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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부천문화대전 > 부천향토문화백과 > 삶의 터전(자연과 지리) > 자연지리 > 지질·지형

  • 지질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 지역의 지각을 이루는 물질인 토양이나 암석의 성질·종류 및 상태. 부천시는 지질학적으로 보아 크게 두 지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가 성주산 자락의 소사동을 중심으로 한 모래나 쇠가 나는 지역이다. 소사동 일대 지역은 배수가 잘 되어 ‘조리터’라고 불리기도 하며, 구릉과 야산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배수가 잘되는 땅에서 잘 자라는 복숭아 재배에 적합하다. 이 지역의...

  • 토양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 지역의 지표를 구성하는 암석이 풍화·분해되어 생성된 흙. 부천시의 토양은 주로 시생대의 결정편암계(結晶片巖系)와 백악기의 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천은 김포평야의 일부를 이루는 부평평야를 포함한다. 부평평야의 토양은 사면의 이동 물질과 표토에 포함된 유기 물질들이 운반·퇴적된 운적토이다. 소위 비옥한 충적 토양을 형성하여 농업 생산에 좋은 식토로서 지역 주민의 생활...

  • 지형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 지역의 지표면의 기복 및 모양이나 형태. 서울 남서부에 자리 잡은 부천시는 총 면적이 53.44㎢로 북쪽과 동쪽은 서울시 강서구·양천구·구로구와 접하고, 남쪽은 경기도 광명시, 서남쪽은 인천시 계양구·부평구·남동구와 각각 접한다. 부천 지역의 지형은 대체로 지각 운동이나 화산 활동 등의 지구 내적인 힘에 의하여 만들어진 지표면이 유수(流水)·빙하·바람·파도 등의 외적인...

  •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 지역에 분포하는 주변 평지보다 높이 솟아 있는 지형. 부천의 산맥은 부천과 시흥의 경계에 있는 소래산 지맥으로 인천의 주안산, 부평의 계양산, 김포의 가현산, 통진의 문수산 등으로 이어진다. 소래산은 양지산으로 연결되어 성주산[200m], 할미산[153.2m], 원미산[123.8m], 춘의산[106m], 봉배산[86m] 등 부천 남부 및 동부 권역의 산지로 이어진다....

  • 감배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역곡동에 있던 산. 언어학적으로 감배는 곰에서 온 것으로 본다. 곰은 신령, 왕, 으뜸, 큼, 뒤 등의 의미로 쓰였다. 그리고 는 일종의 접미사로 ‘-들’의 뜻이다. 따라서 곰는 신령들을 의미한다. 『부천시사』에서는 배가 ‘’에서 나온 말로, 밝은 것을 의미하고 태양신에게 제를 올리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이 배로 변한 것에 대해서는 설명하기 어렵다....

  • 개롱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도당동에 있는 산. 경기도 부천시 삼작로292번길 41-20[도당동 125] 복사골아파트에서 부천시 성곡로97번길 13[도당동 134-2] 근화아파트 방향으로 곧장 뻗은 산을 ‘개롱산’이라 부른다. 개롱산은 농사와 관련된 지명일 것으로 추정된다. 도당고등학교 뒤편 백만송이장미원 앞쪽을 개롱지[開農地]라고 부르고 있어 연관이 있는 지명으로 보인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

  • 건지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옥길동에 있는 산.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는 부천군 옥산면(玉山面) 항동(航洞)에 속하는 건지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서울지명사전』[2009]에는 “건지산은 서울의 구로구 항동에 있는 산으로, 건지봉은 구로구 천왕동에서 부천시 옥길동에 걸쳐 있는 산”이라고 쓰고 있다. 큰건지산과 작은건지산이 있는데 작은건지산은 옥녀봉(玉女峰)으로 불린다. 『조선지...

  • 계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원종동에 있는 산.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 하오정면 원종리에 있는 산이라 표기되어 있고, 의령남씨 족보에도 계산(鷄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계산은 은데미공원에서 수역리, 새텃말 뒷쪽으로 길게 늘어진 능선 일대를 지칭한다. 구체적으로는 은데미공원에서 서림아파트 나들이고개 교차로, 버스 주차장[옛 버들테니스장], 해오름아파트, 궁전맨션 일대로 모두 의...

  • 김마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에 있는 산. ‘김마루’에서 ‘마루’는 멧마루처럼 낮은 산을 가리킨다. ‘김’은 ‘긴’이 그 어원이다. 긴마루가 김마루로 바뀐 것이다. 그러므로 산등성이가 길게 뻗은 마루라는 뜻이다. 이는 긴마루를 김마루로 발음한 것을 그대로 김마루로 적은 경우이다. 눈물을 눔물이라고 발음하는 데, 눈물로 적지 않고 눔물로 적은 것과 같다. 김마루는 오정에서 멧마루로 가는 길이...

  • 덕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에 있는 산. 덕산(德山)은 오정동 안동네에서 나와 오정로를 건너면 세종아파트[옛 퓨리나사료]와 부천덕산초등학교, 경기덕산중학교에 이르는 지역으로 오정동의 군부대 정문을 바라보고 왼편 지역으로 오정동 114번지~오정동 117번지 일대 언덕을 가리킨다. ‘덕(德)’은 크고 넓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덕산’은 크고 넓게 뻗어 있는 산이라는 의미이다. 부천시 상동의...

  • 도당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의 도당동과 여월동에 걸쳐 있는 산. 도당산은 와우산(臥牛山)이라고도 불린다. 산의 지형이 누워 있는 소와 같다고 하여 조선시대부터 와우산 또는 우산(牛山)이라 불러 왔다는 기록이 있다. 도당산은 해발 106m에 이르는 산이다. 도당산 일대는 수백 년 동안 전주이씨 효령대군파 사직공 종중의 종중산으로 사용되었는데 ‘와우산’으로 기록하는 기록이 많아 와우산으로 보는 견해...

  • 둔대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원미동과 역곡동에 걸쳐 있는 산. 벌응절리가 ‘싸움을 맞이하여 치고 응하는 마을’이듯이 둔대산 역시 이와 비슷한 의미를 갖는다. 즉 임진왜란 당시 왜군 침략에 대응하여 싸움을 펼친 곳이 둔대산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둔대산은 군대가 주둔하였기에 생긴 이름이라고 하여 한자로 진칠 ‘둔(屯)’과 떼 ‘대(隊)’로 표기되어 둔대산(屯隊山)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언어학적...

  • 매봉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도당동에 있는 산봉우리.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264번길 117[도당동 산65-8] 일대가 매봉이다. 곧 와우산(臥牛山)의 주봉을 말한다. 그리고 머리에 해당하는 봉우리가 바로 춘의봉(春宜峰·春意峰)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매봉재가 아니고 ‘매봉[응봉(鷹峰)]’으로 바로잡는다. 최현수는 『부천사연구』[1992]와 『부천의 흐름』[1982]에서 “매봉은 원래 산봉우리의 형...

  • 명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고강동에 있는 산. ‘명산(明山)’에서 ‘명(明)’은 ‘’의 훈차이며, ‘산’은 ‘뫼’의 훈차로 보기도 한다. 천신제를 지낸 산을 보통 ‘명(明)·광(光)’이라는 단어로 훈차한 것으로 보아 아마도 천신제를 지낸 산이라고 하여 명산이라고 한 듯싶다. 인근의 고강동 선사유적지에서 제천의식의 흔적인 ‘적석환구유구’가 발견됨에 따라 제천의식과 연관 있는 산의 명칭으로 해석...

  • 호랑바위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옥길동에 있던 작은 산. 호암산(虎巖山)이라고도 하였다. 호랑바위산은 1954년 옥길동에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비료 공장인 경기화학 뒤편에 있던 아주 작은 산이다. 이 산에 호랑이를 닮은 바위가 있었거나, 아니면 호랑이굴이 있어서 유래한 산 이름으로 추정된다. 전국에 이와 관련한 지명은 다양한데 대개 호랑이와 관련된 지명 유래를 가지고 있다. 호랑바위산은 부천시 범박...

  • 봉배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작동에 있는 산. 경기도 부천시 작동 산7-3번지 일대에 있는 산이다. 호암산(虎岩山) 혹은 범바위산이라고도 한다. 『고령박씨족보(高靈朴氏族譜)』[1769, 1936, 1987]를 보면 성종 때 청백리에 녹선된 박처륜(朴處綸)[1445~1502]과 그의 아버지 박사란(朴思蘭)의 묘소가 있는 작동 산7-3번지 일대의 산을 ‘범바위[虎岩]’로 기록하였다. 또한 『조선지지...

  • 봉안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원종동에 있던 산. 봉안산은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는 하오정면 원종리에 있는 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대장동·원종동 마을지』[2017]에 의하면 대풍푸른들아파트, 욱일6차아파트, 세창짜임아파트 일대의 야트막한 산 일대를 말한다. 자세한 지명 유래는 알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본래 이 산에는 묘소가 많았는데 밀양손씨가 관리하였다고 한다. 그중에는...

