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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에 있는 돌, 금속 등에 새겨진 문자, 무늬, 그림 등의 총칭. 금석문이란 비석, 종(鐘), 그릇, 솥 등에 새겨진 글자, 그림, 무늬 등을 말한다. 청도의 금석문은 금속에 새겨진 금문은 없고, 비석·바위 등에 문자를 새긴 새김글로 나눌 수 있다. 비석에는 기념비·선정비·유공비(有功碑)·공덕비·효열비·유허비·신도비 등이 있고, 새김글로는 시·지명·자연 경관 등을 표현...
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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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과 관련하여 1945년 이전에 작성된 문서.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에서 작성된 고문서와 관련된 지역은 조선 시대 경상도 청도군(淸道郡), 17세기 후반 대구부(大邱府)에 예속되었다가 1906년 환속된 풍각현(豊角縣)[지금의 청도군 각북면·각남면·풍각면], 밀양부 고미면(古弥面)[지금의 청도군 운문면 일대] 등이 있다. 대상 고문서는 1945년 이전에 관부가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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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년 4월 4일 청도 군수가 현풍 현감에게 보낸 관문. 1603년 4월 4일 작성된 「1603년 관(關)」은 박안생과 관련된 고문서로 1603년 2월에 작성된 소지(所志), 1603년 4월에 작성된 소지와 함께 점련(粘連)[증거 서류를 덧붙임]되어 있다. 2월에 작성된 소지는 박안생(朴安生)이 청도 군수에게 제출한 것이며, 관문(關文)은 청도 군수가 현풍 현감에게 재판을 이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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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남강 서원에 소장된 조선 시대 고문서 일괄. ① 유학 박사신 교지(幼學朴思臣敎旨) : 1790년 9월 11일 진사시에 합격하여 발급받은 교지이다. ② 유학 박이탄 교지(幼學朴履坦敎旨) : 1828년 4월에 진사시에 합격하여 발급받은 교지이다. ③ 도동음묵(桃洞音墨) : 편지를 모은 첩이다. ④ 선조유묵(先祖遺墨) : 국담(菊潭) 박수춘(朴壽春)[157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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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1년 청도군에서 발급한 노비 매득에 대한 증명 문서. 「남수성 입안(南壽星 立案)」은 1741년(영조 17) 1월 청도 군수가 남수성(南壽星)이 노비를 매득(買得)한 사실을 증명해 주기 위해 발급한 증명 문서인 입안(立案)이다. 해당 자료는 지금까지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미촌리에 세거하고 있는 의령 남씨(宜寧 南氏) 후손들에 의해 전해지고 있다. 1741년 당시 경상도 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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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8년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에 있는 덕사 영산전 안의 석가모니불 좌상에 복장된 발원문. 덕사(德寺)가 창건된 때는 신라 말 고려 초라고 전해지나 문헌이나 고증이 없어 자세한 사실은 알 길이 없고, 현재의 덕사는 조선 시대 선조 년간에 세워졌다. 청도 군수로 부임한 황응규가 1576년(선조 9)에 주구산(走狗山)의 산세는 풍수지리상 개가 달아나는 형상이므로 떡을 주어 개를 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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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3년에 작성된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에 있는 덕사 영산전의 상량문. 덕사(德寺)가 창건된 때는 신라 말 고려 초라고 전해지나 문헌이나 고증이 없어 자세한 사실은 알 길이 없고, 현재의 덕사는 조선 시대 선조 연간에 세워졌다. 청도 군수로 부임한 황응규가 1576년(선조 9)에 주구산(走狗山)의 산세는 풍수지리상 개가 달아나는 형상이므로 떡을 주어 개를 머물게 하고자 절을 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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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안동의 도산 서원에서 청도에 있는 향교와 서원에 보낸 통문. 「명동 서사 소장 고문서(明洞 書社 所藏 古文書)」는 현재 1862년에 작성된 도산 서원(陶山書院) 통문만 확인된다. 도산 서원의 통문은 영남의 큰 선비인 병재(甁齋) 박하징(朴河澄)[1484∼1566]을 제향하는 묘우(廟宇)를 청도 사림이 공론으로 추진해 주길 바라는 뜻에서 작성하여 보낸 것이다. 