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인철도 소사역에서 자유시장 방면으로 나오면 지금도 옛날풍의 청과물 상점들을 만날 수 있지요.” 부천은 수도 서울과 항도 인천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1899년 9월 경인철도가 개통되면서부터 상공업지역으로 발전할 지리적인 여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좋은 조건에도 불구하고 부천은 단지 복숭아 산지로만 유명할 뿐 농산물을 제외한 큰 규모의 유통활동은 거의 이루...
-
기업은 개인이 아닌 사회의 공유물임을 설파한 유한양행의 신화, 유일한 박사 국내 기업인들 중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인물은 그리 많지 않다. 과거 친일행적은 물론 정경유착, 각종 탈세 등으로 사회적인 명망을 얻기보다 비판의 대상이 돼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 박사는 다르다. 그는 일찍부터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고 재산의 사회 환원을 통해 “기업은 개인이 아...
-
“농사해서 먹을 땅도 너무 질어가지고 인근 마을은 진말이라고 부르기도 했어요. 오죽하면 남편 팔아서라도 장화는 신어야 한다는 말이 생겨났겠어요.” 소사구 깊은구지는 부천의 동남쪽에 자리를 잡고 있는 성주산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다. 성주산은 깊은구지와 솔안말, 구지말, 소새 지역 등을 품고 있는데 그 품이 넉넉해서 사람들의 살아온 역사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
“깡시장에서 받은 야채를 서울 중앙시장 다리에서 팔다가 순경에게 붙들려서 많이도 잡혀갔지.” 경제 능력이 없었던 남편 대신 일찌감치 생활전선에 뛰어든 박금희 할머니(77세). 현재 부천역전 앞에서 거주하신 지 50년이 넘었다. 자유시장 안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인이라고 한다. 박정희 정권 때, 새마을 지도자로 임명을 받아서 자유시장 살림을 맡아 보기도 했다....
-
소사 복숭아보다 부드럽던 펄 벅 여사의 박애정신 2006년 9월 28일 『한겨레신문』에 펄벅기념관 개관 기사가 실렸다. 1967년 6월 오후 서울 가회동 펄벅재단 한국지부 사무실. 75번째 생일을 앞둔 펄 벅 여사가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채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 곁에는 유한양행 유일한 사장도 함께하고 있었다. “경기도 부천군 소사읍 심곡리 산25[현 부천시 소사구 심곡동 566-...
-
“도서 6개면허구 육지 3면 1읍이 부천군이었는데 소사읍 하나를 가지고 부천시를 맨든 거에요. 어떤 면에선 참 기형적이지.” 해방 후 부천에는 소사극장이 들어섰고 이 때 심곡본동에 부천 최초의 노점상인 깡시장이 형성되어 청과물 도매시장의 문을 열었다. 근대에 들어 도시구획정리가 되면서 깊은구지 쪽으로 높게 붙어 있던 경인국도가 현재의 직선 모습으로 새롭게 포장되었고 노점상을 이루었...
-
“옛날엔 농사꾼들이 점심을 먹고 잠자고 그러던 덴데 몇 번씩 불나고 벼락 맞는 바람에 죽었지.” 심곡2동 깊은구지 도당나무길에는 언제부터 있었는지 짐작하기 어려운 노목이 하나 있다. 이제는 수령을 다하여 속 빈 밑둥만 흉물스럽게 남아 있지만 아직도 동네사람들은 한때 마을을 수호한 고목나무에 대한 예우로 2년마다 당굿을 지내고 있다. 원래 마을에 있던 노목은 모두 셋으로,...
-
“일제 때 한강수리조합이 만들어지면서 도시개발에 힘이 실렸죠. 경인선과 경인국도가 뚫리면서 마을이 본격적으로 번성하기 시작했어요.” 깊은구지는 부천군이 탄생하기 이전까지는 계속하여 부평에 속해서 발전해 왔다. 부평도호부 이후의 부평군 때에는 석천면이라고 표기되었다. 석천면은 돌내면의 한자식 표기로, 돌내는 ‘냇물 돌아 드는 곳’을 의미하는 지명이었다. 원래는 깊은구지는...
-
“광활한 김포평야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소사역에서 모아 인천항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해갔지.” 일본으로 수출하는 미곡에 대한 검사의 필요성은 이미 1910년 이전부터 제기되어 1909년 목포상업회의소가 독자적으로 수출현미에 대해 검사를 실시하였다. 그리고 이어 총독부도 미곡검사의 필요성을 인정하여 1913년 6월 각 도장관에게 통첩하여 지방행정기관의 감독 하에 상업회의소...
-
“옛날에는 허가 없이 쌀장사 못했어요. 어쨌든 배는 안 굶으니까 부자였지요.” 자유시장에서 곡물, 고추 장사를 하기 위해 50년 동안 조치원, 신탄진, 공주, 천안장터를 누비고 다녔다는 김홍갑 할아버지(77세)와 이춘자 할머니(70세) 부부. 옛날에는 시골에서 곡물을 직접 운송했다고 한다. 깊은구지에 워낙 유명한 소사 복숭아밭이 천지라서 잠깐 과일 장사도 하셨다고. “깊...
