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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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동 철마산 북동 계곡에서 발원하여 경기도 부천시를 거치고 김포시를 관통하여 한강으로 흘러드는 하천. 굴포라는 명칭은 자연 하천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하천이 없는 곳을 인공적으로 파서 하천으로 만든 것을 말한다. 굴포천은 조선 중종 때 삼남 지방에서 곡물 등을 싣고 강화도로 이동하는 배가 강화도 손돌목에서 뒤집히는 경우가 많아 이 뱃길을 피해 더 안전하게 운반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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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부천 지역 출신의 문신. 변고적(卞高迪)을 시조로 하는 밀양변씨가 부천 지역에 정착한 것은 조선 초기 변예생(卞禮生)[?~1444] 때부터이다. 변예생은 밀양변씨 시조의 13세손으로 우군사정(右軍司正)을 거쳐 사후에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추증되었다. 밀양변씨는 부천에 들어온 이후 550여 년간 흑량리(黑梁里)[현 부천시 고강동]를 중심으로 살고 있다. 본관은 밀양(密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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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이라는 지명은 1914년 일제에 의해 지어졌기 때문에 부천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유일하게 부천임씨가 있을 뿐이다. 다만 현재 부천과 가까운 곳인 부평엔 왕건을 도와 고려를 세우는 데 일등공신이 된 이희목의 부평이씨가 있고, 희귀성인 부평 사씨(舍氏)가 있다. 조선시대까지 부천이 부평으로 불렸기 때문에 부천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에 부평이씨와 부평 사씨(舍氏)를 포함시킬 수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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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양유를 시조로 하고 여제분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부천시 세거 성씨. 성주여씨는 여양유(呂良裕)를 시조로 하고 있다. 본래 성주여씨의 시조는 여어매(呂御梅)였다. 그러나 병란으로 관련 문헌이 소실되어 계보를 명확히 알 수 없게 되자, 후손들이 고려시대에 삼중대광(三重大匡)을 지낸 여양유(呂良裕)를 시조로 삼게 되었다. 여어매는 당나라 사람으로 877년(헌강왕 3)에 황소의 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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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부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송국첨의 본관은 진천(鎭川)이며, 과거에 급제하여 직사관(直史館)이 되었다. 1226년(고종 13) 금나라의 장수 우가하(于哥下)가 침입하자 감찰어사(監察御史)로 우군장(右軍將)이 되어, 김희제(金希磾)·손습경(孫襲卿)과 함께 보기(步騎) 1만여 명을 거느리고 출전하여 우가하를 물리치고 개선하였다. 정언을 거쳐 판비서성사(判秘書省事)가 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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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필을 시조로 하고 장세강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부천시의 세거 성씨. 『안동장씨대동속보』에 의하면 시조 장정필은 888년(진덕여왕 2)에 중국 절강성 소흥부에서 대사마대장군 장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를 따라 망명하여 강원도 강릉 땅에 머물다가 경상북도 노전으로 옮겨 살았다. 930년(태조 13)에 고창 성주인 김선평·판관 권행과 함께 태조를 도와 후백제 견훤의 군대를 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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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에 속하는 행정동이자 법정동. 행정동으로서의 약대동은 약대동과 중동 일부, 도당동 일부를 관할하고 있다. 우마의 먹이인 거여와 나벌의 뜻을 가진 약목이라 하다가 이곳에 약물 터가 있다 하여 약대로 불렸다고 한다. 토질이 비옥하고 식물 분포가 다양하여 산나물과 약초가 많이 난다 하여 약대말[藥垈·藥臺]이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설도 있으며, 대형 초식 동물이 좋아하는 억새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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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경기도 부천시의 역사. 부천시는 한반도의 중앙부에 위치하며, 서울특별시와 인천광역시에 인접해 있다. 