통문의 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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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 경상도 청도군 중동면에 거주하고 있던 박민탁의 호구 단자. 「박민탁 호구 단자(朴珉琢 戶口 單子)」의 작성자는 해당 호(戶)의 호주인 박민탁이다. 박민탁은 본관이 밀양이고, 직역(職役)이 유학(幼學)이며, 1843년 생[계묘생]으로 호구 단자를 제출하던 당시 36세였다. 경상도 청도군 중동면(中東面) 길부리(吉富里)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곳은 지금의 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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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년 밀양에 거주하는 박안생이 청도 군수와 순찰사에게 보낸 소지 2점. 박안생 관련 고문서는 1603년 2월의 소지(所志), 1603년 4월 4일 관문(關文), 1603년 4월 소지로서, 점련(粘連)되어 있다. 2월의 소지는 박안생이 청도 군수에게 제출한 것이며, 관문은 청도 군수가 현풍 현감에게 재판을 이송하며 보낸 것이다. 4월의 소지는 박안생이 순찰사(巡察使)에게 보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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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군에서 발급한 노비 매매의 확인 문서. 1595년(선조 28) 2월 20일 경상도 경주부 옥산(玉山)에 거주하던 주부(主簿) 이준(李浚)[1540∼1623]이 청도군 소재의 노비를 매득한 뒤, 그 사실을 증빙하는 과정에서 작성된 박장(朴璋)의 초사(招辭)이다. 1594년 11월 25일 주부 이준은 박장이 보유하고 있는 노비 3구(口)를 매득하고 명문(明文)을 작성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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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3년 경상도 청도군 중동면에 거주하고 있던 박취규의 호구 단자. 「박취규 호구 단자(朴聚奎 戶口 單子)」의 작성자는 해당 호(戶)의 호주인 박취규이다. 박취규는 본관이 밀양(密陽)이고, 직역(職役)이 유학(幼學)이며, 1817년[정축] 생으로 호구 단자를 제출하던 당시 57세였다. 경상도 청도군 중동면(中東面) 길부리(吉富里)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는데, 이곳은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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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청도 향교에서 장화식에게 발급한 망기. 석전제(釋奠祭)는 석전대제(釋奠大祭)·석채(釋菜)·상정제(上丁祭)·정제(丁祭)라고도 하며, 성균관의 문묘와 향교의 대성전에 위패를 모신 공자를 비롯한 4성 10철 72현을 제사지내는 의식을 일컫는다. 대성전에 모시는 위패의 수는 고을의 크기, 즉 읍격(邑格)에 따라 차이가 나는데 청도 향교는 공자를 비롯한 4성[안자(顔子), 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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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4년 경상도 청도군 하남면 고수리에 거주하고 있던 이동채가 청도군으로부터 발급받은 준호구. 「이동채 준호구(李東采 準戶口)」의 발급자는 청도 군수이다. 이동채가 어떠한 필요로 준호구 발급을 청도군에 청하였고, 그 결과 1774년 3월 준호구를 발급받았다. 이동채는 본관이 경주, 직역(職役)은 유학(幼學), 1704년[갑신] 생으로 수급 당시 71세였다. 이동채가 거주하던 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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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운룡이 선조로부터 1604년에 받은 공신 교서와 1596년에 받은 교지. 이운룡(李雲龍)[1562∼1610]은 경상도 청도군 출신의 대표적인 무신으로 임진왜란 때 세운 공으로 선무공신(宣武功臣) 3등에 책봉되었다. 그 과정에서 발급된 공신 교서(功臣敎書)와 교지(敎旨)가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으며, 2013년 현재 이운룡의 후손인 재령 이씨(載寧李氏) 지암 종중(砥巖宗中)에서 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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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8년 청도군에서 발급한 노비 소송에 대한 결송 입안. 「이익규 입안(李益圭 立案)」은 경상도 청도군 소재의 노비 소유 분쟁을 판결한 뒤, 승소한 유학(幼學) 이익규(李益圭)[1625∼1706]에게 1698년(숙종 24) 1월 발급해 준 청도군의 최종 판결문인 결송 입안(決訟立案)으로, 2013년 현재 경주 독락당에 소장되어 있다. 