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04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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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沃溝群山港民團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구희진 |
설립 시기/일시 | 1907년 3월 - 옥구 군산항 민단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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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1907년 7월 - 옥구 군산항 민단 확대 재창립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08년 5월 4일 - 옥구 군산항 민단이 주축이 되어 대한 협회 군산 지회 창립 |
성격 | 자강 운동 단체 |
설립자 | 이무영|조병승 |
[정의]
[개설]
옥구 군산항 민단은 을사 늑약 이후 군산항에 설립된 자강 운동 단체이다. 군산항의 민단은 1907년(융희 1) 3월경에 옥구 부윤 이무영이 중심이 되어 창립되었다가 1907년(융희 1) 7월경에 지역의 유지들이 참여하면서 재 창립한 것으로 보인다. 군산 지방의 대표적인 자강 운동 단체로 교육, 계몽을 중심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설립 목적]
옥구 군산항 민단 설립자들이 밝힌 설립 취지서가 『황성 신문』 1907년(융희 1) 7월 30일자에 실려 있다. 이를 통해서 설립 목적을 살펴보면 ‘나라의 흥망은 조정에 관계되기 보다는 백성에게 크게 관계되는 것으로 백성이 개명하고 민력을 충실히 하여 단결하면 능히 국권과 국토를 보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단체를 만들어 계몽 운동을 통해 실력을 양성하여 국권을 보존할 목적으로 설립된 것이었다.
[변천]
옥구 군산항 민단의 모체가 되는 군산항의 민단은 1907년(융희 1) 3월경에 옥구 부윤 이무영이 중심이 되어 창립된 것으로 보인다. 이무영은 1906년(광무 10) 옥구 부윤으로 부임하였는데 이미 한말 독립 협회의 활동을 주도하였던 사람이었다. 당시 평양 등지에서 민회가 만들어져서 교육과 산업 활동을 하는 것을 보고, 군산 지역에도 민단을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무영이 민단을 설립하고 규칙을 정부에 보고하였다는 기사가 『대한 매일 신보』 1907년(융희 1) 3월 16일자에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서 대략 이 시기에 민단을 설립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민단이 규칙과 체계를 갖추기는 했지만 외지에서 부임한 부윤이 중심이 되었으므로 곧바로 적극적인 활동을 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군산항 민단은 1907년(광무 11) 중반 들어 지역에 연고를 가진 고위 관료와 군산항 객주들이 참여하면서 새롭게 재 창립된 것으로 생각된다. 옥구 군산항 민단은 1907년(융희 1) 7월말에 조병승을 중심으로 재 창립 되어서 취지서를 『황성 신문』에 기고하기도 했다. 군산항 민단이 중심이 되어서 이후 전국적인 계몽 운동 단체인 대한 협회 군산 지회도 설립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옥구 군산항 민단은 군산 지방의 대표적인 자강 운동 단체로 교육, 계몽을 중심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옥구 군산항 민단이 추진한 대표적인 일은 교육 활동이었다. 1907년(융희 1) 봄 민단 창립 초기에 학교를 설립하였는데, 이 학교는 ‘사립 학교’, ‘군산항 민단 강습소’ 등으로 불리다가 1908년(융희 2) 학부 대신이 방문한 뒤에 이름을 금호 학교라고 하였다. 그리고 옥구 군산항 민단이 주축이 되어서 1908년(융희 2) 5월 4일 대한 협회 지회를 설립하여 옥구 지역에서 다양한 자강 운동을 추진해갔다.
[의의와 평가]
옥구 군산항 민단은 군산 지방의 대표적인 자강 운동 단체로 설립되어 활동하였다. 군산항 민단이 중심이 되어서 이후 전국적인 계몽 운동 단체인 대한 협회의 군산 지회도 설립되었다. 국권 회복 운동기 군산 지역에서는 자강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