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9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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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泰初 |
이칭/별칭 | 길부(吉夫),경재(警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구림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곽아람 |
[정의]
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문인·학자.
[개설]
박태초(朴泰初)[1646~1702]는 대과 초시에 합격했지만 과거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에 전념하며 지냈다. 박태초의 학행을 높이 산 조정으로부터 관직이 제수되었지만 출사하지 않았다.
[가계]
본관은 반남(潘南)이고, 자는 길부(吉夫), 호는 경재(警齋)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을 지낸 박응복(朴應福)[1530~1598]이고, 증조할아버지는 황해도 관찰사(黃海道觀察使)를 지낸 박동열(朴東說)이다. 할아버지는 남양도호부사(南陽都護府使)를 지낸 박정(朴渟), 아버지는 성균관 생원(成均館生員) 박세휘(朴世彙), 어머니는 진주 목사(晉州牧使)를 지낸 윤형성(尹衡聖)의 딸 남원 윤씨(南原尹氏)이다.
[활동 사항]
박태초는 17~19세에 향시와 대과 초시에 합격하였으나 관직에는 나아가지 않았다. 대신 주자의 가르침을 따라 학문의 도리로써 궁리를 중시하고 독서에 매진하며 학문에 전념하였다. 창계(滄溪) 임영(林泳)[1649~1696]과 친분이 깊었다. 박태초는 병조 판서 윤지선(尹趾善)에 의해 천거되었고, 그 후 건원릉 참봉(建元陵參奉), 종부시 주부(宗簿寺主簿), 공조 좌랑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나아가지 않았다.
수정일 | 제목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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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6 | 생몰년 오류 | 오: 1706~1762 정: 1646~1702 |
2021.04.16 | 생몰년 정정에 따른 상세정보 삭제 | 상세정보 삭제 <상세정보 type="시간" 유형="활동 시기/일시" 내용="박태초 대과 초시에 합격" 비고="응과|출사|부임|승진|사직|파직|복직|유배|이배|해배|퇴관|낙향|은거|저술|편찬 포함">1725년</상세정보> <상세정보 type="시간" 유형="활동 시기/일시" 내용="박태초 종부시 주부에 임명됨" 비고="">1755년</상세정보> <상세정보 type="시간" 유형="활동 시기/일시" 내용="박태초 공조 좌랑에 임명됨" 비고="">1761년</상세정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