  • 부엉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에 있는 산.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는 옥산면(玉山面) 소사리에 있는 산으로 휴암산(鵂巖山)이라 쓰고 있다. 주민들은 부엉이산이라 부르며 부엉이가 산꼭대기 바위에 자주 앉아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부천시사』[2002]에서는 봉배의 다른 말이 부엉이라고 하였다. 한자로는 ‘휴암산(鵂巖山)’이라고 한다. 수리부엉이 ‘휴’...

  • 삼태기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작동에 있던 산. 삼태기산은 옛날부터 아녀자들이 아이를 낳게 해 달라고 빌었던 산으로, 범바위산 줄기로 뻗어 내려오다 시루뫼 너머에서 멈추었다. 최현수의 『부천사연구』1[1992]에서는 삼태기산에 대하여 “새말 부근에 있는 높이 69.5미터의 산”이라고 하였다. 또한 고강동의 ‘삼태골’에 대해서는 “삼태기 모양을 하고 있어 붙여진 지명으로 수주로에서 서울 쪽으로 가다...

  • 삼태봉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범박동에 있던 산. 삼태봉은 삼대봉(三臺峰)이라고도 하였다. 최현수의 『부천사연구』1[1992]에는 삼대봉(三臺峰)에 대해, “범박동파출소 옆산을 일컫는다. 파출소를 중심으로 뒷산과 옆산 그리고 박태선 장로가 살았던 모리타라는 왜인 집 뒤의 세 봉우리를 합쳐서 부른 명칭이 아닌가 한다.”라고 하였다. 백수현은 『부천시사』1[2002]에서 “삼태봉은 할미산의 작은 산...

  • 샛말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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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부천시 고강동 샛말 뒤쪽에 있는 산. 샛말산은 해발 59.8m의 비교적 낮은 산이다. 굴운산이라고도 한다. 샛말산의 ‘샛말’은 새로 형성된 마을, 즉 새마을[新村]에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샛골[사이마을]을 뜻하는 간촌(間村)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두 가지가 있다. 새말[샛말]은 고강동 263번지 일대로 1950년도에 밀양변씨 변호면이 이곳으로 이주해 마을을 이루었다. 가구수는...

  • 성주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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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부천시 심곡본동에 있는 산.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는 부천군 석천면(石川面) 심곡리에 있으며 화오현산(華梧峴山)[화오ᄌᆞㅣ산] 또는 성주산(聖柱山)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성주산의 형세는, 현재는 부천시청 건물이나 멀리 고층 건물에서 관찰해야 볼 수 있지만 도시화가 되기 이전인 1960년대까지만 해도 벌막 쪽에서 자세히 살펴보면 소가 앉아 있는 형세를 한눈...

  • 숙공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범박동에 있는 산. 최현수의 『부천사연구』1[1992]에서는 숙공산(肅公山)에 대하여 “범박동 산62-3번지 일대로 숫골과 공숫골의 합성어. 일명 숙골로 느티나무 뒤에 있는 산과 박기남(朴奇男)의 묘가 있는 공숫골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백수현은 『부천시사』1[2002년]에서 “숙공산은 옛 범박마을 뒷산을 가리킨다. 이 산에 골짜기가 두 개 있는데, 하나는 숫골이고...

  • 시루뫼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작동에 있던 산. 최현수의 『부천사 연구』[1992]에서는 시루뫼[증산]에 대해, “비릿내천이 흘러드는 곳에 아주 기름진 들이 있다. 이 기름진 들 한복판에 떡시루를 엎어 놓은 것과 같은 모양을 한 산을 시루뫼라 하며 이 산이 있는 들을 시루뫼들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한자로는 ‘증산(甁山)’이 아니라 ‘증산(甑山)’이라고 하였다. 한도훈의 『부천의 땅이름...

  • 안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역곡동에 있는 산. 안산은 벌응절리와 사래울 사람들이 풍수지리적으로 새롭게 명명한 이름이다. 안산은 주산(主山)·청룡(靑龍)·백호(白虎)와 함께 풍수학상의 네 요소의 하나이다. 여러 산이 겹쳐 있으면 내안산(內案山)과 외안산으로 구별한다. 『지가서(地家書)』에 보면 “조산(朝山)이나 안산은 묏자리의 맞은편 산이다. 가깝게 있으면서 작은 것은 안산, 멀리 있으면서 높은...

  • 알묏부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역곡동에 있는 산. 알묏부리에서 알은 새알이나 닭의 알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것이며, 묏은 뫼, 즉 산을 이르는 말이다. 다시 말해 알묏부리는 ‘알을 품은 산’이라는 말이지만 제주특별자치도에 있는 산굼부리처럼 고스란히 그 원형이 남아 있는 말로, 제주도에서는 산언덕을 부리로 표현하고 있다. 부천 지역에서는 이 알묏부리만이 부리라는 말의 백제어 원형을 전해 주고 있다...

  • 연아봉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괴안동에 있는 산봉우리. 연아봉은 ‘연화봉(蓮花峰)’이라 해서 연꽃이 연이어 피어 있는 모습이라고 하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한자로 ‘연아봉(延阿峰)’이라 하는데 이는 언덕이 이어져 있는 봉우리를 가리킨다. 연아란 ‘연이어 있다’라는 말이다. 할미산에서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는 봉우리라는 뜻으로, 신라 경덕왕 이후에 한자로 표기된 것으로 보인다. 연아봉은 할미산에서 동...

  • 오정마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에 있던 산. 오정마루는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 260번지에 있었던 산이다. 부천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세워진 오정제일교회 일대를 지칭하기도 한다. 오정마루는 부천시 오정리 동네 한가운데에 있던 낮은 산이다. 산이지만 높이가 너무 낮아 ‘오정마루’라 불렸다. ‘마루’란 등성이를 이루는 지붕이나 산 따위의 꼭대기를 이르는 말로, ‘고개마루’ 등으로 쓰였고 약대의 경우...

  • 원미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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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부천시 역곡동, 소사동, 춘의동, 원미동, 여월동에 걸쳐 있는 산. 원미산은 큰 산이라는 뜻의 멀미산, 벌응절리에서 부르는 둥근 산이라는 뜻의 둔대산과 춘덕산, 우리말의 벼락·베락·베리·벼루·별·베루 등에서 나온 말인 낭떠러지가 많은 산이라는 뜻의 벼락산 등의 이름을 갖고 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 원미산(遠眉山)은 옥산면 조종리(朝宗里)로 기록되어...

  • 원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괴안동에 있는 산. 원산은 일명 멀미라고도 한다. ‘멀’은 ‘머리’로 보아 ‘크다·둥글다’의 의미로 해석하고, ‘미’는 ‘산’의 의미이므로 ‘크고 신성한 산’으로 볼 수 있다. 고얀의 앞마을에 말무덤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임진왜란 때 죽은 말을 묻은 무덤이라고도 하지만 무덤이 조성된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한편 원산 앞으로 큰 하천인 용못내가 흘렀다고 하는데,...

  • 할미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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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부천시 계수동에 있는 산. 해발 124m의 산으로 부천 지역에서는 비교적 큰 산이라고 할 수 있다. 노고산 혹은 노구산이라고도 한다. 할머니의 어원은 한어머니에서 출발하는데 여기서 한은 ‘크다’는 뜻으로 큰 내가 ‘한내’, 큰 밭이 ‘한밭’이 되듯이 큰 뫼는 ‘한메’가 된다. 이 한뫼가 ‘할매’·‘할미’로 발음되어 ‘할미산’이 되었다. 즉 한뫼에서 한미산·할미산이 되고, 이...

  • 함박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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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부천시 계수동에 있는 산.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 의하면 “인천부(仁川府) 황등천면(黃等川面) 4리(里)에 속한 함박리에 있는 함박현(咸朴峴)”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함박산은 함박현, 즉 함박고개로 추정된다. 『부천시사』[2002]에는 함박산은 ‘뫼’를 어원으로 ‘크다’는 의미의 ‘’과 ‘밝다, 빛나다’라는 뜻의 ‘’이 합쳐져 크...

  • 고개

  • 갓골고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괴안동에 있는 고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는 곳산면 괴안리에 속하는 가곡현으로 ‘가골고개’로 표기되어 있다. 갓골은 본래 ‘[변(邊)]’의 ‘가[가장자리]’라는 뜻으로 ‘’이 ‘갓’으로 변한 것이다. 그리고 골은 골짜기이다. 따라서 갓골고개는 고얀 사람들이 새장터 대장간에서 농기구를 수리하거나 사기 위해 왕래하던 고개로 갓골[골짜기]에 있던...

  • 거칠고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원종동과 오정동에 걸쳐 있는 고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 “황현(荒峴)[것친고ᄀᆞㅣ]은 부평군 상오정면 도당리에 있다.”라고 하였다. 앞보뚝 서쪽 베리내[別仁川] 건너의 경인고속국도가 지나가는 도당교 사거리의 도당동 143번지 일대로 일제강점기 때 신사가 있었다고 한다. 이 길은 과거 원종리에서 도당리, 내리, 약대, 삼정리를 오갈 때 이용하던...

