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4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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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義友團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권대웅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 있었던 사회 운동 단체.
[개설]
의우단은 사회주의 사상을 수용한 단체로 일제 강점기에 청도 지역 사회 운동의 중심에 서 있었다. 1927년 신간회 청도 지회를 설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설립 목적]
과학적 교양의 수립과 ‘새로운 사회 건설’을 지향하고, 사상운동 단체 및 실제 운동 단체를 절대적으로 옹호함을 설립 목적으로 하였다.
[변천]
1924년 8월 도시춘(都是春)·강태찬(姜泰璨)을 비롯한 7∼8인의 발기로 조직되었다. 1925년 12월 23일에 집행 위원장 김봉(金烽)의 사회로 집행 위원회를 열고 강령과 규약을 개정하고 혁신을 꾀하기 위해 임시 총회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1926년 1월 1일에 의우단은 집행 위원회의 결의에 따라 도주 학원(道州 學院)에서 임시 총회를 개최하여 강령과 규약을 통과시키고, 새로운 임원진을 선임하였다. 1927년 4월 12일에 청도 청년 회관에서 제3년도 제2회 집행 위원회를 열었다. 이 때 의우단은 운동의 방향을 전환하기로 하고, 신간회에 참여하기로 결정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청도 지역 사회 운동의 중심에 있던 의우단은 1925년 12월 23일에 집행 위원장 김봉의 사회로 집행 위원회를 열고 일본 삼성당 교과서 불매 운동을 추진하였다.
1926년 1월 1일에 도주 학원에서 임시 총회를 개최하였다. 임시 총회는 강령과 규약을 통과시키고 집행 위원을 선임하고 결의를 하였다.
강령은 첫째, 우리들은 과학적 교양을 기할 것, 둘째, 우리들은 철저한 지식과 공고한 단결로써 합리적 신사회 건설을 기할 것, 셋째, 우리들은 사상 단체와 실제 운동단체에 대하여 절대 옹호를 기할 것이었다.
집행 위원으로는 집행 위원장에 김봉, 서무부에 도창용(都昌溶)과 김경홍(金慶洪), 교양부에 강태찬(姜泰璨)과 김천수(金千洙), 조사부에 이태진(李泰鎭)과 김천수(金千洙)가 선임되었다.
결의는 형평 운동 옹호에 관한 건, 소년 운동 촉진에 관한 건, 농민 조합 발기에 관한 건, 악기 구입에 관한 건, 단원 정리에 관한 건, 기타 문제에 관한 건을 결의하였다.
1927년 4월 12일에 청도 청년 회관에서 제3년도 제2회 집행 위원회를 열었다. 집행 위원회에서는 운동 방향 전환에 관한 건, 신간회에 관한 건, 영흥 및 해남의 메틴 사건에 관한 건, 통영 김기정(金琪正) 사건에 관한 건, 메이데이 기념의 건, 임시총회 개최의 건, 단명 개칭에 관한 건, 청도 사회단체 연합 간친회 개최에 관한 건 등이 논의되었다. 이 때 의우단은 운동의 방향을 전환하기로 하고, 신간회에 참여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메이데이 기념식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한편 의우단은 형평 운동을 지원함과 아울러 소년 운동·농민 운동을 촉진하기로 하였다. 청도 소년회는 1926년 1월에 조직되었는데 1924년경에 조직된 청도 광성단(淸道 光成團)을 혁신하여 소년회로 바꾸었다. 뿐만 아니라 1926년 1월 1일에 의우단은 임시 총회 결의에 따라 1926년 10월에 이르러 청도 전역을 아우르는 청도 소작 조합을 조직하였다.
[현황]
신간회 청도 지회 창립 직후인 1927년 6월, 의우단 집행 위원은 도시춘·이태진·김봉 외 6인이었고, 그 외 19명의 단원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의의와 평가]
청도 지역의 청년 운동·소년 운동·농민 운동 등의 사회 운동을 지도한 사상운동 단체로 1927년 신간회 청도 지회를 설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