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67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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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次徐使相遊太和樓韻 |
영어공식명칭 | Reply To Taehwaru Poem By Seo-Geojeong |
이칭/별칭 | 「서사상의 태화루 운에 차운함」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대구광역시 수성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곽명재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439년 - 「차서사상유태화루운」 저자 양희지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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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504년 - 「차서사상유태화루운」 저자 양희지 사망 |
편찬|간행 시기/일시 | 1787년 - 『대봉집』 간행 |
배경 지역 | 오천서원 -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 |
성격 | 한시|칠언율시 |
작가 | 양희지 |
[정의]
대구의 오천서원에 제향된 조선 전기 문신 양희지가 태화루에서 서거정의 시에 차운하여 지은 한시.
[개설]
「차서사상유태화루운(次徐使相遊太和樓韻)」의 저자 양희지(楊熙止)[1439~1504]의 본관은 중화(中和)이고, 자는 가행(可行)·정보(楨父)이며, 호는 대봉(大峰)이다. 아버지는 양맹순(楊孟淳)이고, 어머니는 나주정씨(羅州鄭氏) 정시교(鄭是僑)의 딸이다. 1474년(성종 5) 문과에 급제한 이후 이조좌랑, 사헌부감찰, 예조좌랑, 형조판서, 충청감사, 도승지, 대사헌 등 내외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김종직(金宗直)[1431~1492]의 문인이다. 서거정(徐居正)[1420~1488], 김굉필(金宏弼)[1454~1504] 등 조선 전기 명신들과 교유하였다. 저서로 『대봉집(大峯集)』이 전한다.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의 오천서원(梧川書院)에 제향되었다. 「차서사상유태화루운」는 태화루에서 서거정의 시에 차운하여 지은 한시이다.
‘서사상(徐使相)’은 서거정을 일컫는다. 서거정의 본관은 달성(達城)이고, 자는 강중(剛中)·자원(子元)이며, 호는 사가정(四佳亭) 혹은 정정정(亭亭亭)이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아버지는 서미성(徐彌性)이고, 어머니는 권근(權近)의 딸이다. 1438년(세종 20)에 생원시·진사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갔고, 1444년(세종 26)에 문과에 급제한 이후로 집현전박사(集賢殿博士), 집현전응교(集賢殿應敎), 홍문관대제학, 세자이사(世子貳師) 등을 거치면서 조선 전기의 문병(文柄)을 장악하였다. 국가의 편찬 사업을 주도하여 『동국통감(東國通鑑)』·『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동문선(東文選)』·『경국대전(經國大典)』·『연주시격언해(聯珠詩格言解)』 등을 공동 편찬하였다. 저서로 『사가집(四佳集)』이 있다. 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 구암서원(龜巖書院)에 제향되었다.
태화루(太和樓)는 울산광역시 중구 태화동에 있는 누각이다. 경상남도 밀양의 영남루(嶺南樓), 경상남도 진주의 촉석루(矗石樓)와 함께 영남 3대 누각으로 일컬어졌다. 서거정의 원시는 「울산태화루(蔚山太和樓)」이다. 서거정은 양희지의 부탁으로 「태화루중신기(泰和樓重新記)」를 지었다.
「차서사상유태화루운」의 이칭은 「서사상의 태화루 운에 차운함」이다.
[구성]
「차서사상유태화루운」은 칠언율시(七言律詩)이다.
[내용]
형승오주설차루(形勝吾州說此樓)[우리 고을의 승경으로 태화루를 말하니]
현가사의총명류(絃歌徙倚總名流)[노랫가락에 어슬렁이는 모두가 명류라네]
개운포활천저처(開雲浦闊天低處)[구름 걷힌 넓은 포구는 하늘과 닿았고]
은월봉고지진두(隱月峯高地盡頭)[봉우리 높이 숨은 달 땅끝에 떠 있네]
요망경화의북두(遙望京華依北斗)[북두성에 기대어 아득히 서울 그리워]
장유산해기금추(壯遊山海記今秋)[올가을을 기억하며 산해에서 노니네]
잠화가학무소식(簪花駕鶴無消息)[꽃 꽂고 학을 탔다는 소식이 없으니]
극목연파만고수(極目煙波萬古愁)[이내 낀 물결에 만고의 수심 가득하네]
[특징]
「차서사상유태화루운」은 ‘우(尤)’ 계열의 운목이 사용된 오언율시이다.
[의의와 평가]
「차서사상유태화루운」은 분위기가 서거정의 원시(原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공간적 이동에 따른 분위기의 전환이 절묘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