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6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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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群玉 |
영어공식명칭 | Choi Gun-ok |
분야 |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최범호 |
묘소|단소 | 최군옥 묘소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대승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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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문인 |
성별 | 남자 |
본관 | 전주(全州) |
대표 관직|경력 | 진현관대제학(進賢館大提學) |
고려 전기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활동한 문인.
최군옥(崔群玉)은 고려 선종[재위 1083-1094] 때 활동한 인물로 문하시랑평장사에 오르고 완산부원군에 봉해졌다.
최군옥은 전주최씨 문충공파의 시조로 다른 전주최씨인 최아계나 최순작계와는 혈통이 다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자는 경윤(景潤)이고 한익군(韓翼君)의 사위이다. 큰아들은 중의대부 밀직사사(中議大夫密直司使)를 지낸 최송년(崔松年)이다.
최군옥은 문충공사적에 따르면 고려 선종(宣宗) 때 벼슬에 나아갔으며, 추밀원지사를 지냈고, 진현관대제학(進賢館大提學), 문하시랑평장사에 이르렀다고 한다. 1086년(선종 3) 송나라 철종(哲宗) 때 하례사신으로 송나라에 들어가 황제에게 축하[大賀]를 올렸다. 송나라에 있을 때 사마광(司馬光), 여송저(呂宋著), 범조우(范祖禹) 등이 정이(程頤)를 천거해서 숭정전(崇政殿) 설서(設書)로 삼았고, 최군옥을 문하시랑(門下侍郞)에 천거했다. 얼마 안 되어 정이가 소철(蘇轍), 손각(孫覺)의 모함으로 파직되자, 최군옥이 소철과 손각이 저지른 잘못을 설명하여 파직되어 환국하게 되었다. 귀국해서 대현진사(大賢進士)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의 품계의 벼슬이 주어지고 완산부원군(完山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시호를 문충(文忠)이라고 했다.
최군옥의 묘소는 완주군 소양면 신원리 상리마을 입구 길 건너에 후손 최양의 묘소 위에 단소가 차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