  • 계수리고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계수동에 있는 고개. 계수동은 계일의 ‘계’와 수로동의 ‘수’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동 이름으로, 이 계수동의 이름을 따서 계수리고개가 되었다. 숲이 우거진 불당고개 옆으로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가 건설되면서 생긴 고개이다. 계수리고개를 넘어가면 할미산 아랫마을인 웃계일이 있다. 빽빽한 숲이 우거진 고개인 불당고개와 연결되어 있는 고개이다. 도로가 생기면서 신앙촌고개가...

  • 곰달래고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고강동에 있는 고개. 고리울 동쪽, 곧 부천시 고강동에서 서울특별시 신월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이르는 지명이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는 “부평군 하오정면 영현명(嶺峴名)의 고음월령(古音月嶺)[고음달ᄂᆞㅣ고ᄀᆞㅣ]이다.”라고 되어 있다. 고강동에서 현재의 신월동인 옛날의 양천군(陽川郡) 장군소면(將軍所面)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이르는 지명이다, 곰달...

  • 구렁목고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여월동에서 춘의동 당아래마을로 넘어가는 고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는 하오정면 여월리 구룡항령(九龍項嶺)으로 표기되어 있다. 여월동에서 고비골로 넘어가는 고갯개마루에 성황당이 있는데 이곳을 기준으로 남쪽을 당아래, 북쪽을 당너머 또는 구룡목고개라 했다고 한다. 한편 원미산과 춘의산이 만나는 골짜기의 고갯길을 넘어가야 하는데 고갯길에 당집이 있어...

  • 능고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작동에 있는 고개. 능너머고개, 능너미고개, 혹은 능현(陵峴)이라고도 한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년]에는 부평군 하오정면 작동에 있는 고개로 한자로는 ‘능현’, 한글로는 ‘능고ᄀᆞㅣ’라고 기록되어 있다. 능너머고개라고도 하는데 이는 조선시대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 고개는 늘어진 고개라는 뜻의 ‘는고개’가 변하여 능고개가 된 것으로 볼...

  • 대추마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도당동에 있는 고개. 대추마루는 대춘말, 대촌(大村), 조현(棗峴)이라고도 한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는 상오정면 도당리에 있는 고개로 ‘ᄃᆞㅣ추마루’라 기록되어 있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이곳도 물에 잠겼는데 대추마루 꼭대기만 대추씨만 하게 드러나 ‘대추마루’라 이름하였다는 유래담이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1911년 발간된 『조선지지자...

  • 독쟁이고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역곡동에서 서울특별시 구로구 온수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덕쟁이고개, 덕정현(德亭峴), 덕재이고개 등으로도 불린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는 부평군 옥산면 벌응절리에 있는 고개로 독정현(篤亭峴)이 있고, 부평군 수탄면 온수동에도 독정현[독졍고ᄀᆞㅣ]이 기록되어 있다. 독을 굽는 가마가 고개 아래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라는 지명 유래가 있다. 실제...

  • 동그랑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대장동에 있는 고개. 장마 때만 되면 대장벌판이 물에 잠겨서 사람들이 산꼭대기로 피난을 갔는데, 이때 피난 간 산만 동그랗게 남아 있어 ‘동그랑재’로 불렸다는 유래를 가지고 있다. 대장동에는 원래 반남박씨가 대종을 이루고 살았는데 대부분 이사를 가고 지금은 몇 집 남지 않았다. 『반남박씨 세양공파세보』[1960]에는 섬말, 즉 대장2리 뒷동산에 큰 은행나무가 있어 은...

  • 불당고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범박동에 있는 고개. 불당고개는 불당현, 혹은 범박동고개라고도 한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는 부평군 옥산면 범박동 불당현(彿堂峴)으로 표기되어 있다. 『부천시사』[2002]에서는 불당(佛堂)의 ‘불’은 남자의 사타구니를 말하고 ‘당’은 안쪽을, ‘현’은 고개를 가리켜 남자의 사타구니 안쪽 고개라는 뜻으로 다산을 상징한다고 쓰고 있으나, 이는 비합...

  • 빌고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범박동에 있는 고개. 소원을 비는 고개라고 해서 망현(望峴)이라고도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는 부평군 옥산면 범박동 망현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범박동에서 괴안동[웃고얀]으로 통하던 고개로, 웃고얀에서 양지마을을 거쳐 시흥 뱀내장을 보러 다닐 때 이용하던 길이었다. 망현에서 망(望)은 ‘빌다’의 뜻으로 쓰인다. 이 때문에 ‘빌고개’라는 땅 이...

  • 사루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여월동에 있던 마을. 사루개는 여월 안동네에서 점말을 지나 사루개고개를 넘으면 있던 동네이다. 최현수의 『부천사연구』1[1992]에는 ‘사루개고개’라는 항목에서 “여월동 220번지 일대로 점말에서 사루개로 가는 골목에 있던 고개”라고 하였다. 첨부한 지도에서 안산, 점골, 봉골, 삼태기산의 가운데에 위치해 있다. 한도훈의 『부천의 땅이름 이야기』[2001]에는 “사루...

  • 산문고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에 있는 고개. 산문고개는 사문이라고도 한다. 최현수의 『부천사연구』1[1992]에는 ‘사문이’라 표기하고 “현재의 덕산국민학교가 있는 위치를 말하며, 어느 시대부터인 것은 알 수 없으나, ‘문이 4개 있다’하여 사문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고 하였다. 한도훈의 『부천의 땅이름 이야기』[2001]에는 “산문고개는 오정 큰말이나 누른말에서 거칠개로 통하는 고개였...

  • 상아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내동과 오정동에 걸쳐 있는 산마루. 상아재는 경인고속국도 부천톨게이트 동편에 내동공단과 오정복지회관 뒤편에서 거칠고개까지 이어진 능선이다. 최현수의 『부천사연구』1[1992]에는 상아재들에 대하여 “녹교지들 부근의 들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한도훈의 『부천의 땅이름 이야기』[2001]에는 “상아재란 ᄉᆞᆯ앗재가 그 어원이다. ᄉᆞᆯ은 [중략] 쌀의 고어이기도 하다....

  • 서낭당고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역곡1동 벌응절리에서 여월로 가는 고개. 소탈미 중턱을 가로지르면 나오는 고개로, 이 고개 꼭대기에 소탈미 서낭당이 있어 이곳을 지날 경우 돌을 올려놓고 안전을 빌기도 하였다. 서낭당고개라는 이름은 여기에서 연유하였다. 벌응절리 건너말에서 여월, 까치울과 고리울로 가는 고개를 말한다. 지금은 이 서낭당고개 아래로 옛 수주로였던 역곡로가 뚫려 있고 서낭당고개가 있던 곳...

  • 수렁고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춘의동의 까치울 지골과 서울특별시 구로구 온수동 사이에 있는 고개. 수렁고개는 지골이 질척질척한 고개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땅이 질다’는 말이 수렁이므로 고개이름이 자연스럽다. 지골을 한자로는 니곡(泥谷)이라고 한다. 수렁고개는 자연생태박물관 남동쪽에 있는 고개로, 능너머고개처럼 빈번하게 왕래하는 고개는 아니었다. 능너머고개로는 마차를 끌고 넘어가기도 했지만...

  • 앞뫼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심곡본1동 앞에 있는 언덕. 앞뫼는 하우고개의 앞자락으로 지금의 심곡본1동 성주기도원 근처의 언덕을 지칭한다. 지금도 성주산(聖柱山)을 오르는 등산로로 쓰이고 있는데 깊은구지에서 보면 바로 앞에 있어 ‘앞뫼’ 또는 ‘앞산’이라 하였다. 『부천사연구』[1992]에서는 ‘안매’라고 하였는데 이는 앞뫼를 잘못 표기한 것으로 생각된다. 성주산과 연결되어 있는 야트막한 언덕이...

  • 여우고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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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에 있는 고개. 여우고개는 사현(莎峴), 소사고개[素沙峙], 여우현(如牛峴), 호현(狐峴)이라고도 한다. 18세기 말 만들어진 『여지도(輿地圖)』에는 ‘사현’이라 하였고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 인천부 신현면(新峴面) 조에는 ‘소사치(素沙峙)[쇼사ㅏ고ᄀᆞㅣ]’로 표기되어 있다. 여우고개의 어원설과 관련한 명칭 유래는 다음과 같다. 첫째, 여우의...

  • 장승백이고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옥길동에 있던 고개. 예전에 장승은 동네 어귀나 사찰 입구에 서 있었다. 장승은 일정한 거리마다 세워 둠으로써 리정(里程)을 표시하는 표지판이기도 하고, 마을과 마을의 경계를 알려 주는 경계목이요, 마을을 외부로부터 수호하고 재난을 물리치며 소원 성취를 기원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사찰에서는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용으로 세우기도 하였다. 부천 지역에도 여느 지역과...

