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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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에서 1392년까지 고려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경기도 부천 지역 역사. 936년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는 940년(태조 23) 전국에 있는 지방 군현의 지명을 바꿨다. 이때 부천의 지명도 장제군에서 수주(樹州)로 개칭되었다. 995년(성종 14)에는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기 위해 전국에 지방관을 파견하였다. 이때 수주에도 단련사(團練使)라는 지방관이 파견되었다.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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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경기도 부천 지역이 포함된 지방 행정기구. 관내도는 개경(開京)을 중심으로 한 적기현(赤畿縣)을 둘러싸고, 위로는 황해도 황주, 아래로는 경기도 수원을 포함하였다. 『고려사절요』에 따르면, 995년(성종 14) 당나라의 제도를 채용하여 관내도를 비롯하여 중원도(中原道)·하남도(河南道)·강남도(江南道)·영남도(嶺南道)·영동도(嶺東道)·산남도(山南道)·해양도(海陽道)·삭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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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부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송국첨의 본관은 진천(鎭川)이며, 과거에 급제하여 직사관(直史館)이 되었다. 1226년(고종 13) 금나라의 장수 우가하(于哥下)가 침입하자 감찰어사(監察御史)로 우군장(右軍將)이 되어, 김희제(金希磾)·손습경(孫襲卿)과 함께 보기(步騎) 1만여 명을 거느리고 출전하여 우가하를 물리치고 개선하였다. 정언을 거쳐 판비서성사(判秘書省事)가 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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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경기도 부천의 행정 지명. 계양산 북쪽 수소리(樹蘇里)에 청사가 있었는데, 이곳이 밀림 속처럼 울창하다 하여 수주(樹州)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수주는 고구려 때 주부토(主夫吐), 통일신라시대 장제(長堤)에 이어 세 번째로 쓰인 부평의 행정 지명이다. 고려 초에는 대체로 고려왕조에 협조적이거나 귀부(歸附)해 온 지방 세력의 근거지를 주(州)로 삼는 경우가 많았는데,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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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부천의 옛 이름. 안남(安南)은 계양산의 다른 이름인 안남산(安南山)에서 유래되었다. 안남은 고구려 때 주부토(主夫吐), 통일신라시대에 장제(長堤), 고려 전기 때 수주(樹州)에 이어 네 번째로 쓰인 부평의 행정 지명이다. 1150년(의종 4) 왕은 수주를 폐하고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를 설치하였다. 안남은 지금의 인천광역시 계양구 목상동과 서구 시천동, 그리고 장모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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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부천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구역. 고려시대의 지방제도는 940년(태조 23) 지방의 명호를 고친 이후 성종 대에는 12목을 설치하였고, 현종 대에 4도호부 8목을 거쳐, 5도 양계로 고착되었다. 안남도호부는 현종 대에 설치되었던 4도호부(후에 5도호부로 바뀜) 중의 하나이다. 안남도호부는 고려 태조가 후백제를 멸망시키고 전주를 안남도호부로 삼은 것에서 기인한다. 안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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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경기도 부천시의 역사. 부천시는 한반도의 중앙부에 위치하며, 서울특별시와 인천광역시에 인접해 있다. 동쪽과 북쪽은 서울특별시 강서구·양천구·구로구와 닿고, 남쪽은 경기도 시흥시·광명시와 경계하며, 서남쪽은 인천광역시 계양구·부평구 및 남동구와 접한다. 한강 하류에 인접하여 선사 시대부터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거주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 시대 이후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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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기 경기도 부천 지역에 출몰하여 인명을 해치고 재산을 약탈한 일본 해적집단. 고려시대에 왜구는 일본의 이키[壹岐]·쓰시마[對馬]·기타큐슈[北九州]·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 등을 근거지로 삼고 있었다. 왜구는 충정왕·공민왕·우왕에 이르는 40여 년간 100~500척의 선단으로 활동 무대를 경상도·전라도·충청도·경기도의 연안까지 넓혔으며, 때로는 황해도와 평안도에서도 노략질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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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무신. 본관은 칠원(漆原). 군부판서(軍簿判書) 윤수(尹秀)의 손자이다. 아들은 없고, 서녀를 남좌시(南左時)에게 출가시켰다. 윤관은 충숙왕 때에 호군(護軍)을 지내고 충혜왕이 즉위한 후 대언(代言)으로 임명되었는데, 1328년(충숙왕 15) 호군으로 원나라에 가서 모시와 종이를 바쳤다. 충혜왕 초에는 대언을 제수받았으나, 충숙왕이 복위하자 전왕의 폐행(嬖幸)으로 몰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