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7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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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湧泉寺浮屠群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탑과 부도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오산리 138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남궁현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5년 1월 10일 - 용천사부도군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78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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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용천사부도군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
현 소재지 | 용천사부도군 -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오산리 138 |
성격 | 부도 |
양식 | 석종형 |
관련 인물 | 사송당 최백 대사|우운당 진희 대사|청심당 □□ 대사|대허|회진 |
재질 | 석조 |
크기(높이) | 2.0∼2.2m |
소유자 | 용천사 |
관리자 | 용천사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오산리에 있는 부도 떼.
[개설]
부도는 입적한 승려의 유골이나 사리를 봉안하는 시설로 묘탑적(墓塔的) 성격을 갖는 조형물이다. 불가에서 입적은 열반에 비유되는데 열반이란 수행이 점진적인 단계를 밟으면서 일체의 번뇌가 모두 소멸되었을 때의 경지를 일컫는 말이다. 따라서 부도는 최고의 경지에 이른 열반한 승려의 유골이나 사리를 모신 조형물이라 할 수 있다.
용천사부도군는 부근에 남아 있는 용천사(湧泉寺)와 관련된 고승들의 묘탑으로 보인다. 용천사는 670년(신라 문무왕 10)에 의상 대사가 창건하여 옥천사(玉泉寺)라 하였다. 1267년(고려 원종 8) 일연 선사가 중창하고 불일사(佛日寺)라 하였다가 다시 용천사(湧泉寺)라 이름을 고쳤다고 한다. 임진왜란 후 1631년(인조 9)에 영조 대사(英祖大師)가 중창하고, 1805년(순조 5)에 의열 화주(義烈和主)가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건립 경위]
용천사부도군은 부도에 새겨진 명문으로 보아 용천사와 관련된 ‘사송당 최백 대사(四松堂 最栢 大師)’, ‘우운당 진희 대사(友雲堂 眞熙 大士)’, ‘청심당 □□ 대사(淸心堂 □□ 大士)’ ‘대허(大虛)’, ‘회진(會眞)’ 등 조선 시대 고승들의 묘탑임을 알 수 있다.
[위치]
석조 부도는 용천사 서쪽 산기슭에 단을 이루며, 세 곳에 총 6기가 놓여 있다. 누구의 부도인지 알 수 없는 부도 한 기와, 그 위쪽 두 곳에 각각 세 기와 두 기의 부도가 동쪽을 바라보면서 서 있다. 동쪽으로는 용천사가 비슬산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으며, 헐티재로 내려가는 지방도 902호선이 부근에 있다.
[형태]
용천사 부도는 모두 조선 시대 부도의 특징인 석종형이며, 크기는 2.0∼2.2m 정도이다. 세부적으로는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네모난 지대석 위에 상대와 하대로 구성된 기단 위에 석종형의 몸돌을 올려놓았다. 상륜은 별도의 돌을 이용하지 않고 몸돌의 상부를 보주(寶珠) 모양으로 다듬어 표현하였다. 상대와 하대의 기단에는 연꽃무늬를 새겨 넣었다.
[현황]
석조 부도는 용천사 서쪽 산기슭에 단을 이루며 세 곳에 총 6기가 놓여 있다. 안내판과 부도 떼를 보호하기 위한 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2005년 1월 10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7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용천사부도군는 양식으로 볼 때 세부 조각이 우수한 조선 시대 후기 유물에 해당하며, 부근에 위치한 용천사와 관련된 고승들의 부도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