-
“내가 좀 극성맞어서, 소사 복숭아 물건 떼러 구로동에서 80번 버스타고 다녔어요.” “내 성격이 좀 극성맞어요. 하하.” 입심이 좋고 몸매가 호리호리한 백옥자 할머니(76세)는 젊었을 때부터 구로동에서 과일장사를 하시다가 부천에 터를 잡은 지 이십여 년이 되었다고 하신다. 비록 부천의 토박이는 아니지만 전국에서도 유명했던 소사 복숭아를 구매하기 위해 직접 발품을 파셨다고 한다....
-
“일대 지역이 대부분 야채 깡시장과 하꼬방(판자촌)으로 유명했는데 소사역 지나는 길 양옆으로는 광주리 장사꾼들이 즐비했어요.” 부천 자유시장은 역세권에 포함돼 입지 조건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셈이다. 하지만 이 가운데 점포 소유주가 직접 장사하는 가게는 20여 개에 불과하며 194개가 임차 형태의 가게다. 현재 상인과 종업원을 합쳐 600여 명이 자유시장에서 생업활동을...
-
“한국전쟁은 시장을 완전히 폐허로 만들었어요. 서울을 수복하고 나서 부천에 피난민이 많이 눌러앉아서 판잣집 하꼬방하고 노점들이 많이 형성되었어요.” 부천 지역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재래시장이 깡시장과 자유시장이다. 시장의 형성 시기는 정확치 않으나 지금으로부터 약 50~6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상인들은 입을 모은다. 일제시기 부천역 일대가 개발되면서 자연 발생적으...
-
“부천자유시장상인회는 재래시장인 자유시장의 현대화를 위한 과제 해결을 추진하고 있어요.” 자유시장은 주로 먹거리를 취급한다. 과일, 야채, 육류, 생선 등 신선식품이 주종을 이루며 분식, 죽, 떡, 치킨, 빵 등 가공식품점이 가세하고 있다. 의류나 화장품도 취급하지만 소수이다. 1998년 부천역사와 이마트가 생긴 이래 공산품과 의류, 잡화 등은 경쟁력을 잃고 업종이 자연...
-
부천의 자존심, 깨끗한 기업경영 ‘유한양행’ 부천에서 태동한 유한양행은 깨끗한 경영을 하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기업들로부터 정치자금을 받는 것이 당연시 됐던 시절, 정권은 유한양행의 세무조사와 재무조사는 물론 약품 성분까지 조사했는데 아무런 하자를 발견하지 못하고 동탑산업훈장을 수여하였다. 이 결과 유한양행은 1968년 국내 최초의 동탑산업훈장을 받고 1년 동...
-
다민족 다문화를 수용하는 사랑나눔터, 펄벅기념관 소설 ‘대지’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뒤 경기도 부천에서 10년 가량 6·25 전쟁고아와 혼혈어린이들을 돌봤던 미국의 문호 고(故) 펄 벅(Pearl S. Buck) 여사를 기리는 기념관이 2006년 9월 부천시 소사구 심곡본동 566-9번지 故 펄 벅 여사가 운영했던 ‘소사희망원’ 자리에 건립되었다. 약 10년간 한국에 머물렀던 펄 벅...
-
“인천 연안부두에서 생선을 떼다가 새벽 두 시에 자전거를 타고 영등포 시장에 가서 팔았어요.” 부천 자유시장에서 약 17년 동안 이장을 역임했다는 이춘중 할아버지(76세). 6·25 전쟁 이후부터 시장과 인연을 맺어 온 할아버지는 초기시장부터 현재 자유시장에 이르기까지 시장의 형성 과정을 기억하는 몇 안 되는 토박이 상인이다. “6·25 때 내가 열아홉 살이었는데 그 때...
-
“마을이 성주산을 중심으로 해서 형성되다 보니까 험준한 산과 고개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은 편이에요.” 고향하면 떠오르는 풍경의 한가운데에 마을 숲이 있다. 마을 들머리나 앞들, 갯가, 뒷동산의 솔밭이나 느티나무 고목 아래에서는 마을 제례와 축제가 벌어지곤 했다. 부천 심곡본동에는 이런 원초적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대표적인 고향 경관이자 오랫동안 사람과 자연이 교감하는 느티나무가 있다...
-
“시장에서 건어물 장사함시로 자전거, 기차, 삼발이 차 안타본 것이 없죠.” 1965년부터 자유시장에서 건어물 장사를 시작하셨다는 배석홍 할아버지(73세). 1957년도에 군 제대하고 부천에 정착하신 할아버지는 자유시장의 전경을 줄줄 읊으셨다. “자유시장을 가로지르는 개울이 하나 있었어요. 자유시장 뒤편으로는 과수원이 있었는데 대부분은 포도밭과 복숭아밭이었어요. 그 위로 올라가면...
