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05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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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日本人撤收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종안 |
[정의]
해방 이후 전라북도 군산 지역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이 본국으로 귀환한 사건.
[역사적 배경]
일본이 만주 사변을 일으킨 1931년 이후 병참기지화 했던 군산은 다른 도시에 비해 해방을 조용히 맞았다. 일본 군대[수호 부대]가 주둔하고 있었고, 일본인 거주자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1944년 5월 현재 군산[옥구군 포함]에는 1만 1095명의 일본인이 거주하고 있었다.
[경과]
군산을 피해 부안이나 고창을 통해 철수하기에 이르자 일본인들은 자국민 보호와 무사 귀환을 위해 1945년 8월 19일 세화회(世話会)라는 조직을 만들어 대처한다. 남선 합동 전기 부사장이던 일본인 쓰지구치[口虎三]가 회장을 맡은 세화회는 처음에는 상공 회의소에 사무실을 두었다가 후에 군산 유치원으로 옮겨 활동하기도 하였다.
[결과]
미국 군정청의 철수 계획에 따라 일본 사람들은 한국을 떠났다. 천황의 항복 소식을 접하고 집안에서 두문불출하던 군산·옥구와 인근 지역 일본인 2만여 명이 보따리를 싸들고 귀국선을 타기 위해 군산 초등학교에 모였다. 군산 시민은 그 광경을 보면서 진정 광복이 왔음을 실감했다고 한다.
당시 일본인 중에는 귀국을 거부하는 대 농장주도 있었고, 중요 물자 반출을 막는 건국 준비 위원회 위원에게 짐을 압수당하자 음독 자살하는 일도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