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남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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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황종림이 경기도 부천 지역에 거주하던 창원황씨가의 내력을 기록한 책. 황인점(黃仁點)의 양손자(養孫子)인 황종림(黃鍾林)[1796~1875]이 선조의 언행을 후손들에게 알려 본받게 하기 위해 창원황씨가에 내려오던 선조들의 언행과 유사(遺事), 묘지명 등 한문으로 기록된 여러 문건을 한글로 번역하여 필사하였다. 7권 1책의 한글 필사본으로, 책의 크기는 가로 25㎝, 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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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대장동에 있는 고개. 동그랑재는 동그랗게 생긴 산이라는 뜻이며, 처음에는 동그랑메라고 했다가 한다리가 생기고 길이 열리면서 동그랑재로 바뀌었다. 대장동에서 제일 높은 고개인 만큼 과거에는 바다 밀물이 들어올 때도 그다지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동그랑재에 육각정을 세워 마을 사람들의 휴식처로 이용하고 있다가 현재는 대장복지회관으로 옮겨갔다. 조선시대에는 부평도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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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부천 지역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아버지는 박흔(朴忻)이고, 부인은 계양이씨(桂陽李氏)이다. 아들은 박원만(朴元萬), 손자는 박이망(朴以望)이다. 반남박씨가 경기도 부천 지역에 정착하게 된 것은 15세손 박원만이 경기도 수원에서 현재의 경기도 인천시 남구 학익동 지역으로 낙향한 이후, 그 증손자인 박사온(朴師溫)이 현재의 경기도 부천시 대장동 지역에 정착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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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유생. 본관은 반남(潘南). 아버지는 문종 때에 함종현령(咸從縣令)을 지낸 박삼(朴參)이며, 아들은 통정대부절충장군오위장(通政大夫折衝將軍五衛將)을 지낸 박이망(朴以望)이다. 부인은 연기김씨(燕岐金氏)이다. 반남박씨 15세손 박원만이 경기도 수원에서 인천시 남구 학익동으로 낙향한 후, 증손인 박사온(朴師溫)이 부천시 대장동에 정착하였다. 묘소는 경기도 부천시 여월동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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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응주를 시조로 하고 박사온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부천시의 세거 성씨. 반남박씨는 도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의 후손인 박응주를 시조로 한다. 박응주는 고려 고종 때 반남현[현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의 호장(戶長)을 지냈다. 반남박씨는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215명, 왕비 2명, 재상 7명, 대제학 2명, 호당 5명, 청백리 1명, 공신 6명, 장신(장군) 3명 등 숱한 인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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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이라는 지명은 1914년 일제에 의해 지어졌기 때문에 부천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유일하게 부천임씨가 있을 뿐이다. 다만 현재 부천과 가까운 곳인 부평엔 왕건을 도와 고려를 세우는 데 일등공신이 된 이희목의 부평이씨가 있고, 희귀성인 부평 사씨(舍氏)가 있다. 조선시대까지 부천이 부평으로 불렸기 때문에 부천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에 부평이씨와 부평 사씨(舍氏)를 포함시킬 수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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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에 입향한 성씨. 입향성씨(入鄕姓氏)는 특정 인물이나 특정 가문이 일정한 지역에 정착하여 세거하면서 발생하게 된다. 이 때문에 입향성씨에는 입향조가 있게 마련인데, 입향조는 실존한 인물로서 추적이 가능한 경우도 많지만, 역사가 오래되어 막연히 성씨만 구전되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마을의 수호신으로 숭배되기도 한다. 촌락사회, 특히 집성촌에서는 입향조를 정점으로 혈연공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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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에 세거하는 동성동본의 집성촌. 집성촌(集姓村)은 동성동본의 성씨집단이 대대로 모여 사는 촌락을 의미한다. 집성촌의 형성 시기는 삼국시대 또는 고려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지만, 조선 초기부터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여 17세기 이후 집중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17세기 이후 집성촌 형성이 일반화되는 객관적 배경으로는 상속제도의 변화, 주자가례(朱子家禮)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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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에 세거해 온 토박이 성씨. 부천 지역에 마을이 형성된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집성촌의 경우는 고강동에 밀양변씨가 입향(入鄕)한 조선 초기로 추정할 수 있다. 부천 지역에 있는 움집터나 고인돌의 존재로 미루어 보아 상고시대에도 자연부락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당시 자연부락의 거주민들이 현재의 부천 토박이들의 조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삼국시대와 고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