「이익규 입안」은 소송에서 승소한 이익규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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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5년 2월 20일 청도군이 이준의 노비 소유권을 인정한 사급 입안. 「이준 입안(李浚 立案)」은 1594년 이준(李浚)이 박장(朴璋)에게서 노비 3구를 매득(買得)한 뒤인 1595년에 작성된 노비 매매 문서 중 일부로서 관청에서 노비 소유를 인정해 주는 증명서이다. 「이준 입안」은 청도군에서 노비를 매득한 이준이 소지를 제출하면서 첨부한 명문, 초사 등의 거래 서류를 참고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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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1년 남수성이 청도 군수에게 노비 매득에 대한 사실을 사급해 달라고 요청한 소지. 1741년 1월에 작성된 남수성(南壽星)의 소지는 노비 매매 문서에 점련된 5점의 일괄 문건 중 하나이다. 나머지 문기는 1740년에 작성된 남수성의 노비 매매 명문, 1741년에 작성된 노비 전 주인 강우주(姜佑周)의 초사(招辭), 1741년에 작성된 증인 백운채(白雲彩)와 필집자 손서대(孫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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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경상북도 청도군 화산재 건립을 위해 밀양 박씨 문중에서 만든 통장. 「청도군 화산재 통장(淸道郡 華山齋 通狀)」은 밀양 박씨의 선조 판사재감사 박응(朴膺)과 창신 교위 박겸형(朴謙亨)의 묘소를 제향하기 위한 재사 ‘화산재(華山齋)’를 짓기 위해 족인들에게 자금을 조달을 요청하는 통장이다. 청도군 풍각면에 있는 화산(華山)에는 밀양 박씨의 선조 판사재감사 박응과 창신 교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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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예리리에 거주하는 이종기가 소장한 조선 후기 고문서. 고성 이씨 참판공파 이종기 소장 고문서(固城 李氏 參判公派 李鍾基 所藏 古文書)는 조선 시대 경상도 청도군의 대표적인 재지 사족 가문인 고성 이씨(固城李氏) 참판공파(參判公派) 후손 가운데 효행으로 이름을 떨친 이택준(李宅俊)[1793∼1815]과 그 처 현풍 곽씨(玄風 郭氏)의 효열을 추숭하는 과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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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임호 서원에 소장된 조선 시대 밀성 박씨 삼우정파 종중 고문서. 밀성 박씨 삼우정파 종중 고문서(密城 朴氏 三友亭派 宗中 古文書)는 임진왜란 당시 경상도 청도군 출신으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던 밀성 박씨(密城朴氏) 문중의 박경신과 두 아들 박지남, 박철남에 관련된 4종 17점의 고문서이다. 이들 문서는 청도 임호 서원(林湖書院)에 소장되어 있으며, 밀성 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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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토평리에 있는 탁영 종택에 소장된 조선 시대의 고문서. 김해 김씨(金海金氏) 일문은 조선 시대부터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토평리에 세거해 오고 있다. 특히 무오사화 당시 화를 입은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1464∼1498]을 비롯하여, 16세기 전후 다수의 사림파 인사들을 배출시키며 청도 지역의 명문 사족 가문으로 자리 잡았다. 김일손의 후손들도 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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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북도 청도군 출신의 의병장 최한룡이 작성한 의병 격문. 「최한룡 의병 격문(崔翰龍 義兵 檄文)」은 경상북도 청도군 출신의 의병장 최한룡[1849∼1917]이 1907년 4월부터 1908년 1월에 다섯 차례에 걸쳐 발표한 격문으로, 일본의 침략을 비판하고 국권 회복을 부르짖으며 국민들의 충성심과 애국심을 고취하고 있다. 최한룡은 1907년 7월 창의하여 의병 활동을 하다가...
