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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역곡동에 있던 들. 감배들은 감배산 아래에 있는 들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지지자료』에는 벌응절리에 속하는 춘교평(春橋坪)으로 되어 있다. 처음에 춘교들이라고 하였다가 나중에 마을 사람들이 감배들로 고쳐 부른 것으로 보인다. ‘감배’는 어원이 ‘배’로, ‘’은 고대에서 지신(地神)을 뜻하는 족장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배(倍)’는 ‘’에서 나온 말로 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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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고강동에 있는 골짜기. 강장은 세조 때 판서를 지낸 변종인의 시호인 공장(恭莊)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즉 ‘공장’이 ‘강장’으로 소리가 변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밀양변씨대동보』에는 ‘공장’의 표기를 처음에는 공장곡(恭莊谷)이라 했다가 나중에는 공상(恭上)골로 바꿨다고 하였다. 1918년 만들어진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강상곡(綱常谷)으로 표기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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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계수동에 있던 골짜기. 구석계일 북쪽 뒤에 위치하고 있다고 해서 뒷골이란 명칭이 붙여졌다. 구석계일뒷골은 할미산[일명 안산]의 계수동 웃계일과 구석계일 사이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구석계일은 시흥시와 부천시의 경계로 시내버스 12번 노선의 종점이다. 지금은 골짜기의 형태가 전혀 남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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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오정동에 있는 산. ‘김마루’에서 ‘마루’는 멧마루처럼 낮은 산을 가리킨다. ‘김’은 ‘긴’이 그 어원이다. 긴마루가 김마루로 바뀐 것이다. 그러므로 산등성이가 길게 뻗은 마루라는 뜻이다. 이는 긴마루를 김마루로 발음한 것을 그대로 김마루로 적은 경우이다. 눈물을 눔물이라고 발음하는 데, 눈물로 적지 않고 눔물로 적은 것과 같다. 김마루는 오정에서 멧마루로 가는 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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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중동에 있던 논. 이곳에 뿌리를 삶아 먹는 풀의 일종인 김묵이 많이 돋아났다는 데에서 명칭이 붙여졌다고 한다. 심곡동 22번지와 40번지 일대의 논을 이르는 말로, 바로 옆이 벌막이다. 만석이들 자리를 김묵벌로 보기도 한다. 애초 심곡진동에 소속되었다가 중동으로 자리바꿈을 한 것이다. 김묵벌에는 현재 부천중앙초등학교와 연화마을, 건영아파트, 벌막공원, 연못공원 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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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작동에 있던 골짜기. 능안[陵內]이라는 이름은 능이 있는 골짜기[일명 능골] 안쪽이라는 뜻에서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능안을 에워싼 골짜기는 여흥민씨와 청주한씨의 선산인데, 여흥민씨 족보에는 능안이 한자로 ‘능내(陵內)’라고 기록되어 있다. 능안을 ‘능안골’이라고도 부른다. 부천시 작동 142번지 일대로, 웃말 동쪽으로 길쭉하게 뻗은 골짜기였으며 서울로 통하는 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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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상동에 있던 밭. 밭의 모양이 다리미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근래에 붙여진 것으로 추측된다. 보통 다리미를 대리미라고 했다. 산언덕 모양이 동그랗게 생겼다. 대리미재는 상동 175-4번지 일대의 밭을 이르는 말로 중동~상동 간의 경계를 이루던 곳이다. 밭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조그만 언덕 같은 산이었는데, 이것을 깎아 밭으로 개간을 했다. 물문개에서 서쪽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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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소사동에 있는 골짜기. 댓골이란 큰 골짜기라는 뜻이다. 한자로 표기하여 대곡(大谷)이라고도 했다. 댓골은 부천시 쪽의 성주산에서 시흥시 대야동 쪽까지 길게 뻗은 골짜기로 성주산에서 두 번째로 큰 골짜기다. 하우고개를 넘어가면 YWCA수련장이 나오고 음식점들이 즐비한데, 그곳이 댓골이다. 댓골에는 일제강점기에 옹기쟁이들이 모여 옹기를 굽던 곳이 있었다. 옹기의 수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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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상동 일대에 있던 논. 두멍배미에서 배미는 논배미로 논을 가리키고, 두멍이란 물을 담아 두는 독을 가리킨다. 둠벙의 다른 말이다. 그러므로 논 가장자리에 둠벙이 있어 물을 항상 담아 두면서 농사를 짓는 논이라고 해서 두멍배미라 불렀다. 두멍배미 바로 동쪽으로 바퀴논이 자리하고 있다. 두멍배미는 현재 상동 410번지[송내대로73번길 31] 일대로, 무궁화상가와 나진빌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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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오정동에 있던 들. 큰말에서 볼 때 오정마루 뒤에 위치하고 있었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뒷마루들은 현재 자동차 매매단지, 영안모자, 부천우편집중국이 있는 오정동 202-1번지와 384번지 일대이다. 이 지역은 일찌감치 들을 가로질러 국방도로가 생기고, 영안모자가 들어오면서 들의 면모가 점차 상실되었다. 예전 뒷마루들 남쪽으로는 현재 크고 작은 공장들이 많이 들어서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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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역곡동에 있던 자연마을. 『부천시사』에서는 짐승의 목에 해당한다고 해서 멱골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멱살 잡다, 돼지 멱따다’와 같이 목을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목처럼 좁고 잘록한 골짜기를 의미한다. 현재는 멱골 일대가 아파트 단지와 빌라단지로 채워져 있고, 멱골 뒤쪽으로 원미산 산자락을 깍아 지은 가톨릭대학교가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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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역곡동에 있던 골짜기. 1988년에 편찬된 『부천시사』에는 원미골로 표기되어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미골로 부른다. ‘미’는 산, ‘골’은 골짜기를 의미하므로 미골은 산골짜기를 뜻한다. 부천시 송내1동에도 산골이 있는데 그 뜻은 같다. 하지만 송내동 산골은 마을 이름이고, 역곡2동 미골은 골짜기 이름이다. 미골은 멀미[원미산]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미골 아래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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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춘의동에 있던 우물. 우물이 양지마을 쪽 춘의산 아래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양지말에서 춘지봉으로 올라가는 초입에 있는 작은 옹달샘으로, 상수도가 설치되기 전까지 마을 주민들의 생활용수와 식수로 이용되어 소중히 다루어졌다. 예전에는 유명한 약수로서 사대부집 규수들이 쌍가마를 타고 와 약수를 떠 놓고 치성을 드리곤 하였다. 하지만 양지마을에 이사를 온 한 아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