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1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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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稷山趙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집필자 | 김경수 |
본관 | 직산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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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세장지 | 시조 조성 묘소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군동리 산 7-4 |
성씨 시조 | 조성 |
[정의]
조성(趙成)을 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천안시의 세거 성씨.
[연원]
직산 조씨(稷山趙氏)의 시조는 백제의 개국 공신인 조성(趙成)이다. 『직산 조씨 갑자 대동보(稷山趙氏甲子大同譜)』에 따르면, 조성은 B.C. 18년 백제의 개국시조인 온조가 위례성에서 백제를 건국하는 데 힘을 보탰고, 한산(漢山)으로 천도하여 마한(馬韓)을 멸망시킨 후 백제 창업의 기초를 확립하는 데 공을 세운 것으로 확인된다. 이후 경양군(慶陽君)에 봉해졌다가, 예성부원군(醴城府院君)으로 개봉되었다가 하남백(河南伯)으로 봉해졌다.
[입향 경위]
후손들이 봉작지인 직산[현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증보문헌비고』에서는 직산 조씨의 시조를 친어군 지후사(親御軍祗侯使)를 지낸 원우(元祐)로 전하고 있는 데 반해, 내려오는 가승에는 원우의 선조이며 고려 말에 공이 있어 직산군(稷山君)에 봉해진 성(成)을 시조로 하고 있다. 후손들에게는 후자의 설이 좀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시조 성의 선계는 기자(箕子)의 후예로서 난을 피해 조씨 성으로 변성(變姓)하고 우리나라에 와서 직산 조씨의 원조(遠祖)가 되었다고 한다.
[현황]
조성 이후의 세계가 전하지 않아 후손인 조원우(趙元祐), 조원경(趙元慶), 조복원(趙復元), 조영원(趙永元), 조응원(趙應元)을 중시조로 삼아 원우공파(元祐公派)·원경공파(元慶公派)·복원공파(復元公派)·영원공파(永元公派)·응원공파(應元公派)의 5개 파로 나뉘었다. 원우공파는 다시 해주파(海州派)·광주파(廣州派)·청주파(淸州派)로, 원경공파는 개성파(開城派)로, 복원공파는 목천파(木川派)로, 영원공파는 장성파(長城派)·강화파(江華派)로, 응원공파는 통진파(通津派)·직산파(稷山派)로 갈린다.
중요 세거지는 충청남도 천안시 일원, 경기도 평택시 일원, 충청북도 청원군 일원, 황해도 해주시 일원이다. 1985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직산 조씨 인구 분포는 3,498명이었고, 2000년에는 1,072가구 총 3,387명인 것으로 확인된다.
[관련 유적]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군동리 산 7-4에 직산 조씨 시조 조성의 가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