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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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출신의 무신 식성군 이운룡이 기록한 일기와 등록. 임진왜란 때 원균의 휘하에서 원균을 설득하여 충무공 이순신과 연합 작전으로 옥포 해전의 선봉에서 활약했던 식성군 이운룡(李雲龍)[1562∼1610] 장군이 삼도 수군 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 재직 시 임진왜란 후의 상황 등을 기록한 일기 1책과 『계본 등록(啓本謄錄)』 2책이다. 두 책은 청도에 살던 이운룡의 11대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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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5월 경상 감영에서 청도군의 신간 전답을 조사하고 작성한 양안. 경상 감영(慶尙監營)에서 작성하였다. 『경상도 청도군 신간 전답 타량 성책(慶尙道 淸道郡 新墾 田畓 打量 成冊)』은 당시 경상도 청도군의 상남면(上南面)과 중남면(中南面)의 전답을 대상으로 조사하고 있다. 상남면과 중남면은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일대이다. 경상 감영에서 새롭게 개간된 이 일대의 전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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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8년 경상도 청도현 상동면 대천원의 어의궁 둔전에 대한 양안. 경상도 청도현에서 작성하였다. 어의궁(於義宮)은 당시 국왕이었던 숙종의 증조부인 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 머물렀던 잠저(潛邸)이다. 어의궁과 같은 궁실 및 궁가, 즉 궁방(宮房)에는 왕실·왕족·왕비족 등의 소요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면세지인 궁방전이 지급되고 있었다. 어의궁도 전국 각지에 궁방전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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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11월 광무 사검의 일환으로 작성된 경상북도 청도군의 둔토 전답안. 갑오경장 이후 각 역둔(驛屯)을 폐지하고 그 부속 역둔토를 정부 기관에 이속시켰다. 나아가 정부에서는 역둔토의 농민을 소작인으로 구사하여 소작료를 징수하고 이를 재정 수입으로 하였다. 하지만 역둔토에 대한 일원적이고 계통적인 파악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각 아문별로 소관해야 할 역둔토의 면적이나, 소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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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5월 경상북도 청도군에서 관내 각 역의 전답 도세 및 작인의 성명 등을 기재한 장부. 경상북도 청도군에서 작성하였다. 역토(驛土)는 조선 시대 각 역의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각 역마다 두었던 토지로, 지방 재정의 중요한 재원이었다. 하지만 1894년 갑오개혁 이후 역토를 포함한 각종 역둔토(驛屯土)의 관리는 중앙에 집중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1900년(광무 4)부터는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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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경상북도 청도 운문사 주지였던 승려 일연이 저술한 역사서. 『삼국유사(三國遺事)』는 1281년(고려 충렬왕 7년)에 승려 일연(一然)이 운문사 주지로 있을 당시 저술한 역사책으로, 현존하는 우리 고대 역사책인 『삼국사기』와 더불어 쌍벽을 이루고 있다.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와 마찬가지로 신라·백제·고구려 세 나라의 역사뿐만 아니라 고조선과 기자 및 위만 조선을 비롯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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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 성현도에 소속된 각 역의 운영 실태를 기록하여 편찬한 역지. 『성현도 역총(省峴道 驛摠)』은 경상도 중요 역도(驛道)의 하나인 성현도에 소속된 각 역의 운영 실태를 기록한 자료이며, 2013년 현재 서울 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각 지역의 행정 단위별로 읍지(邑誌)가 편찬되었다.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교통 행정 단위인 역도를 중심으로 한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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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성현도의 역참들을 관리하는 데 드는 인적·물적 자원의 현황을 기록한 책. 『성현도저리역가리정절목(省峴道邸吏役價釐正節目)』은 1802년에 성현역과 성현 찰방 관할 아래 있던 역참들의 각종 현황들을 기록한 자료이다. 『성현도저리역가리정절목』은 2013년 현재 천안 우정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역 운영과 관리에 들어가는 액수를 각 역별로 기록하고, 관내의 역을 운영하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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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에 간행된 경상도 청도군 출신의 무신 이운룡의 실기. 