘말에 거주했던 김용문 집안을 중심으로 누대로 풍물이 전수되어 왔으며 김씨 집안과 넘말 주민들이 한데 어우러져 정월 초하루에 조그만 언덕을 중심으로 나뉜 두 마을을 집집마다 돌면서 마을 주민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였다. 상모돌리기와 벅구 놀이는 흥겨운 풍물굿의 절정이다.

2. 의례와 어우러진 집단 놀이

1) 장말도당굿

부천의 중동에서 장씨 마을을 형성하면서 집안 대대로 조상신을 숭배하는 민속과 당골무가 가세하면서 지역적인 도당굿으로 발전해 온 민속굿이다. 예전에는 난장(亂場)까지 섰을 정도로 인근에 널리 알려졌던 굿으로 매년 음력 10월 10일 아침에 시작하여 밤을 새워 진행하다가 다음 날 오전에 마친다. 마을공동체 성격의 당신(堂神) 축제이다. 장한복의 뒤를 이어 현재 장현수가 주관하고 있으며 경기도도당굿[국가무형문화재]의 기예능 명예보유자인 오수복과 보유자 조한춘의 아들 조영국이 당골무로 참여하고 있다.

2) 먼마루[원종동] 도당우물제

250년 전부터 여러 성을 가진 사람들이 원종동 안동네에 살면서 한 우물을 파서 공동으로 사용해 왔는데 그 우물을 ‘먼마루도당우물’이라 하였다. 도당이란 ‘마을 사람이 함께하는’이란 뜻이다. 먼마루[원종동] 도당우물제는 맑고 시원한 물이 연중 마르지 않는 도당우물을 신성하게 모시는 우물 고사로 매년 음력 3월 초하루와 7월 초하루에 원종동 안동네[원종로35번길 82[원종동 230]~소사로808번길 6[원종동 231] 일대]에서 행해지는 마을 공동 축제다.

농사철 시작에 앞서 풍년을 기원하고 바쁜 농사철이 끝나는 시기에 맞춰 주민들 간의 유대 의식을 강화하며 친목을 도모하는 마당 잔치이기도 하다. 대체로 풍년이 들게 해 달라는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김매기가 끝나고 농민들이 한가한 시간을 내어 그간의 피로를 풀고 휴식을 위한 의식임과 동시에 마을 사람들의 친목을 다지는 시간으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3. 개인 놀이

5월을 전후하여 부천 괴안동 앞 개천이 복개되기 전에는 방죽 위 버드나무 큰 가지에 줄을 매고 놀았던 그네뛰기를 비롯하여 여월동·춘의동 지역 사람들의 정월 보름달맞이, 중동고강동에서 행해졌던 연날리기, 정월 대보름을 전후하여 두레 풍물을 앞세워 춤을 추면서 지신풀이로 땅의 신을 위로하는 지신밟기, 편을 나누어 윷가락 네 개를 던져 말을 움직이는 윷놀이 등을 하였다. 그 외에도 씨름, 공기놀이, 널뛰기, 굴렁쇠놀이, 엿치기, 딱지치기, 팽이치기 등 함께 즐길 수 있는 많은 놀이가 있다.

[세시풍속]

1. 1월

1) 설날

한 해의 첫날이라 행동을 삼가고 조상의 유업(遺業)을 기리며 가족 간의 우애를 도모하는 날로 원일(元日), 정초(正初)라고도 한다. 정갈하게 준비한 설빔으로 갈아입고 아침 일찍 조상에게 차례(茶禮)를 지낸 후 웃어른께 세배를 하고 산소에 들러 성묘도 한다.

2) 정월 대보름

오곡밥과 시래기국을 갖은 보름나물과 곁들여 먹고 호두·밤·잣·땅콩 등 단단한 과실을 단번에 깨물어 먹으며 일 년 내내 무병 기원을 한다. 원종동·대장동 지역에서는 대보름 전날부터 보름 고사를 지내며 보름 쇠기를 시작하였다. 잠을 일찍 자면 눈썹이 센다고 하여 풍물을 치거나 윷놀이, 달맞이, 쥐불놀이, 남의 집 밥 훔쳐 먹기 등의 놀이로 밤을 새우기도 하였다. 특히 고강동과 원종동에서는 수숫대 속에 콩 12알을 박아 넣은 것을 우물 안에 넣어 두었다가 꺼내어 가무는 달이 언제인가 미리 알아보는 풍년점도 보았다.

1970년대 부천 지역에서는 정월 대보름이 되면 마을 단위로 두레 풍물을 앞세우고 춤을 추면서 지신풀이로 땅의 신을 위로하는 지신밟기, 편을 나누어 윷가락 네 개를 던져 나온 결과대로 말을 놓아 먼저 최종점을 나오는 편이 이기는 윷놀이 등을 하였다. 최근까지도 정월 대보름을 전후하여 부천 지역의 각 동에서 척사대회로 그 맥을 잇고 있다.

