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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601914
한자 樹州卞榮魯詩碑
영어의미역 Suju Byeon Yeongro Monument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유적/비
지역 경기도 부천시 수주로 64-1[고강동 산 63-7]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유영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비|시비
건립시기/일시 1969년 5월연표보기
관련인물 변영로
재질 화강암|마천석
높이 180㎝
너비 166㎝[가로]|110㎝[세로]
소재지 주소 경기도 부천시 수주로 64-1[고강동 산 63-7]
소유자 밀양변씨 종중

[정의]

경기도 부천시 고강동에 있는 수주 변영로의 시비.

[건립경위]

수주 변영로는 일제강점기 때의 학자이자 언론인·문인으로서 시대를 비추는 삶을 산 시대의 증인이다. 이를 기리기 위해 1969년 5월에 밀양변씨 종친회에서 수주 변영로 시비를 세웠다.

[위치]

부천시 고강동밀양변씨 선산에 있는 변영로 묘 아랫단에 세워져 있다.

[형태]

화강석 네모난 받침대 위의 대리석에 변영로의 시 「생시에 못 뵈올 님」이 있다. 비의 높이는 180㎝이고, 가로 166㎝, 세로 110㎝이다.

[금석문]

시비 앞면에 변영로가 1924년 『폐허 이후』 창간호에 발표한 「생시에 못 뵈올 님」의 앞 부분이 새겨져 있다. 내용은 "생시에 못 뵈올 임을/ 꿈에나 뵐까 하여/ 꿈 가는 푸른 고개/ 넘기는 넘었으나/ 꿈조차 흔들리우고 흔들리어/ 그립던 그대/ 가까울 듯 멀어라"이다.

시비 뒷면에는 다음의 글이 새겨져 있다. “우리 세대에 나타난 변문(卞門)의 세 별 산강(山康) 영만(榮晩), 일석(逸石) 영태(榮泰), 수주(樹州) 영로(榮魯)의 백중계(伯仲季)는 그 표일(飄逸)한 재질과 대쪽 같은 지조와 청렴 개결한 품성이 일세의 범이 되엄즉하나 이는 그 엄친 변정상공(卞鼎相公)의 엄격한 훈육과 청순한 덕행에 말미암은 바라 하겠다. 계씨 수주(樹州)는 이밖에 해학과 풍자를 곁들여 담소 중 분방한 재기를 발산시켜 듣는 이로 하여금 종종 분반의 폭소를 터뜨리게 하였다.

시와 수필에 재화를 보였고 영문학에도 능하여 고전 시조의 영역으로 사람을 놀라게도 하였다. 교육가로서 언론인으로 성문을 높였으며 거의 일생을 술과 더불어 시종하였으니 남달리 예리한 감각의 소유자로서 36년간 가혹한 왜정의 질곡 속에서 생생한 본정신을 가지고는 비분강개한 나머지 실신 지경에 이르지 않을 수 없었던 탓으로 호리건곤 도피하여 세간의 갑자(甲子)를 망각하려 하였든 것이 아니었든가.

명정 40년이란 그의 저서는 이를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인생은 가고야 마는 것 수주도 63세를 일기로 그 유해가 여기 잠들고 있으나 그 정혼은 광복된 조국을 천상에서 굽어 살피며 계실 것이다. 영원히, 또 영원히. 일석 이희승(李熙昇) 찬(撰), 일중 김충현(金忠顯) 서(書).”

[현황]

밀양변씨 종중산(宗中山) 한가운데 건립된 시비로, 주변이 한가로워 아이들이 와서 놀기도 한다. 이곳은 수주 변영로의 고향이라 종친회에서 수주 변영로 시비를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시비를 세우는 것은 역사적 인물에 대한 후손들의 예의일 것이다. 한평생 어려운 시기를 살며 민족 의식을 고취시킨 변영로밀양변씨 가문만의 조상일 수는 없다. 비를 세워 변영로의 생애를 알림으로써 부천 시민, 나아가 나라를 사랑하는 이 땅의 후손들에게 역사의 한 자락이 거기 살아 있음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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