『식성군 실기(息城君 實記)』는 임진왜란 당시 경상 좌수사로 활약했던 이운룡(李雲龍)[1562∼1610]의 실기(實記)이다. 이운룡은 전란이 끝난 1604년(선조 37) 군공으로 선무공신(宣武功臣) 3등으로 책록되었으며 식성군에 봉해졌다. 이운룡의 실기에 수록된 자료들은 가전(家傳)되어 오다 『식성군 실기』라는 제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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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의 인문지리적 상황을 담은 사찬 읍지. 『오산지(鰲山志)』는 청도의 재지 사족이던 이중경(李重慶)이 1673년경에 편찬한 사찬 읍지이다. 당시에 편찬된 다른 사찬 읍지보다 편목이 다소 많은데, 이는 당시 청도의 재지 사족에 관한 내용들을 많이 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찬 읍지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중경의 본관은 전의이며, 1599년 아버지 이기옥[1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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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9월에 인간된 경상북도 청도군의 향안. 『청도 향안 정명록(淸道 鄕案 正名錄)』은 1911년 9월에 인간(印刊)된 향안이다. 일제 강점기에 인간되었지만 1599년(선조 32)부터 1700년(숙종 26)까지 조선 시대 경상도 청도군의 유향소 향원(鄕員) 393명의 명단을 수록해 놓은 것이 특징이다. 또한 『청도 향안 정명록』은 ‘좌목, 정명록’으로도 불린다. 『청도 향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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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남산리 남강 서원에 소장된 조선 시대 전적.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남산리에 있는 남강 서원은 1691년(숙종 17)에 창건되어,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 창건 당시 국담(菊潭) 박수춘(朴壽春)[1572∼1652]을 봉안하였고, 23년 뒤에 오졸재(迂拙齋) 박한주(朴漢柱)[1459∼1504]를 추향하였다. 박수춘은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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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유등리 오천 서당에 소장된 213종 1,118책의 전적. 오천 서당은 복암(復菴) 장화식(蔣華植)[1871∼1947]이 강학하던 곳이다. 오천 서당에는 213종의 전적이 소장되어 있는데, 이 중 편자와 저자를 알 수 있는 것은 156종이다. 전적은 문집과 경서 등을 총망라하고 있는데 양성지(梁誠之), 성삼문(成三問), 권벌(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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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토평리 탁영 종택에 소장된 32종 46책의 전적. 탁영 종택에는 32종 46책의 전적이 소장되어 있는데, 그 성격상 자계 서원(紫溪書院) 소장본과 종택 소장본으로 나눌 수 있다. 전적은 원록(院錄), 원규(院規), 유안(儒案), 청금안(靑衿案), 원안(院案), 강회계안(講會契案), 완의문(完議文) 등과 같이 서원의 인적 구성, 운영, 제향 인물과 관련된 자료...
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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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이 표현된 옛 지도. 지도란 우리가 살고 있는 지리적 공간을 축소한 그림으로, 필요한 정보를 약속된 기호를 사용해 표현한 것이다. 즉 지표상 위에 존재하는 모든 지리 정보 가운데 필요에 따라 정보를 취사선택하여 일정한 약속으로 만들어진 기호, 문자, 채색을 사용해 평면상에 나타낸 것이 지도이다. 따라서 각 시기에 제작된 지도는 당시의 지리적 정보는 물론 지도를 제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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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에 제작된 군현 지도 중 청도 지역의 지도. 1872년에 제작된 지방 지도 중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일대 지도이다. 지도 우측 상단에 지도명인 ‘청도(淸道)’가 표기되어 있으며, 지도의 상단은 지리상 동쪽에 해당한다. 따라서 지리상 북쪽을 지도의 상단으로 배치하면 동서로 긴 청도군의 모습을 파악하는 데 용이하다. 임진왜란·병자호란 이후 18세기 조선은 정치적으로 각종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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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전반에 제작된 전국 군현 지도집인 『광여도』 중 청도 지역의 지도. 