  • 절고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도당동 개롱지에서 여월동 안골로 넘어가는 고개. 절고개는 잘고개, 사현(寺峴), 사치(寺峙)라고도 한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는 “졀ㅅ골[절골]은 상오정면 도당리에 있다.”고 되어 있다. 『부천시사』[2002]에 의하면 절고개의 지명 유래는 절이 있어 ‘절고개’라고 이름 붙인 것은 아니라고 한다. 전국의 많은 절고개가 그 땅 이름으로 인해 절이...

  • 하우고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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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부천시 심곡본동에 있는 고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는 석천면(石川面) 심곡동에 있는 화오ᄌᆞㅣ산[華梧峴山]으로 되어 있다. 『부천시사』[2002]에서는 꽃과 오동나무가 많은 고개라는 뜻이라고 하였다. 하우고개의 어원은 학(鶴)고개인데 하오고개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화(華)는 꽃으로 발음하고 이는 곶(串)을 의미한다. 여기에 오동나무 오(梧)를...

  • 헐떡고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의 오정초등학교에서 오쇠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헐떡고개는 성재 혹은 성현(城峴)이라고도 한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 성재[城峴, 셩ㅅᄌᆞㅣ]는 하오정면 원종리에 있는 고개라고 쓰여 있다. 『부천시사』[2002]에 의하면 헐떡고개는 헐떡거리면서 오른다고 붙여진 이름이 아니고 원형은 ‘솔터고개’이다. 이것이 활터고개→헐떡고개로 변한 것이다. 또...

  • 활터고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작동에 있는 고개. 마을 토박이들의 증언에 의하면 조선시대부터 활을 쏘았다고 해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부천시사』[2002]에서는 활터고개와 과녁 터의 상관관계를 들어 활을 쏘았다는 유래담은 지명 유래와 관련이 없다고 하고 있다. 그러면서 활터고개가 솔터고개의 변형이라고 보는 견해를 제시하였다. 이에 따르면 솔터란 소도가 있는 곳을 말한다. 까치울의 마을 입구와...

  • 골짜기

  • 골짜기

  • 골짜기

  • 골짜기

  • 가마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여월동에 있었던 골짜기.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 상오정면 여월리 부평(釜坪)[가마골들]만 표기되어 있고, 가마골[釜谷]은 나오지 않는다. 가마골의 어원은 감골[釜谷]에서 찾을 수 있다. 감골이란 넓고 깊은 골짜기를 말한다. 『고강동·성곡동 마을지』[2015]에는 지형이 큰 가마솥처럼 옴폭 들어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한...

  • 가재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춘의동에 있던 골짜기. 가재골은 가재를 많이 잡아 ‘가재골’이란 명칭이 붙었다고도 하지만 이는 오래전 가재골이 청정 자연 상태일 때 가재가 많이 잡혀서 생긴 유래로 생각된다. 그 어원은 ‘갗의골’이 ‘갗애골’로, 이것이 음운변화를 일으켜 ‘가재골’로 바뀌었다. 따라서 가재골이란 ‘갗골’로서, ‘가장자리에 있는 골짜기’로 해석할 수 있다. 가재골은 춘의동에 있는 ‘멀뫼...

  • 갓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괴안동에 있던 골짜기.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는 옥산면(玉山面) 괴안리(槐安里)에 속하는 가곡현(佳谷峴)[가골고ᄀᆞㅣ]으로 표기되어 있다. 갓골은 본래 ‘[변(邊)]’의 ‘가[가장자리]’라는 뜻으로 ‘’이 ‘갓’으로 변한 것이다. 그리고 골은 골짜기이다. 따라서 갓골고개는 고얀 사람들이 생활용품이나 대장간에서 농기구를 수리하거나 사기 위해 새장...

  • 강상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고강동에 있는 골짜기. 강장은 세조 때 판서를 지낸 변종인의 시호인 공장(恭莊)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즉 ‘공장’이 ‘강장’으로 소리가 변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밀양변씨대동보』에는 ‘공장’의 표기를 처음에는 공장곡(恭莊谷)이라 했다가 나중에는 공상(恭上)골로 바꿨다고 하였다. 1918년 만들어진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강상곡(綱常谷)으로 표기되어...

  • 개롱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도당동에 있는 골짜기. 개롱지는 도당동 도당공원에 있는 골짜기이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는 상오정면 도당리에 속하는 ᄀᆞㅣ롱산으로 되어 있다. 내동에 세거하고 있는 전주이씨 족보에는 한자로 ‘개농산[開農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다시 쓰는 부천의 향토지명』[2016]에서는 개롱산의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고 농사와 관련된 지명으로 추측할 뿐이라...

  • 고래당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여월동에 있던 얕은 산등성이. 봉골과 여월동 안동네에서 작은 고개를 넘어 김포공항으로 통하는 국도에 있는 원미동과 여월동 경계까지의 밋밋한 원미산의 얕은 등성이가 고래등처럼 길게 늘어져 있어 고래당이라 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흔히 매우 큰 우물을 고래우물, 크고 좋은 집을 고래등 같은 기와집 등으로 호칭하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한편 『부천시사』[2002]에는 “고...

  • 구부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소사동에 있던 골짜기. 구부골은 웃골, 혹은 악박곡(岳薄谷)이라고도 한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 옥산면 소사리에 속하는 악박곡[구부골]으로 표기되어 있다. 구부골의 명칭 유래는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구부골의 어원을 ‘구ㅣ골’로 보는 것이다. 이것이 ‘굽이’를 거쳐 ‘구부’로 바뀌었는데, ‘구부’가 다시 ‘구비’로 바뀌기도 하였다. 또...

  • 구석계일뒷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계수동에 있던 골짜기. 구석계일 북쪽 뒤에 위치하고 있다고 해서 뒷골이란 명칭이 붙여졌다. 구석계일뒷골은 할미산[일명 안산]의 계수동 웃계일과 구석계일 사이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구석계일은 시흥시와 부천시의 경계로 시내버스 12번 노선의 종점이다. 지금은 골짜기의 형태가 전혀 남아 있지 않다....

  • 능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고강동에 있는 골짜기.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는 하오정면(下吾丁面) 고리동(古里洞)에 속하고 ‘능곡(陵谷)’, ‘능ㅅ골’로 표기하고 있다. 『부천사연구』[1992]에서는 능이라고 한 것은 왕릉은 아니지만 정2품 이상의 벼슬을 지낸 관리의 묘가 있어서 붙여진 것이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엄격한 능원 제도 아래에서 왕실 묘가 아닌데 능으로...

  • 능안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작동에 있던 골짜기. 능안[陵內]이라는 이름은 능이 있는 골짜기[일명 능골] 안쪽이라는 뜻에서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능안을 에워싼 골짜기는 여흥민씨와 청주한씨의 선산인데, 여흥민씨 족보에는 능안이 한자로 ‘능내(陵內)’라고 기록되어 있다. 능안을 ‘능안골’이라고도 부른다. 부천시 작동 142번지 일대로, 웃말 동쪽으로 길쭉하게 뻗은 골짜기였으며 서울로 통하는 길이...

  • 댓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소사동에 있는 골짜기. 댓골이란 큰 골짜기라는 뜻이다. 한자로 표기하여 대곡(大谷)이라고도 했다. 댓골은 부천시 쪽의 성주산에서 시흥시 대야동 쪽까지 길게 뻗은 골짜기로 성주산에서 두 번째로 큰 골짜기다. 하우고개를 넘어가면 YWCA수련장이 나오고 음식점들이 즐비한데, 그곳이 댓골이다. 댓골에는 일제강점기에 옹기쟁이들이 모여 옹기를 굽던 곳이 있었다. 옹기의 수요가...

  • 도티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심곡본동에 있는 골짜기. 『부천시사』[2002]에는 도티굴 위쪽으로는 도토리나무 등의 활엽수가 많아서 가을이면 도토리들이 흔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지명 유래가 전해지기도 한다. 반면, 돼지의 옛 이름이 ‘돝’인데 이곳에 돼지가 자주 출현해서 ‘돝의굴’이 된 것이며, 이것이 음운변화를 거쳐 ‘도티굴’이 된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부천남중학교에서 인천광역시 남동구 장수동...

  • 둔대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역곡동에 있는 골짜기. ‘둔’의 어원은 둠으로 둥근, 둘러싸인, 뭉침, 덩이의 의미로 쓰였다. 대가 여기서는 터를 가리키는 것으로 둔대는 둥근 터, 둥그런 산을 의미한다. 둔대산(屯垈山)은 산의 지형이 마치 봉긋한 무덤처럼 생겼다. 둔덕산(屯德山)·춘덕산(春德山)·부춘산(富春山)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으나 부춘산을 제외하고는 의미는 같은 것이다. 둔대골은 둔대...

