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5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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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九岩里遺蹟 |
영어공식명칭 | Historic Site Related to Guam-ri |
분야 | 문화유산/유형 유산,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구암리 산98-1 일대 |
시대 | 선사/청동기,선사/철기,고대/초기 국가 시대 |
집필자 | 한수영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9년 - 구암리 유적 지표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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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0~2011년 - 구암리 유적 발굴조사 |
현 소재지 | 구암리 유적 -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구암리 산98-1 일대 |
출토 유물 소장처 | 국립전주박물관 -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쑥고개로 249 |
성격 | 집자리 |
크기(높이,길이,둘레) | 제의유구: 남북길이 466㎝, 동서 너비 316㎝|환호: 동서길이 20m|청동기 시대 주거지: 길이 262~750㎝ 이상, 너비 262~400㎝ 내외|원삼국 시대 주거지: 길이 262~836㎝, 너비 282~412㎝ 내외 |
관리자 | 국립전주박물관 |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구암리 산98-1 일대에서 확인된 청동기시대 집자리와 제의유적.
구암리 유적은 한국농어촌공사에서 시행하는 금강[Ⅱ]지구 토목공사구간에 포함되어 군산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문화재 조사가 이루어졌다. 지표조사는 2009년 실시되었으며, 발굴조사는 2010년부터 2011년에 걸쳐 진행되었다. 발굴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제의유구와 환호, 주거지 10기, 원삼국시대 주거지 8기가 확인되었다.
구암리 유적은 호남고속도로와 익산-장수간 고속도로가 만나는 익산분기점의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해발 80m 내외의 구릉성 산지에 입지해 있으며, 주변에는 해발 50~70m 내외의 구릉과 만경강으로 합류하는 소하천, 충적대지가 조성되어 있다.
청동기시대 제의유구는 구릉의 최정상부에 조성되었으며, 제의유구를 환호가 둘러싸고 있는 형태이다. 제의유구는 평면 삼각형으로 남북길이 466㎝, 동서 너비 316㎝이며, 내부에서는 소토층과 소형할석[깬 돌]이 반복적으로 퇴적된 양상을 보이고 있어 불과 관련된 행위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제의유구를 감싸고 있는 환호는 동서길이 20m 내외를 이룬다. 청동기시대 집자리는 평면 장방형으로, 길이는 262~750㎝ 이상, 너비는 262~400㎝ 내외이며, 내부에서는 노지와 주공·벽구가 확인되었다. 원삼국시대 주거지는 구릉의 사면부에 조성되었다. 평면형태는 [장]방형계로 규모는 길이 262~836㎝로 다양하며, 너비는 282~412㎝ 내외를 이룬다. 내부에서는 화덕과 주공·구들시설이 확인되었다.
구암리 유적은 조사 완료 후 관로 매설공사가 진행되었으며, 공사 후 복토되어 원래 지형을 유지하고 있다.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유물은 국고로 귀속되어 국립전주박물관에 소장되었다.
청동기시대 유적에서는 다량의 토기류와 석기류가 출토되었는데, 토기류는 바닥이 판판한 발형의 민무늬토기로 소위 가락동식토기로 알려진 이중구연단사선문토기[겹아가리짧은빗금무늬토기]가 대표적이며, 구순각목문토기[골아가리구멍무늬토기]와 공열문토기[구멍무늬토기] 등 청동기시대 전기를 대표하는 다양한 유형이 확인되었다. 석기류는 피홈[血溝]을 갖춘 돌칼·석촉[돌로 만든 화살촉]을 비롯하여 반달모양돌칼 등이 출토되었다. 원삼국시대 유물은 발과 호·장란형토기·시루 등이 다수를 이루며, 그물추·가락바퀴·석촉 등이 출토되었다. 이외에 1호 주거지에서는 숯과 철재가 용착된 소량의 노벽편이 수습되어 집자리 안에서 제철작업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구암리 유적은 농업용수로 관로가 매설되는 협소한 범위에 한정하여 조사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학술적으로 중요한 성과가 도출되었다. 청동기시대 의례를 추정해 볼 수 있는 제의와 환호유구를 비롯하여 호남 지역에서는 조사 예가 많지 않은 청동기시대 전기 주거지가 군집으로 확인되어 한반도 중서부지역 전기 문화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유구는 기원전 11~9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판단되며, 호남 지역에서 처음으로 청동기시대 전기의 제의유구와 취락 유적이라는 점에서 향후 청동기시대 문화상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원삼국시대 집자리에서는 제철과 관련된 노벽과 슬래그[광석으로부터 금속을 빼내고 남은 찌꺼기]가 확인되어 주목되며, 5세기를 전후한 원삼국시대 주거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