『광여도(廣輿圖)』 「청도군 지도」는 지금의 각북면, 풍각면, 각남면을 제외한 청도군 일대를 회화식으로 그린 채색필 사본 군현 지도이다. 18세기와 19세기 관찬에서 제작한 지도들을 살펴보면, 지리 정보를 표현하는 방법에서 형식적 차이가 있다. 이는 지도 제작의 통일성과 지도 판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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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0년대 초 제작한 『해동지도』에 있는 청도 지역의 지도. 『해동지도(海東地圖)』에는 군현 지도뿐만 아니라 당시에 제작된 다양한 종류의 지도가 수록되어 있다. 이는 당시까지 제작된 지도를 묶어 편찬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지만, 실상 지도를 제작하기 위한 지리적 정보가 모두 같은 시간,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도 지도의 경우 지도와 지도 여백의 설명문에는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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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제작된 『여지도』에 포함된 청도 지역의 지도. 『해동지도(海東地圖)』에 수록된 「청도군 지도」와 유사한 형태로 제작된 회화식 군현 지도이다. 1750년대에 제작된 『해동지도』와 비교해 볼 때, 지도집의 전체적은 구도는 비슷하지만, 지도에 반영된 지명에 차이가 보인다. 특히 「안음현 지도」가 수록되어 있지 않았던 『해동지도』와 달리 『여지도』에는 「안음현 지도」가 수록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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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후반 제작된 『경주도회 좌통지도』에 포함된 청도 지역의 지도. 18세기 중반 경상북도 청도군 일대 모습을 회화적 요소를 가미하여 제작한 군현 지도이다. 지리 정보의 형상을 도형화하고, 산과 강, 사찰과 관아의 건물, 성곽, 봉화터 등 주요 건물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여 청도군의 모습을 파악하는 데 용이하다. 대부분의 고지도에는 제작 시기와 제작자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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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에 제작된 『대동여지도』에 포함된 청도 지역의 지도. 현재 우리나라 박물관 및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는 총 17종이며, 그 가운데 4종이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4종 가운데 3종은 1861년에 제작한 신유본이고, 1종은 1864년에 지도의 내용 가운데 일부를 수정하여 1864년에 간행한 갑자본이다. 현존하는 17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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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제작된 『팔도분도』에 포함된 청도 지역을 비롯한 경상도 지도. 『팔도분도(八道分圖)』의 제작 시기는 1767년에 개명되는 경상도 안음(安陰), 산음(山陰)이 표기된 것으로 보아 1767년 이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경기도 지도에 건릉(建陵)과 화성(華城)이 표시되어 있으나, 이는 수원의 원래 읍치 소재지 흔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후대의 소장자가 써넣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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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후반에 제작된 『조선지도』에 포함된 청도 지역의 지도. 「경상도 청도군도」로 『조선지도(朝鮮地圖)』의 제작 시기를 파악하기는 어려우며, 『조선전도』에 수록된 다른 군현에 반영된 지명을 통해 지도의 제작 시기를 추정해 볼 수 있다. 제7책 경상도 지도에 수록된 군현 지도를 보면, 1767년에 개칭된 안의(安義)와 산청(山淸) 지도가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충청도 지도책에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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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제작된 『동국지도』에 포함된 청도 지역을 비롯한 경상도 지도. 경상도 일대를 포함하여 조선 8도의 모습을 그린 『조선팔도지도(朝鮮八道地圖)』는 정상기(鄭尙驥)[1678∼1752]의 『동국지도(東國地圖)』 수정본 유형 가운데 ‘해주신본(海州新本)’에 해당한다. 『조선팔도지도』에는 1776년에 개칭된 지명들이 지도에 반영되어 있다. 