  • 망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춘의동에 있는 원미산의 골짜기. 망골은 망곡(望谷), 망곡(亡谷), 밤골, 방곡(芳谷), 방곡(傍谷), 방골산[坊谷山]이라고도 한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는 방골[방ㅅ골]은 하오정면 여월리에 있다고 쓰고 있다. 1993년 구간(區間) 경계 편입 시행으로 원미구 춘의동이 되었다. 망골은 춘의동 밤골에서 벌응절리 쪽 골짜기이다. 1988년도에 출판된...

  • 멱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역곡동에 있던 자연마을. 『부천시사』에서는 짐승의 목에 해당한다고 해서 멱골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멱살 잡다, 돼지 멱따다’와 같이 목을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목처럼 좁고 잘록한 골짜기를 의미한다. 현재는 멱골 일대가 아파트 단지와 빌라단지로 채워져 있고, 멱골 뒤쪽으로 원미산 산자락을 깍아 지은 가톨릭대학교가 자리잡고 있다....

  • 미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역곡동에 있던 골짜기. 1988년에 편찬된 『부천시사』에는 원미골로 표기되어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미골로 부른다. ‘미’는 산, ‘골’은 골짜기를 의미하므로 미골은 산골짜기를 뜻한다. 부천시 송내1동에도 산골이 있는데 그 뜻은 같다. 하지만 송내동 산골은 마을 이름이고, 역곡2동 미골은 골짜기 이름이다. 미골은 멀미[원미산]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미골 아래쪽에...

  • 밤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춘의동에 있는 골짜기. 본래는 ‘망골[亡谷]’이었다. 이 일대 후미진 골짜기에 죽산박씨 공동묘지가 있어 ‘망골’이라 한 것이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이 지역에 밤나무 단지를 조성한 이후로 밤골이라 한 지극히 단순한 지명이다. 『부천시사』[2002]에도 “일제강점기 부천에서 소학교를 다닌 오카다[岡田卓]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회화식으로 그린 1940년대 「부천시가도」이...

  • 뱀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역곡동에 있는 골짜기. 뱀골은 둔대골 옆 부천역곡초등학교 뒤쪽으로 나 있는 계곡의 하나이다. 둔대산 남쪽 기슭에는 여러 개의 골이 있는데, 뱀골은 북쪽 첫 번째에 있는 골짜기이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 부평군 옥산면 벌응절리 사곡평(蛇谷坪)으로 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골짜기의 지형이 역곡초등학교 앞에서부터 뒤편 산 아래까지 뱀처럼 구불구불하고 길...

  • 봉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여월동에 있는 골짜기. 봉골은 봉황골, 봉곡, 봉동이라고도 한다. 산의 모양이 봉황을 닮았다거나 봉황이 날아와 깃들 정도로 산림이 우거진 골짜기로, 봉황이 둥지를 틀었다는 유래담을 가지고 있다. 봉골 주변에는 도당산이 있어 안골, 새경골, 가마골 등 여러 골짜기가 형성되어 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는 성골 뒷산을 ‘아미산’으로 표기했고, 점말도...

  • 봉천이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작동에 있는 골짜기. 봉천이골은 봉천곡이라고도 한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 봉천곡(鳳泉谷)[봉쳔이골]은 하오정면 작동에 있다고 씌어 있다. 옛날에 깨를 많이 재배하여 돈을 많이 번 봉천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어서 봉천이골이라고 하였다는 유래담이 전한다. 『부천시사』[2002]에서는 “이곳은 봉천이가 살아서 붙여진 이름이 아니라 봉배산(鳳倍山)에 사...

  • 부굴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범박동에 있는 골짜기. 부굴골은 구부골의 바뀐 이름으로 보인다. 골짜기가 구불구불하게 이루어졌다고 해서 붙여진 구부골의 앞뒤 말이 순서가 바뀌어 부굴골이 된 것이다. 할미산 오른쪽 소새로 펼쳐진 골짜기도 구부골인데 이름이 똑같다. 이 골짜기 상류에는 과수원이 펼쳐져 있고 아래쪽으로는 벼농사를 짓고 있다. 예전에는 골짜기까지 강물이 밀려들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범위도...

  • 불당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범박동에 있는 고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는 부평군 옥산면 범박동 불당현(彿堂峴)으로 표기되어 있고 불당골은 따로 표기되어 있지 않으나 불당고개가 있는 골짜기로 볼 수 있다. 불당, 즉 사찰이나 암자 등 불교와 관련된 시설이 있는 계곡을 말함이다. 『부천시사』[2002]에서는 불당(佛堂)의 ‘불’은 남자의 사타구니를 말하고 ‘당’은 안쪽을, ‘현...

  • 사박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괴안동에 있던 골짜기. 사박굴에서 ‘굴’은 골짜기를 가리킨다. 사박은 삽안이 사반으로 바뀐 후, 사박으로 변한 것이다. 삽은 샅이라는 뜻으로 삽다리에서 보여지듯 ‘사이’라는 의미이다. 즉 웃고얀과 아랫고얀 사이에 있는 골짜기를 의미한다. 웃고얀·가운데고얀·아랫고얀으로 통치되는 고얀 사람들은 사박굴 골짜기에서 바우백이에 올라 사방의 경치를 바라보는 것을 즐겼다. 이 때...

  • 삼막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작동에 있던 골짜기. 최현수의 『부천사연구』1[1992]에는 삼막골에 대하여 “새말에 소재한 소지명으로 지골 부근이다.”라고 하였다. 한도훈의 『부천의 땅이름 이야기』[2001]에는 “이 삼말골을 어원적으로 풀이하면 삼(三)의 고대어가 시(枾)이고 말은 마(馬)를 뜻한다. 삼정(三井)의 고대어가 시우물[三井里]에서 찾아질 수 있는 것에서 유추할 수 있다. 삼말골은 그...

  • 삼자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범박동 웃고얀[괴안동] 남쪽에 있던 골짜기. 삼자골은 삼재골이라고도 하였다. 최현수의 『부천사연구』1[1992]에는 삼자골에 대해 “윗괴안 남쪽에 있던 골짜기를 이른다.”라고 하였다. 지금의 괴안동을 예전에는 모두 고얀, 괴안으로 불렀고, 안곡로를 따라 유한대학교 쪽으로 지형에 따라 웃고얀[청암아파트 주변], 가운데고얀[대현, 현대아파트 주변], 아랫고얀[효창연립 주...

  • 새경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여월동에 있는 골짜기. 새경골은 양반집 머슴이 새경으로 산 밭이 있는 골짜기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으로 보이며, 일명 효경골이라고도 한다. 한자로는 효경곡(孝經谷)이라 해서 효의 골짜기처럼 보인다. 『조선지지자료』에도 효경곡이라 되어 있다. 그런데 마을이 아닌 골짜기에 효를 붙일 이유가 없어 보이므로 조선시대 어느 선비가 묻히면서 이런 이름이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 새재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역곡동에 있는 골짜기. 새재골은 세제골이라고도 한다. 최현수의 『부천사연구』1[1992]에서는 세제골을 “춘덕산 앞에 있는 야산”이라고 하였다. 백수현의 『부천시사』1[2002]에서는 “『부천사연구』에서는 세제골로 표기하고 있다. 세제란 새재의 오기이며, 사이라는 뜻인데 망골과 둔대골 사이에 있는 언덕을 가리켜 새재라고 부르다가 세제로 바뀐 것이다.”라고 하였다. 벌...

  • 서름이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작동에 있는 골짜기. 서름이골은 서늘하고 음산한 지역이라는 뜻으로 호암산 줄기 공동묘지가 있는 작동의 골짜기이다. 서름이터라고도 한다. 최현수의 『부천사연구』1[1992]에서는 서름이터를 설명하기를 “범바위산 밑 장수의 발자국이 있는 바위가 있던 곳으로 부자인 서름이가 살았다는 데서 유래하여 붙여진 명칭이다.”라고 하였다. 한도훈의 『부천의 땅이름 이야기』[2001]...

  • 소두머리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고강동에 있는 골짜기. 소두머리골은 고리울에서 서울특별시 강서구 화곡동으로 가는 길과 오정대로였던 봉오대로가 갈라지는 삼거리 왼쪽 둔덕을 소두머리라 하고, 그 앞쪽 봉오대로를 포함해서 오쇠동 무덤골을 지나 김포공항 앞까지의 골짜기를 말한다. 소머리골, 내며리, 소두골, 남여리(南餘里)라고도 한다. 최현수의 『부천사연구』1[1992]에는 내며리[소두머리]에 대해 “삼태...

  • 식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고강동에 있는 골짜기. 식골은 식곡(植谷), 식곡(息谷), 시곡(蒔谷), 은행단지 등으로도 불린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 부평군 하오정면 산곡명(山谷名) 조에는 고리동의 후곡(後谷)[뒤ㅅ골], 능곡(陵谷)[능ㅅ골], 강상곡(綱常谷)[강상골]과 함께 식곡(植谷)[식골]으로 조사되어 있다. 이는 지형이나 생김새에 의한 자연적인 작명보다는 특정한 의미에...