2. 2월

음력 초하루에는 나이떡을 만들어 먹고 머슴날이라 하여 3월부터 시작될 고된 농사일을 앞두고 술과 음식을 준비하여 머슴을 위로한다.

3. 3월

초사흗날은 삼짇날로 길일(吉日)을 택하여 장을 담그고, 한식날 산소를 돌보며 차례를 지낸다. 원종2동에서는 도당우물제가 치러지며, 과수원에서는 복숭아 가지치기를 한다. 더운 음식을 피하고 찬밥을 먹는 날이다.

4. 5월

초닷샛날은 단오[수릿날]로 중동에서는 데보뚝 방죽 너머 물가에서 자라는 창포를 캐다가 머리를 감았고, 그네뛰기와 씨름을 하였다.

5. 6월

보름날[流頭日] 원종동 앞 베르네천이나 사루지 개울에서는 미꾸라지나 보리새우를 잡는 천렵도 하고, 밤에는 횃불을 밝혀 참게를 잡아 게장도 담가 먹었다. 삼복을 피해 하우고개를 찾았고, 대장동에서는 세벌매기 후 풍년과 건강 기원을 위해 세습무를 초청하여 도당굿을 지냈다.

6. 7월

보름은 백중일로, 원종동에서는 도당우물제를 지냈고, 새로 수확한 보리나 밀 등으로 밀전병도 부쳐 먹었다. 과실과 채소가 많이 나는 철로 특별히 소사 삼거리와 산천동에서는 소사장과 뱀내장도 섰다.

7. 8월

8월 초에는 조상 묘에 가서 벌초를 한다. 보름날은 명절 중의 명절인 추석으로 햇곡식으로 빚은 송편과 술, 과일을 차려 조상에게 차례를 지낸 다음 산소에 가서 성묘를 했으며 저녁에는 보름달맞이를 하며 소원을 빌었다.

8. 10월

일 년 중 가장 풍성하고 여유로움을 갖게 하는 상달로 음력 보름에는 5대조 이상의 조상들께 시제(時祭)를 지낸다. 부천 전 지역에서는 마을 주민들이 도당제와 산신제를 지내는 것이 특징이다. 입동(立冬)을 전후하여서는 김장김치를 담근다.

9. 11월

동짓날은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날로 팥죽을 쑤어 먹는다. 여월동삼정동에서는 새끼 꼬기가 성행하였다. 매끼라는 기계를 이용하여 대량으로 새끼를 꼬고 가마니도 짰으며, 장날 새끼줄을 내다 팔기도 하였다.

10. 12월

섣달그믐에는 집 안 여기저기 불을 밝히고 잠을 자지 않았다. 이는 모든 잡귀의 출입을 막으려는 액막이 풍습의 하나이다.

[평생의례]

1. 기자 의례

자식 낳기를 기원하는 모든 행위로 사찰이나 성황당, 느티나무, 큰 소나무, 영험한 바위를 찾아가 기원하였다.

2. 출산 의례

임신하였을 때 꾸는 꿈으로 아이의 성별과 운명을 미리 예측해 보는 태몽과 뱃속의 아이를 위해 말과 행동을 조심하는 태교가 있으며, 해산달에 맞추어 필요한 아기용품과 출산 도구를 준비한다. 아기가 태어나면 금줄을 쳐서 외부인을 막아 모든 잡귀나 부정으로부터 산모와 아기를 보호하였다. 태어난 지 백일과 일 년이 되는 날에는 백설기와 수수팥떡으로 상을 차려 잔치를 베풀고 아이의 무병장수를 빈다.

3. 관례와 계례

관례(冠禮)는 남자 어린이가 성장하여 어른이 되었음을 알리는 의식으로 상투를 틀어 갓을 쓰게 하였다. 계례(笄禮)는 여자가 보통 열다섯 살이 되면 쪽을 지어 올리고 비녀를 꽂는 의례이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 이후 관례와 계례는 자취를 감추었다.

4. 혼례

혼인 적령기의 남녀가 서로 만나 혼인을 하는 과정으로 의혼(議婚)·납채(納采)·납폐(納幣)·친영(親迎)의 순으로 이루어진다. 혼인 후에는 신부가 시댁으로 들어가는 신행(新行)과 혼인 후 처음으로 친정에 가는 근친(近親)이 있다. 현재는 대부분이 예식장에서 약식으로 치러진다.

5. 회갑례

출생하여 60간지가 한 차례 돌았다 하여 장수를 축하하는 잔치로 환갑(還甲)이라고도 한다.