-
“자유시장은 부천 남부역에서 심곡고가 아래까지 400여 개의 점포로 형성된 50년 전통의 시장이에요.” 부천시 소사구 심곡본동 부천역사 남부광장 쪽 출구로 나와 바로 오른쪽을 바라보면 자유시장의 입구 간판을 볼 수 있다. 이처럼 부천의 관문인 부천역에 자리 잡은 자유시장은 남부역에서 심곡고가 아래까지 400여 개의 점포로 형성된 종합시장으로서 5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한...
-
“1990년대의 자유시장은 오후 네 시만 되면 사방에서 밀려드는 인파 때문에 몸살을 앓았어요.” 부천자유시장상인회의 23대 대표를 역임하고 있는 조길원 이사장. 2005년 인정재래시장 추진위원이 발족된 후 조합이 생긴 것은 불과 2년에 지나지 않지만 시장의 역사를 만들기 위해 전직 회장들을 찾아서 많은 자료를 구축해 놓고 있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지금껏 아무도 관심을...
-
“당시 병원에서 치료하지 못한 환자들도 많이 찾아와서 치료했어요. 약방 노하우가 있었거든요.” “저희 시아버님(고 노병일 씨, 1915년생)께서 한 삼십년 일하시다가 제가 넘겨받았죠.”(김송자, 자유시장 경인약국, 61세) 일제시기부터 자유시장 골목의 터줏대감이었던 경인약국, 지금은 약국이지만 그때만 해도 약방으로 불렸다. 그리고 1972년, 약사였던 며느리 김송자[61세] 씨가...
-
“전통 방식으로 하다 보니 각궁 하나를 만드는 데 재료 준비부터 완성까지 거의 일 년 동안 공을 들여야 합니다.” 일찍이 중국 사람들이 우리 민족을 일컬어 동이족(東夷族)이라 불렀다. ‘동쪽의 활 잘 쏘는 민족’이란 뜻이다. 이는 우리 민족이 선사시대부터 활쏘기를 즐겨 하고 궁시(弓矢)의 제작기술이나 다루는 능력이 뛰어났다는 것을 방증한다. 중요무형문화재 47호 궁시장 김박영 씨는...
-
“깊은구지 밭에서 생산한 배추, 무, 상추 등 각종 채소의 경매가 이뤄졌지요. 전국 소매상인들이 몰려와 줄을 이었어요.” 깊은구지에는 각종 채소를 경매하던 채소 깡시장도 있었다. 이곳에서는 인근 밭에서 생산한 배추, 무, 상추 등 각종 채소의 경매가 이뤄졌다. 하지만 채소시장 인근에 대형마트 등이 들어서면서 손님들의 발길도 뚝 끊겨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매출은 하...
-
“청과물 도매시장의 야채, 과일, 공산품 등의 매출이 절반 가량 감소했어요. 무엇보다 재래시장 환경의 개선이 필요한 시기예요.” “부천시의 상징마크가 복사꽃이에요. 활짝 핀 복사꽃 잎은 부천시를 둘러싼 다섯 개의 산[성주산, 원미산, 할미산, 춘의산, 작동산]을 뜻하고 꽃잎 속에 있는 꽃 수술은 부천시를 흐르는 다섯 개 하천[심곡천, 소사천, 고리울천, 비리내천, 굴포천]을 뜻하지...
-
“부천 지역의 근대적 도시발전은 경인선이 개통되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지.” 옛날의 부천 북부역에는 하천이 흐르고 있었는데 새마을 운동으로 인해 현대도시를 만들기 위한 정치적 일환으로 복개해버렸다. 복개한 이후 현대도시를 만들기 위한 끊임없는 개발로 인해 현재 부천 북부역은 대표적인 하나의 상권으로 자리 잡았다. 부천 북부역을 중심으로 한 상권은 이미 100여 년 전인 1899...
-
한국의 전쟁고아들과 혼혈아 등 2천여 명을 보살핀 환영의 집, 소사희망원 1892년 미국 웨스트 버지니아주에서 태어나 소설 ‘대지’로 노벨문학상(1931년)을 받은 펄 벅(Pearl S. Buck) 여사는 출생으로 인해 고통 받는 아동을 돕기 위해 비영리 국제기구 펄 벅 인터내셔널(Pearl S. Buck International)을 1964년 미국 필라델피아에 설립하였...
-
“시장에 물이 참시로 옛날에 살던 얘기 한다믄 나도 책에 나올 수 있는 사람이어요.” 전라도 사투리가 구수한 정희순 할머니(82세). 여자 혼자의 몸으로 부천에 온 지 벌써 43년째가 되신단다. 당시 육각정[현재 활주로 공원]에서 사글세 2만원씩 주고 살았다는 할머니는 당시 상황을 상세하게 기억해냈다. “내가 39(살)에 부천 왔는디, 지금 83살이 됭께. 벌써 40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