  • 안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여월동 아미산 동남쪽, 도당산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안골은 인근 아미산(蛾眉山), 도당산에서 가장 골짜기가 길고 깊으며, 골짜기 아래쪽에 구렁목고개라는 지명이 생겨날 정도로 숲이 빽빽하게 우거져 있었다. 일제 강점기 당아래고개에서 멧마루로 향하는 도로가 생긴 뒤로 사람들이 이주하여 농사를 짓고 이로 인해 숲이 사라졌다. 춘의산에서 춘의동, 여월동 경계 지점 동쪽 골...

  • 앞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역곡동 건지산 동쪽에 있는 골짜기. 마을 앞에 있다고 해서 앞굴로 붙여졌고, 너구리가 많이 살았다고 해서 너구리골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앞굴 바로 옆에는 너구리골 양계장이 자리 잡고 있다. 앞굴에서 흘러내린 물이 용문내로 합류하여 안양천으로 흘러간다. 이곳에는 소사구 하수종말처리장이 들어서 있고, 부천남부수자원생태공원으로 꾸며 놓아 대장 한다리에 있는 부천북부수자원생...

  • 원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약대동에 있던 골짜기. 약대동 해골동산에서 동쪽으로 뻗어 내린 골짜기였다. 약대초등학교가 들어서기 전까지 원골로 원골내가 흘렀다. 원골은 『부천사연구』[1992]에는 원곡(阮谷)으로 표기되어 있고,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는 원곡(源谷)으로 표기되어 있다. 원(源)은 바다나 하천을 의미하므로 원골은 할미산에서 흘러내린 물가에 닿아 있는 계곡이라는 뜻...

  • 역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역곡동의 지명 중 하나. ‘역골[驛谷]’은 경인철도와 관련된 지명일 것으로 여겨진다. 『구한말한반도지형도』[1895]를 보면 외딴말[獨洞]로 표기되어 있었다. 이후 1899년 9월 18일 경인철도가 개통된 이후의 1910년 「부평군 옥산면 벌응절리 토지조사부」[1910]를 보면 19번지와 36번지 두 집이 있다. 곧 두 채의 집이 본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외딴말...

  • 우산방죽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도당동에 있었던 골짜기. 우산방죽골은 본래 상오정면(上梧亭面) 와우리(臥牛里)의 골짜기로, 도당동 벚꽃 동산으로 올라가는 부천시 평천로850번길 157[도당동 183-5] 일대를 말한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 한글로 “도당리 우산방죽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일대에 방축(防築)이 있어 지어진 이름으로 여겨진다. ‘우산(牛山)’은 현재 춘의산 혹은...

  • 작은마리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심곡본동에 있던 골짜기. 작은마리골은 작은만의골, 혹은 작은마니골이라고 한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는 인천부 조동면(鳥洞面) 동리명(洞里名)에 만의동(晩宜洞)[만의골]으로 나온다. 그러니까 만의고개는 만의동에 있는 고개로 일반적으로는 마니고개, 마리고개라 부르기도 하였다. 성주산 줄기를 따라 고갯길이 세 군데가 있는데 이 중 두 개는 남북을 잇는...

  • 장자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여월동에 있던 골짜기.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는 장좌봉산(將座峰山)은 하오정면 여월리에 있다고 되어 있다. 『부천시사』[2002]에는 “장자골의 어원은 잔잣골이다. 잔은 ‘잘디 잘다’는 뜻으로 작다는 의미이며, 잣은 ‘위·산꼭대기·등성마루·산·고개’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장자골은 ‘작은 산’을 말한다. 멀미의 장대봉에 비하면 작은 봉우리이고 작은...

  • 지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춘의동과 서울특별시 구로구 온수동과 경계를 이루는 계곡. 지골을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서는 니곡(泥谷)으로 표기해 놓고 있다. 진흙창 골짜기라는 이야기로, 냇물이 많아 질은 골짜기라는 의미의 질골이 어원이다. 이 질골이 진골로 바뀌고, 또다시 지골로 바뀌었는데, 한자로 표기하면서 진흙 니(泥)를 써서 니곡(泥谷)으로 붙인 것으로 여겨진다. 까치울마을 사람들이...

  • 창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송내동에 있던 골짜기. 창골은 창고를 말하는 것으로 곡식 창고가 있던 골짜기를 가리킨다. 『부천시사』[2002]에 의하면 창골은 조선시대에 들어서 생긴 이름이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에 세 개의 조창(曹倉)이 있어 부천 지역에서 생산된 쌀이며 잡곡, 곡식들을 저장하였다가 굴포천을 통해 한강으로 배로 싣고 나가 용산 포구로 실어 날랐다고 하는 지명 유래도 전한다. 송내동...

  • 천척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내동, 오정동에 있던 골짜기. 『조선지지자료』에는 상오정면 삼정리에 속하는 천척골들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이는 골짜기의 넓이가 갑자기 넓어져서 생긴 이름이다. 개롱지내가 상아재를 휘돌아올 때는 좁은 냇물이었지만 경원세기 앞쪽에서 아주 넓게 벌어졌음을 의미한다. 척척골, 첩첩골은 천척골이 변해서 된 말이다. 개롱지에서 흘러내린 물이 녹교지들을 거쳐 상아재들을 지나 경원...

  • 청등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괴안동 일대에 있던 들. 청등들은 청등평(靑登坪)이라고도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는 옥산면 괴안리에 속하는 청등평으로 되어 있다. 『부천시사』[2002]에서는 청등들은 보리와 벼 등 곡식들이 자라는 푸른 들판이라는 뜻이라고 하였다. 계곡 위쪽으로는 밭농사를 짓고 아래로는 미나리꽝이 있는 등 푸른색이 짙어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 탑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작동 베르네 위에 있는 골짜기. 탑골은 탁골, 탑곡(榻谷), 걸골이라고도 한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는 탑곡[탑ㅅ골]은 하오정면 작동에 있다고 되어 있다. 『부천시사』[2002]에서는 탑골은 걸상을 훈차해서 ‘걸상 탑(榻)’이라는 한자로 변형된 것으로 보았다. 걸상의 ‘걸’은 하천을 의미하는 고대어이다. 아마도 고대에는 걸골이라고 했다가 나중에...

  • 풍무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춘의동에 있는 골짜기. 풍무골은 풀무골, 푸무골, 풀뭇골, 풍무곡(豊舞谷)이라고도 한다. 풀무골은 부천시 춘의동의 옛 낫소[株] 일대 골짜기를 말한다. 『부천사연구』[1992]에서는 겉저리로 가는 중간에 전씨와 박씨가 운영하는 옹기점이 있었는데, 여기서 화분을 구워서 풍무굴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해석에 의하면 풍무골은 풀무골이 어원으로 ‘풀’은 어원이 ‘...

  • 화줄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작동에 있는 골짜기. 여흥민씨 묘역인 작동 산57-2번지와 청주한씨 묘역인 역곡로344번길 89-17[작동 산19] 사이에 일직선으로 그어져 있는 경계선을 화줄골이라 한다. ‘화줄골’의 의미는 ‘벼 화(禾)’ 자와 고유어 ‘줄[線]’과 골짜기를 말하는 ‘골[谷]’을 합쳐서 부르는 복합 향토 지명이다. 2003년 마을 토박이인 여흥민씨(驪興閔氏) 후손 민경술[68]은...

  • 평야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 지역에 분포하는 기복이 적고 비교적 평탄한 저지대. 부천에 분포하는 평야는 북부와 서부에 있는 굴포천의 여러 지류가 중동과 오정동에서 합류하면서 형성된 충적 평야이다. 이 평야는 대체로 부천역 주변을 중심으로 송내동과 상동 및 중동 지역을 거치는 벌판이다. 부천의 평야는 낮고 평탄한 지형을 이루는 곳이 많기 때문에 교통이 발달했고, 사람들이 거주하기에 좋은 지역이다....

  • 가마골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여월동에 있는 들판.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의 상오정면 여월리 조에는 부평(釜坪)[가마굴들]으로만 표기되어 있고, 가마골[釜谷]은 나오지 않는다. 가마골의 어원은 감골[釜谷]에서 찾을 수 있는데 감골이란 넓고 깊은 골짜기를 말한다. 『고강동·성곡동 마을지』[2015]에는 지형이 큰 가마솥처럼 옴폭 들어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의견을 내고 있다....

  • 감배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역곡동에 있던 들. 감배들은 감배산 아래에 있는 들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지지자료』에는 벌응절리에 속하는 춘교평(春橋坪)으로 되어 있다. 처음에 춘교들이라고 하였다가 나중에 마을 사람들이 감배들로 고쳐 부른 것으로 보인다. ‘감배’는 어원이 ‘배’로, ‘’은 고대에서 지신(地神)을 뜻하는 족장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배(倍)’는 ‘’에서 나온 말로 밝...

