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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606045
한자 梧亭洞
영어공식명칭 Ojeong-dong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정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3월 1일연표보기 - 경기도 부천군 오정면 오정리와 대장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73년 7월 1일연표보기 - 경기도 부천군 오정면 오정리와 대장리가 경기도 김포군 오정면 오정리와 대장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75년 10월 1일연표보기 - 경기도 김포군 오정면 오정리와 대장리가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1988년 1월 1일연표보기 -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애서 경기도 부천시 중구 오정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93년 2월연표보기 - 경기도 부천시 중구 오정동에서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오정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2016년 7월 4일연표보기 -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오정동에서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으록 개편
현 주소 오정동 -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
성격 행정동|법정동
면적 6.88㎢
가구수 8,831가구
인구[남/여] 23,743명[남 12,298명/여 11,445명]

[정의]

경기도 부천시에 속하는 행정동이자 법정동.

[개설]

오정동을 포함한 원종 1동원종 2동, 신흥동 행정의 중심이 되는 오정동 복지 센터를 두고 있으며, 법정동인 오정동대장동도 관할하고 있다. 전형적인 농업 지역과 주거 지역으로 구분된다.

[명칭 유래]

‘오정’은 한자로 오동나무 오(梧) 자에 정자 정(亭) 자로, 이 지역에 오동나무가 많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오정’은 조선 후기 인조 때 오위도총부 도총관을 지낸 고강동 출신 변삼근(卞三近)의 아호이기도 하다. 이렇게 ‘오정(梧亭)’으로 써 오던 것을 일제 강점기인 1914년 임의적으로 군면을 통·폐합하면서 전혀 다른 의미의 ‘오정(吾丁)’으로 썼다가 광복 50주년을 맞은 1995년 원래의 한자로 복원하였다. 또한 조선 후기까지 오정리를 오쟁이라고도 했는데, 오정이에서 'l' 모음이 역행 동화가 일어나 오쟁이로 된 것이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시대에는 부평군 상오정면의 오정리 지역과 주화곶면의 대장리 지역이었다. 1914년 3월 1일 행정 구역 개편 때 부천군 오정면 오정리와 대장리로 개편되었다. 1973년 7월 1일 소사읍 일원이 부천시로 승격됨에 따라 김포군 오정면에 편입되었다. 1975년 10월 1일 시세 확장에 따라 대장리와 오정리를 합하여 부천시 오정동으로 개편하였다. 1988년 1월 1일 구제 실시에 따라 중구 오정동이 되었고, 1993년 2월 오정구 오정동이 되었다. 2016년 7월 4일 일반 구를 폐지하는 행정 체제 개편에 따라 부천시 오정동이 되었다.

[자연환경]

부천시의 대표적인 도농 복합 지역으로 농촌의 향수가 살아 숨쉬는 부천 둘레길 제4 코스인 황금 들판길의 대장동 벌판이 있다. 지리적으로는 부천 평야 북쪽 끝에 있어 김포 평야와 맞닿아 있는 낮은 평원이다. 이러한 지세로 1988년 말 부천시 경지 면적 1만 2240㎡에서 생산되는 쌀 3만 4700석 중 3분의 1이 이곳에서 생산되었다. 갈대숲이었던 이 일대는 1925년 한강 수리 조합이 생기면서 논으로 변경되어 주곡 생산지로 탈바꿈되었다. 당고리들·뒤마루들·돌다리들·한다리들·흙다리들 등의 들녘이 있고, 오정 마루라는 낮은 고개가 있다.

[현황]

2016년 7월 현재 관할 면적은 6.88㎢이며, 인구는 8,831가구 2만 3743명[남 1만 2298명, 여 1만 1445명]이다. 남부 지역을 경인 고속 도로가 가로지르고, 서쪽에는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가 관통하고 있다. 부천 지역 경제의 근간이 되고 있는 오정 산업 단지와 중소 기업이 다수 밀집되어 있는 지역으로 농촌과 도시가 상호 공생 관계를 유지하는 이상적인 지역을 지향하고 있다. 오정동에서는 1999년부터 한마음 대축제를 개최해 도심과 농촌, 공업 지역이 어우러져 주민 모두가 더불어 함께 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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