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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602037
한자 尹明善
영어음역 Yun Myeongseon
이칭/별칭 택중(擇中)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부천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남달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547년(명종 2)연표보기
몰년 1608년(광해군 1)연표보기
본관 파평
대표관직 형조좌랑|장흥부사|평산부사|양주목사|제용감정|내섬시정|봉상시정

[정의]

조선 중기 부평부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택중(擇中). 아버지는 사평(司評) 윤원(尹轅)이다.

[활동사항]

윤명선은 1567년(명종 22)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580년(선조 13) 알성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성균관의 여러 관직을 거쳐 형조좌랑을 지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황해도 도사로서 유근(柳根)·윤자신(尹自新)·이정립(李廷立)을 도와 개성의 목청전(穆淸殿)에 묻어두었던 종묘의 신주(神主)를 평양까지 옮기는 데 호위하였다.

1593년 예조정랑을 거쳐 부평부사가 되었다가 무고로 탄핵을 받고 해임되었다. 다시 1594년 12월 부평부사에 부임하였고, 1595년 6월 사간원의 계(啓)로 파직되었다. 그 뒤 장흥부사·평산부사·양주목사를 거쳐, 제용감정(濟用監正)·내섬시정(內贍寺正)을 지낸 뒤 1601년 봉상시정(奉常寺正)으로 평안도재상경차관(平安道災傷敬差官)이 되었다. 이때 시위하는 사람을 너무 많이 거느리고 가서 열읍(列邑)에 폐가 많다고 탄핵을 받아 양재도 찰방으로 좌천되자 벼슬에 뜻을 잃고 병을 핑계로 사직한 뒤 한가롭게 지냈다. 사후에 도승지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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