  • 김묵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중동에 있던 논. 이곳에 뿌리를 삶아 먹는 풀의 일종인 김묵이 많이 돋아났다는 데에서 명칭이 붙여졌다고 한다. 심곡동 22번지와 40번지 일대의 논을 이르는 말로, 바로 옆이 벌막이다. 만석이들 자리를 김묵벌로 보기도 한다. 애초 심곡진동에 소속되었다가 중동으로 자리바꿈을 한 것이다. 김묵벌에는 현재 부천중앙초등학교와 연화마을, 건영아파트, 벌막공원, 연못공원 등이...

  • 녹교지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내동에 있던 들. 경인고속국도 부천톨게이트 동편에 내동공단과 오정 노동복지회관 뒤편에서 거칠고개까지 이어진 매우 긴 능선이 상아재이다. 그런데 경인고속국도 건설 때 이 산마루를 반토막 내버려 능선이라는 느낌은 사라져 버렸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는 녹교지들이 상아ᄌᆞㅣ들과 함께 상오정면 내촌에 있다고 나와 있다. 토박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녹교지들...

  • 대월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옥길동에 있던 들. 대월들은 하채들, 대월평(對月坪)이라고도 한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는 옥산면(玉山面) 항동(航洞)에 속하는 ‘대월평’으로 표기되어 있다. 『부천사연구』[1992]에서는 ‘계리월’이라 쓰고 닭이 아름다운 달을 보고 울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해석하기도 하였다. 『부천시사』[2002]에서는 ‘월(月)’은 산을, ‘대(對)’는 마주...

  • 된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중동과 삼정동에 있던 논. 부천 지역에는 된벌이 두 곳 있는데 한 곳은 중동 1037번지로 지금의 대우동부아파트 일대, 다른 한 곳은 삼정동의 일명 데붇둑에서 상살미 사이에 있던 논이었다. 된벌은 주위의 논보다 지대가 높고 토질 또한 거칠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높은 벌’ 또는 ‘모진 논’이라고도 하였다. 『부천시사』[2002]는 된벌은 1923년 한강수리조합이 만들어...

  • 뒷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범박동에 있는 들. 뒷들은 범박뒤뜰이라고도 한다. 범박마을 뒤에 있는 들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삼태봉 줄기에서 시작해서 양지마을 앞을 지나고 숙공산 남쪽 아래까지에 펼쳐져 있는 들이다. 앞으로는 암우들이라는 들이 있고 뒤로는 뒷들이 있었던 것을 보면, 범박동은 예전에 농사를 지었던 곳임을 알 수 있다. 한강이 정비되기 전에는 이곳까지 물이 들어찼고, 지금도 농...

  • 뒷마루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에 있던 들. 큰말에서 볼 때 오정마루 뒤에 위치하고 있었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뒷마루들은 현재 자동차 매매단지, 영안모자, 부천우편집중국이 있는 오정동 202-1번지와 384번지 일대이다. 이 지역은 일찌감치 들을 가로질러 국방도로가 생기고, 영안모자가 들어오면서 들의 면모가 점차 상실되었다. 예전 뒷마루들 남쪽으로는 현재 크고 작은 공장들이 많이 들어서 있...

  • 뱀골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역곡동에 있는 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는 부평군 옥산면 벌응절리 사곡평(蛇谷坪)으로 되어 있다. 뱀골들에서는 뱀골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로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뱀골은 둔대골 옆 부천역곡초등학교 뒤쪽으로 나있는 계곡의 하나이다. 둔대산 남쪽 기슭에 있는 여러 개의 골짜기 중 북쪽 첫 번째 골짜기이다. 예전에는 뱀골의 수량이 아주 풍부했다고 한다...

  • 번개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대장동에 있는 들. 번개들은 전야(電野)라고도 한다. 번개들은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 주화곶면(注火串面) 대장리에 속하는 전야[번ᄀᆞㅣㅅ들]로 되어 있다. 번개들은 지명만 보일 뿐 위치나 지명의 유래는 알지 못한다. 번개들의 번은 ‘벌어진’의 뜻이며, 개는 포구의 우리말이다. 우리말 번개가 한자로 표기되면서 ‘전(電)’이 된 것으로 보인다. 즉 포...

  • 벌막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심곡1동에 있던 마을. 벌막은 벌말, 만석이들, 만석평(萬石坪), 평촌(坪村)이라고도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는 석천면(石川面) 심곡리에 있는 만석평[만석이들]으로 기록하였다. 마을 앞 넓은 벌판에 자리 잡은 마을이라서 벌막이라 이름하였다. 지도에 보면 6채~7채 집이 보인다. 이러한 유형의 지명은 전국에 무수히 많다. 한편으로는 만석이들에...

  • 벌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에 있던 들. 벌판이라는 의미로 벌터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벌터는 일제강점기 이전까지만 해도 벌판이고 밭이었다. 일제강점기부터 사람들이 이곳에 집을 짓기 시작해서 광복 후에는 10여 채가 되었다고 한다. 주로 살림이 어려운 이들이 이곳에 허름한 초가집을 짓고 살았다고 전한다. 할미산 중턱이어서 영신과 더불어 신앙촌에 있던 사람들이 모여든 것으로 볼 수 있...

  • 부평평야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인천광역시 부평에서 경기도 부천 지역을 거쳐 서울특별시 영등포까지 펼쳐진 평야. 넓은 황무지를 개척하여 곡창지로 만들었는데, 그 농지가 넓어 수확이 많이 나는 풍요로운 평야라는 뜻이다. 즉 한강 하류 지역의 어느 특정한 곳에 주현 규모의 중심지가 자리를 잡았고, 이 중심지가 관할하는 땅이 넓고 평평하게 펼쳐쳐 있다 하여 부평평야라 부르게 되었다. 부평평야는 북쪽에서부터 한강 수로의...

  • 신기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원종동과 오정동에 있는 마을. 신기들은 새탄말 혹은 새터말[新墟里, ᄉᆞㅣ텃말]이라고도 한다. 최현수의 『부천사연구』1[1992]에는 원종동의 새터말에 대하여 “새터말[新墟里로 서림아파트 주변. 옛날 오정면사무소 남쪽 지역 236번지-277번지]: 외지인들이 계산 기슭 양지바른 터에 집을 짓고 새 삶을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이다.”라고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

  • 암우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범박동 앞에 있는 들. 암우들은 범박 안동네 앞이고, 배못탱이 앞에 있는 들을 가리킨다. 『조선지지자료』에는 암우평(岩隅坪)으로 범박동에 속해 있는 것으로 적고 있다. 이는 바위 암(岩) 자가 바회로 배를 표기한 것으로 보이고, 모퉁이 우(隅) 자는 모퉁이를 한자로 적은 것으로 여겨진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바위모퉁이들이다. 이는 배못탱이들과 그 뜻이 같다. 암우들...

  • 압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소사동에 있던 들. 아랫소새마을과 윗소새마을 앞에 있는 들이라고 하여 압들이라고 불렀다. 『조선지지자료』에는 전평(前坪)으로 기록되어 있다. 소사리에 속한 것으로 되어 있다. 중림재 개울 아래인 현태굴다리 위까지는 서해 조수가 밀려들어 왔는데, 서해 조수가 미치지 못하는 상류쪽으로는 일찍부터 들판이 조성되었다. 이 들을 가리켜 압들이라고 한다. 압들 인근으로는 산지가...

  • 앞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대장동에 있는 벌판. 『조선지지자료』에는 전야(前野)로 표기되어 있다. 방오리보를 따라 형성된 들을 가리키는데, 앞벌은 큰말 앞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이다. 방오리보가 축조되기 전에는 개별적으로 둑을 막아 농사를 지었지만 방오리보가 축조된 후 커다란 벌판이 조성되었다. 현재는 넓게 형성된 대장리들에서 밭농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인근에는 덕산초등학교 대장분교장이 위...

  • 외송나무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중동에 있던 들. 지금의 중동 1034번지[길주로 205] 중동 은하마을 앞 상가 일대이다. 소나무가 많았으며, 외송나무벌 동쪽으로 겉저리내가 흘렀다. 현재 외송나무벌이 있던 자리의 맞은편에 부천시청이 들어서 있다....

  • 용구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원종동에 있는 들. 용구리는 봉오대로 원종톨게이트 서북쪽에 있는 원종동 24-1번지, 원종동 24-2번지, 원종동 24-3번지 일대의 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곳에는 큰 연못이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용구리가 들을 일컫는 것인지 연못을 가리키는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부천시사』[2002]에서 용은 크다는 의미, 구리는 굴로 골짜기를 의미하므로 용구리는 큰 골짜기를...

  • 장구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역곡동에 있던 들 이름. 장구들은 장구처럼 생긴 들이 아니라 길게 펼쳐진 들이라는 뜻이다. 『조선지지자료』에는 장구평(長久坪)으로 표기되어 있다. 긴 들을 한자로 옮기면서 장구평이 된 것이다. 이름에서 이 일대에 제법 긴 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장구들은 벌응절리 지역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벌응절리 지역은 벌응절리, 큰말, 건너말, 역골, 사래울로 이루어져...

