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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607036
한자 金槿泰
영어공식명칭 Gim Geuntae
이칭/별칭 즈카르야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권만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47년 2월 14일연표보기 - 김근태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96년 - 김근태 제15대 국회의원 취임
활동 시기/일시 2000년 - 김근태 제16대 국회의원 취임
활동 시기/일시 2004년 - 김근태 제17대 국회의원 취임
활동 시기/일시 2004년 -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취임
몰년 시기/일시 2011년 12월 30일연표보기 - 김근태 사망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12월 - 김근태 기념도서관 개관
출생지 김근태 출생지 -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
학교|수학지 경기고등학교 - 서울특별시 강남구 영동대로 643[삼성동 74-4]
학교|수학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묘소 민족민주열사묘역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 593
성격 민주화 운동가|정치인
성별
대표 경력 제15~17대 국회의원|보건복지부 장관

[정의]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 출신의 민주화 운동가, 정치인.

[가계]

부인은 인재근이다. 슬하에 1남[김병준] 1녀[김병민]를 두었다. 2011년 가톨릭에 귀의하였고, 세례명은 즈카르야이다.

[활동 사항]

김근태(金槿泰)[1947~2011]는 1947년 2월 14일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에서 태어났다. 1965년에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하였다. 1960년대 학생운동을 주도하여 손학규, 조영래와 함께 ‘서울대 운동권 3총사’로 불렸다. 굴욕적인 한일회담 반대운동, 삼성그룹 사카린 밀수 규탄 시위에 앞장섰다. 군대에 갔다 온 이후에도 1971년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 1974년 민청학련 사건, 긴급조치 9호 위반 등의 사건에 관여되어 고난의 청년기를 보냈다.

1983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약칭 민청련] 초대 의장이 되었다. 부의장은 장영달이었다. 그 외 집행위 간부로는 박계동, 박우섭, 연성수 등이 있었으며, 상임위원회에는 김근태를 설득해서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설립을 주도했던 최민화가 의장으로 있었다. 상임위 부의장은 이해찬과 이을호였다. 의장이 된 김근태는 이른바 깃발 사건이라 불리는 1985년 서울대학교 민추위 사건으로 구속되었다. 당시 같이 구속된 인사 중 한 명이 아프리카TV 창업주 문용식이다. 이후 풀려났다가 다시 체포된 김근태는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가 이근안과 김수현 등 경찰관 다섯 명에게 22일 동안 고문을 당하였다. 1986년 9월 징역 5년과 자격정지 5년을 선고받고 옥살이를 하던 중 1988년 형 집행정지로 가석방되었다. 이후 1989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약칭 전민련] 결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고, 정책실장 등을 맡다가 1990년에 또다시 구속되어 2년의 감옥 생활을 하였다.

1996년부터 제15대, 제16대, 제17대 국회의원에 당선하고, 열린우리당 의장[2006년 6월 9일~2007년 2월 14일]을 지냈다. 당시 단명한 국회의장이 대부분이었던 열린우리당 의장 중에서는 가장 길게 재임하였다.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직후 정동영 전 의장이 사퇴하여 최고위원 자격으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하에서 의장으로 추대되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최장 재임에 유일하게 임기를 채우고 물러난 인물이 되었다. 원내대표[2003년 10월 27일~2004년 5월 11일] 및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보건복지부 장관[2004년 7월 1일~2006년 2월 10일] 등을 역임하였다.

2008년 제17대 국회의원 퇴임 후에는 한양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으로 활동하면서 한반도재단을 설립하여 연구 활동을 병행하였다. 예전부터 지원 유세를 하러 가는 일이 많았는데, 생애 마지막으로 유세를 지원한 것은 2011년 서울특별시장 보궐선거였다. 보궐선거가 끝난 직후인 2011년 연말, 고문 후유증으로 인한 지병인 뇌정맥 혈전증이 악화되어 서울대학교병원에 입원해 투병 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딸의 결혼을 전해 들은 후 2011년 12월 30일 새벽 5시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어 향년 64세로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주요 저술로 1995년 출판된 『희망의 근거』, 2001년 출간한 『희망은 힘이 세다』, 2004년 출간한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2007년 출간한 『일요일에 쓰는 편지』와 『남영동』 등이 있다.

[묘소]

김근태의 묘소는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 593번지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87년 로버트케네디 인권상[인재근과 공동 수상]을 수상하고 2004년 미주한인입양인네트워크 감사패를 받았다.

사후인 2016년 ‘민주주의자 김근태 상’이 제정되었다. 2013년 인재근 의원과 천주교 서울대교구 함세웅 아우구스티노 신부, 내과 전문의 이화영 박사 등의 주도로 ‘김근태기념치유센터 숨’이 설립되었다. 김근태기념치유센터 숨은 인권의학연구소와 함께 김근태와 같은 고문 피해자 및 국가폭력에 몸과 마음을 다친 이들을 치료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그 유지를 계승하기 위해 김근태재단이 설립되었고, 2021년 김근태기념도서관이 서울특별시 도봉구에서 개관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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