6. 상례

사람이 운명한 후 시신을 수습하고 묘지를 만들어 매장하며, 유족들이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여 상복을 입고 근신하는 기간에 치러지는 여러 가지 의례를 말한다. 상례는 신종추원(愼終追遠)의 효행 정신에 따라 살아 있는 사람들이 돌아가신 분에게 삼가 이별하는 예를 다하는 엄숙한 절차인 만큼 전통 방식이 그대로 고수되고 있다. 부천 지역에서 행하는 장례 절차도 『사례편람(四禮便覽)』에 따르기 때문에 표현만 약간 다를 뿐 거의 같은 의식을 진행하고 있다. 초혼(招魂), 수시(收屍), 사자밥, 장례 절차 논의, 습렴(襲殮), 치장(治葬), 반혼(返魂)의 절차가 있다.

7. 제례

죽은 조상에게 효를 계속하라는 추원(追遠) 의식으로 조상 대대로 이어져 온 자기의 존재를 인식하고 조상 숭배를 통하여 당내 간 우애와 효도 신장을 오래도록 도모하고자 제례로 발전한 것이다. 제례는 사당제(祠堂祭)·사시제(四時祭)·기제(忌祭)·묘제(墓祭)·차례가 있으나 오늘날에는 기제·차례·묘제만 지내고 있다.

[산신제]

부천에서는 많은 지역에서 산신제가 행하여지고, 행사에 따른 제물의 추렴, 산신 제사, 제물 봉송에 이르는 일종의 공동 의식으로 산신제가 치러졌다. 산신제는 산치성제(山致誠祭)라고 하여 불길한 기운이 있거나 불결한 곳을 다녀 온 사람은 제사에 참여하지도 못하게 할 정도로 준비 과정을 중요시하였다. 이후 산치성제 날에는 시루떡을 해서 제사를 지내고, 제단에 도착하면 정성껏 준비한 제물과 전날 미리 묻어 두었던 조사술을 따라 제사를 준비한다. 이후 제사 준비가 끝나고 해가 저물면 마을 사람들은 모닥불을 피워 놓고 술을 마시면서 행사에 동참하고 밤 8시경에 당주 세 명은 마을 사람을 대표해 제사를 지낸다. 이후, 초헌, 축문 낭독, 아헌, 종헌 후 고시레[고수레]를 하고 소원을 담은 종이를 태운 후 음복하여 제사를 마친다. 이러한 산신제를 통해 마을의 단결력과 공동체 의식을 대내외에 과시함으로써 마을 번영을 기원하였다. 여기에 마을 주민의 화목과 단결력을 도모하는 차원에서 부천의 각 지역에서는 산신제를 지내 왔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산신제가 윗소사마을[소사본1동]의 대동산신제이다.

윗소사대동산신제 는 소사본1동에서 2년에 한 번 음력 10월 3일에 열리는 제례이다. 제삿날에는 마을 입구와 끝에 마을을 수호하는 장승을 두 곳에 세우면서부터 산신제를 시작하는데, 장승을 세우고 나서 전 주민이 식수로 사용하는 공동 우물을 청소한다. 이후 추수한 곡식으로 떡을 만들고 온갖 과일을 모아 도당산에서 제를 올린다. 이 산신제는 모든 마을 주민의 안녕과 건강, 풍요를 기원하며 잡귀를 몰아내 각종 화를 면해 줄 것을 소원하는 기원제이자 추수 후 마을 사람들의 화목을 도모하는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대동산신제는 세 명의 당주가 당주집에서 사전에 제를 지내는 안반고사, 산신제 시작을 알리는 시제, 마을의 안녕과 부정을 막기 위해 넋두리를 하는 부정풀이, 도당할머니 나무 밑에 묻어 놓은 술을 꺼내 오는 조라술 모셔오기, 도당산 소나무를 잘라 만든 장승에 씌워 놓은 창호지를 벗기는 제막인 장승고사, 마을 공동 우물인 대동 우물을 청소한 후 우물에 잔을 올리는 우물고사, 조라술을 올리는 당주 절하기, 첫 번째 잔 올리기, 축문 낭독, 두 번째, 세 번째 잔 올리기, 함께 절하기의 절차를 거쳐 제사를 마무리한다.

한편 역곡동원미산 언저리에 자리한 벌응절리, 사래리에서 주로 행해지던 역곡 산신제도 있었다. 이 지역에는 벌응절리 산신제, 춘덕 산신제가 있었다고 하며, 벌응절리 산신제는 주로 원미산 입구에서 지냈다고 한다. 윗소사 대동산신제와 행사 절차 등은 거의 비슷하다. 춘덕 산신제는 사래리 산치성제라고도 하는데 매년 10월 초순 야간에 죽산박씨 집성촌이 중심이 되어 지낸 제사이다.

이처럼 부천 지역에서는 소사본동, 역곡동 일대에서 매년 산신제를 지내 왔는데, 산신제를 통해 마을 주민이 협력하는 기회로 삼고, 마을의 안녕과 주민 전체의 행복을 기원하여 마을 사람들의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