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472 |
---|---|
한자 | 楡川靑年會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권대웅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 있었던 청년 운동 단체.
[개설]
1920년 7월에 청도 청년회가 설립된 이후 1923년 성현 청년회(省峴 靑年會), 1924년 풍각 수양단(豊角 修養團) 등이 조직되었다. 1925년 11월 25일에 청도 청년회는 추계 정기 대회에서 혁신을 표방하고, 청년 운동의 활성화에 나서자 새로운 청년회가 조직되기 시작했다. 1926년 유천 청년회(楡川 靑年會), 1927년 풍각 청년회(豊角 靑年會)·대성 청년회(大城 靑年會)·풍각 기독교 청년회(豊角 基督敎 靑年會) 등이 조직되었다.
[설립 목적]
유천 청년회는 교육 문화 운동과 사회 운동을 목적으로 조직되었다.
[변천]
유천 청년회는 1926년 8월, 권재복(權在福)과 김수천(金守千)을 비롯한 여러 사람의 발기로 창립되었다. 1927년 6월에 이르러 회원은 85명에 이르렀으며, 회장은 천종근(千宗根)이 맡고 있었다.
1928년 7월에 이르러 청도 지역에서는 청년 단체를 통일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1927년 민족 협동 전선체인 신간회가 탄생하자 조선 청년 동맹은 협동 전선을 강화하기 위해 각 지역에 단일 청년 단체를 결성하고자 했다.
이에 1927년 후반에서 1928년 후반까지 각 지역에서 청년 동맹이 조직되었다. 청도 지역에서도 각지의 청년회를 해체하고 단일한 청도 청년 동맹을 조직하였는데, 이때 유천 청년회도 발전적으로 해체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유천 청년회는 주요 사업으로 노동 야학 2개소를 운영하였으며, 참여 학생 수는 모두 80명이었다. 그 외 활동 사항은 자료의 부족으로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