평안도의 이산(尼山)이 초산(楚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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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후반에 제작된 『지승』에 포함된 경상북도 청도 지역의 지도. 『지승(地乘)』의 제작 시기는 지도에 반영된 지명을 통해 추정해 볼 수 있다. 1776년에 이성(尼城)에서 초산(楚山)으로 개칭된 충청도의 이산(尼山)과 평안도의 이산(理山)이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18세기 후반에 변화된 지명은 반영되지 않았다. 즉 1787년 신설된 장진, 1789년에 이동한 수원의 읍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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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에 제작된 『비변사인방안지도』에 포함된 청도 지역의 지도. 18세기에 제작된 『비변사인방안지도(備邊司印方眼地圖)』 가운데 영남 지도(嶺南地圖)의 제작 시기는 수록되어 있는 71장의 지도에 반영된 지리 정보인 지명을 통해 추정해 볼 수 있다. 제1책 영일 지도에 1731년 설치된 ‘포항창’이 그려져 있으며, 하동의 읍치가 1745년에 이전된 곳으로 표시되어 있고, 고령 지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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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전반에 제작된 『동국여도』에 포함된 청도 지역을 비롯한 경상도 지도. 지도상에 지도의 제작 목적과 제작 시기가 밝혀져 있지 않기 때문에 지도에 반영된 지리 정보를 통해 『동국여도(東國輿圖)』의 제작 시기를 추정해 볼 수 있다. 지도의 제작 시기 상한선이 되는 19세기 전반에 경상도 일대에서 명칭이 변경된 군현이 없으므로 『동국여도』에 수록된 다른 지역의 군현명을 통해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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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제작된 『동역도』에 포함된 청도 지역을 비롯한 경상도 지도. 제작 시기를 명시하지 않는 고지도에서 지도의 제작 시기는 지도에 반영된 지리 정보를 통해 추정할 수 있다. 이런 방법으로 살펴보았을 때 『동역도(東域圖)』는 전체적으로 1800년대 초반까지의 지명을 반영하여 제작한 지도이다. 그러나 8도 가운데 경상도는 예외로, 1767년(영조 43)에 산청(山淸)과 안의(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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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말에 제작된 『삼한일람도』에 포함된 청도 지역을 비롯한 경상도 일대 지도. 『삼한일람도(三韓一覽圖)』의 제작 시기는 지도에 표시된 지리 정보가 한정된 만큼 판단하는 데 유의해야 한다. 1651년(효종 2)에 강음과 우봉을 합해 만들어진 황해도의 금천(金川)이 수록되어 있지만, 강음과 우봉도 함께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경상도에 표시된 군현 가운데 영양과 순흥은 표기 방법이...
향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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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2년 청도군에서 만든 읍지로서 『경상도 읍지』에 수록되어 있다. 『청도군 읍지(淸道郡邑誌)』는 정조 대인 18세기 동안, 1832년, 1871년, 1895년, 1899년 등 다섯 차례에 걸쳐 제작되었다. 2013년 현재 이들 판본은 서울 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으며, 이 중 1832년, 1871년, 1895년 판본은 영인본으로 출간되었다. 18세기에 간행된 판본은 정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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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읍지 상송령에 따라 청도군에서 만든 읍지. 청도군의 읍지(邑誌)는 18세기[정조], 1832년, 1871년, 1895년, 1899년 등 다섯 차례에 걸쳐 제작되었다. 2013년 현재 이들 판본은 서울 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으며, 이 중 1832년, 1871년, 1895년 판본은 영인본으로 출간되었다. 18세기에 간행된 판본은 정확한 작성 연대를 알 수 없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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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 전국적인 읍지 편찬 사업으로 청도군에서 편찬한 읍지. 청도군의 읍지(邑誌)는 18세기[정조], 1832년, 1871년, 1895년, 1899년 등 다섯 차례에 걸쳐 제작되었다. 2013년 현재 이들 판본은 서울 대학교 규장각에 수장되고 있으며, 이 중 1832년, 1871년, 1895년 판본은 영인본으로 출간되었다. 18세기에 간행된 판본은 정확한 작성 연대를 알 수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