  • 장포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상동에 있던 들. 장포들은 장포평(長浦坪)이라고도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는 석천면 상리에 속하는 장포평으로 표기되어 있다. ‘장포’는 긴 포구를 뜻하므로, ‘긴 포구 앞에 있는 들’이라는 의미로 장포들이라 한 것으로 여겨진다. 마을에 긴 개[浦]가 있었던 데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되나 자세한 지명 유래는 알 수 없다. 『부천시사』[2002]...

  • 한다리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대장동에 있던 들. 한다리들은 대교평(大橋坪), 돌다리들, 부평평야라고도 하였다. 우리 말에서 보통 ‘한’은 ‘크고 넓다’라는 뜻이다. 한다리들은 ‘한다리’가 놓여 있던 일대에 펼쳐진 들이라는 뜻이다. 다리 이름을 ‘한다리’라고 한 것은 놓여진 다리가 커서일 것이다. 한자로 ‘대교(大橋)’라고 한 것도 크다는 뜻을 살린 것이다. 한다리들은 수해가 나면 농사를 지을 수...

  • 한배미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고강동에 있는 논. 한배미의 ‘한’은 토박이말로 ‘크다’이고, ‘배미’는 논을 세는 단위이므로 큰 논배미를 이른다. 고강동 응구리 사이에 있는 큰 논을 말한다. 근동의 논들은 다락논들인데, 유독 한배미만이 아주 크게 만들어졌다. 한배미는 뒤골로 연결이 되어 있어 예전에는 서해 조수가 밀려 들어왔다. 1923년 한강수리조합이 만들어진 뒤에는 들이 만들어졌다. 이곳으로...

  • 화개앞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약대동에 있던 들 이름. 화개는 한자로 화포(華浦)라고 표기한다. ‘화’는 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곶’에서 나온 말로, 곶이 꽂이 되었다. 우리말로 곶개, 고지개, 구지개라 한다. ‘개’는 개 포(浦)로 포구를 뜻한다. 그러므로 화개는 ‘바다 쪽으로 툭 튀어나온 포구’를 의미한다. 화개 앞이어서 화개앞벌 또는 화개앞들이라고 불렀다. 한자로는 화포야(華浦野)라고...

  • 하천

  • 하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 지역에서 육지 표면의 자연 수계를 따라 물이 흘러 형성된 물길과 계류. 하천은 산에서 시작된 자연 하천이 주를 이루지만 현재 도시 개발로 인해 없어진 내를 다시 인공적으로 조성하고 있다. 하(河)는 큰 강, 천(川)은 작은 강을 뜻하고, 우리나라에서는 큰 강을 강(江), 작은 강을 천(川) 또는 수(水)로 나타내고 있으나 오늘날에는 혼용하는 경우가 많다. 지표면에 내린...

  • 고리울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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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부천시 고강동 식골에서 발원하여 원종동으로 흘러서 굴포천과 합류하는 하천. 고리울은 부천시 고강동의 옛 이름으로, 곰달래고개를 고음월령(古音月嶺)이라 했다. 이에서 나온 지명이 고음달리(古音達里)로서 ‘음달(音達)’을 빼면 고리(古里)가 된다. 예전에 족장을 뜻하는 ‘’인 ‘곰’을 한자로 표기할 때 웅(熊)으로 표기하거나 고음(古音)으로 표기하였다. 달(達)은 산을 뜻하는...

  • 구지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심곡본동과 송내동에 걸쳐 있던 하천. 구지내는 구지천 또는 상리천으로도 불린다. 구지내는 구지리를 휘돌아 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상리천은 신상리를 휘돌아 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구지내는 도티굴 골짜기에서 물이 발원하여 솔안말을 지나 구지리로 흘러 드는 하천이었다. 송내역 역사 옆으로 흐르던 내[川]인 구지내는 마을 동북쪽으로 휘돌아 흘러 구지리 사람들이...

  • 굴포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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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광역시 부평구 일신동 철마산에서 발원하여 부평구 갈산동, 부천시 상동과 중동 지구를 거쳐 경기도 김포시 고촌읍 전호리에서 한강으로 합류하는 하천. 굴포천은 한강 하류부에 있는 한강의 제1지류로 인천광역시 부평구 일신동 철마산에서 발원하여 부평구의 도심지를 통해 북쪽으로 유하한 후 동쪽 방향으로 부평구 갈산동, 부천시 상동 및 중동 지구를 거쳐 경기도 김포시 신곡리 행주대교의 한...

  • 대교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김포에서 부천시 약대동 묵시통 앞까지 직포를 파면서 양쪽으로 둑을 쌓아 생긴 하천. 대교천은 굴포(掘浦)[판개], 직포(直浦), 굴포천(堀浦川)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부평도호부 조에 “대교(大橋)는 직포에 있다. 굴포천을 대교천(大橋川)으로 부른다.”라고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는 대교[한다리]와 관련된...

  • 베르네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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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부천시 춘의동 멀미산 칠일약수터에서 발원하여 성곡동, 원종동, 오정동과 동부간선수로를 관통하여 굴포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베르네천은 벼랑내, 베르네, 벼리내, 베리내, 비린내, 비리내, 별인내 등으로도 불린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는 하오정면 여월리에 속하는 별인천(別仁川)[별인ᄂᆞㅣ]으로 표기되어 있다. 내[川]는 하천을 의미하고, 별·베리·비린·비리...

  • 소사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시흥시에서 부천시 소사본동 소사역, 심곡동, 중동까지 흘렀던 하천. 소사천은 1979년 복개되어 자연 하천의 기능을 잃었다. 심곡천의 본류이다. 소사는 ‘소사’로 표기하고 토박이말로 ‘소새[쇠]’로 읽는다. ‘가는[고은] 모래’, 또는 철광과 관련 있는 지역이라는 데서 유래한 명칭으로, 소사에 흐르는 하천이라 하여 소사천이라고 하였다. 『부천문화』88호[2014]에 의하면...

  • 시민의 강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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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부천시 상동에 있는 인공 하천. 중동·상동 신시가지가 생기면서 부천은 생활편의를 갖춘 자족도시로서 부족함 없는 도시가 되었지만, 콘크리트 숲에 둘러싸여 택지공간에 비해 녹지공간이 부족하였다. 시민의 강은 이런 배경 속에서 시민들과 시민단체의 염원을 수용하여 만들어졌다. 2003년 10월 상동 신시가지 내에 물길을 내고 물을 끌어들여 나무와 꽃, 물과 빛이 어우러지는 환경 친...

  • 심곡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심곡동 777-11번지에서 발원하여 심곡동을 거쳐 굴포천으로 합류하는 하천. 과거 부천의 대표 하천으로 불리던 소사천의 지류 하천이다. 1986년 복개되어 도로와 하수도로 사용되다가 일부 지역이 2017년 생태하천으로 다시 복원되었다. 심곡동을 경유하여 흐르는 하천이라 해서 심곡천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2017년 심곡천 복원 이후 심곡천의 양쪽에는 소나무, 이팝나무,...

  • 용못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역곡동에서 발원하여 괴안동과 광명시를 거쳐 안양천으로 흘러 들어가는 하천. 자세한 지명 유래는 미상으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도 용못내[龍池川]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편 벌응절리와 역곡동에서 발원하여 벌응천, 역곡천이라고도 불렀다. 용못내의 용은 물의 신인 ‘용’, 못은 ‘연못’을 의미하므로 용이 사는 하천이라는 뜻의 ‘용물내’, ‘용문내’라고 부...

  • 큰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 할미산 구부골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하천. 큰내는 홍천(洪川), 심곡천, 소사천이라고도 하였다. 큰내[소사천]의 발원지는 봉매약수터[소사본동 산53, 소사로 77-1[소사본동 산57]]이다. 큰내의 물길은 봉매약수터에서 흘러온 물과 성주산 윗소새 골짜기에서 흘러내려 온 물줄기가 소사동에서 합류하여 소사삼거리→소사역 아래를 통과하였다. 이 물은 소명여자중학교 입...

  • 터진목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범박동에 있던 둑. 전국적으로 ‘터진목’이란 이름을 가진 땅 이름은 전라남도 신안군 지도면 마천리 건너마을 동남쪽에 있는 터진목들, 신안군 자은면 백산리 와우 동쪽에 있는 터진목들, 충청남도 당진군 송산면 유곡리 서남쪽에 있는 터진목 골짜기, 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용리 용수말 남쪽에 있는 터진목들, 제주도 남제주군 성산읍 성산리 수마포 동쪽에 있는 터진목마을 등이...

  • 목시통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약대동에 있던 들. 목시통은 묵숙통(苜蓿筒)·목수통(木水筒)이라고도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는 상오정면 약대리 야평명(野坪名)의 목시통으로만 되어 있다. 바닷물이 마치 화살통으로 들어가는 화살과 같다고 해서 ‘목시통(木矢筒)’이라 붙여진 것이라고 하였으나 근거는 부족해 보인다. 『부천사연구』[1992]·『부천문화의 재발견』[1996] 등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