동쪽과 북쪽은 서울특별시 강서구·양천구·구로구와 닿고, 남쪽은 경기도 시흥시·광명시와 경계하며, 서남쪽은 인천광역시 계양구·부평구 및 남동구와 접한다. 한강 하류에 인접하여 선사 시대부터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거주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 시대 이후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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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주이씨 부천 입향조. 본관은 전주(全州). 효령대군(孝寧大君) 이보(李𥙷)의 4세손 칠산군(漆山君) 이선손(李璿孫)의 여섯째 아들이다. 부인은 남원윤씨(南原尹氏)이다. 이옥은 중종 때 현재의 부천시 내동으로 낙향하여 정착하였다. 그 후손들이 18대 400여 년간 내동에 거주하고 있다. 묘소는 경기도 부천시 여월동 산32번지[원미로281번길 35]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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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부천 지역 출신의 문신. 중종(中宗)의 11대 손으로, 부친은 이명식(李明植)이다. 이종응은 왕족으로 1896년 9월 궁내부 소속으로 시종원 시어에 임명되었다. 1902년 이재각 특명대사의 수행원으로 발탁되어 영국사행을 수행하였다. 이종응 일행은 일본 요코하마에 들러 유찬(劉燦) 주일공사의 영접을 받으며 동경의복점에서 예복을 맞춰 입고 사진관에서 기념촬영한 후 태평양 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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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안동. 자는 기중(紀中). 아버지 장한공은 중종 때 정국공신 영산군(永山君)으로 포도장(捕盜將)·보성군수·황주목사를 지냈다. 아들은 감찰을 역임한 장민(張敏)이다. 부인은 평강채씨 채윤경(蔡允卿)의 딸이다. 안동장씨는 장세강의 후손이 채윤경의 외손봉사를 위해 김포로 내려와 김포파의 입향조(入鄕祖)가 되면서 부천과 인연을 맺은 것으로 추정된다. 장세강은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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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작동에 있는 조선 중기의 충신 장세강의 묘. 장세강(張世綱)의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는 기중(紀中)이다. 안동장씨 김포파의 입향조(入鄕祖)로, 아버지는 장한공(張漢公)이다. 장세강은 중종 대에 정국공신(靖國功臣) 영산군(永山君)에 봉해졌고, 시호는 충양공(忠襄公)이다. 1588년(선조 21) 선전관(宣傳官)이 되었고, 임진왜란 때 신립 장군의 종사관(從事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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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을 시조로 하고 효령대군파의 이옥·이성의, 임영대군파의 이경, 밀성군파의 이양·이병덕, 덕흥대원군파의 이명인·이종응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부천시의 세거 성씨. 전주이씨는 신라 문성왕[839~856] 때에 사공을 지낸 이한(李翰)을 시조로 한다.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이한의 21세손이다. 그러나 이성계의 고조부인 목조 이안사(李安社) 이전의 사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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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여월동에 있는 16세기에서 19세기까지 조성된 전주이씨의 가족 묘역. 도당산 남동쪽 능선을 따라 조성되어 있고, 도당동과 경계를 이룬다. 부천종합운동장 사거리에서 서울, 김포공항 방향으로 직진하다가, 여월 정수장 삼거리에서 아래 길로 250m 가, 안골로 우회하여 300m 가량 들어가면, 음식점 맞은편에 전주이씨 종중 재실과 묘역의 진입로가 있다. 이옥 묘는 부인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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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부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아들은 홍녹주(洪祿遒)로 서북면 병마사를 역임하였다. 1233년(고종 20) 서경(西京)에서 일어난 필현보(畢賢甫)·홍복원(洪福源)의 반란이 진압된 뒤 이듬해 병부시랑(兵部侍郞)으로서 서경을 안무(按撫)하였다. 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를 거쳐 원종 대에 평장사(平章事)에 이르렀으며, 두 차례에 걸쳐 서북면을 다스리면서 선정을 폈으므로 지역민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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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약대동에 있던 들 이름. 화개는 한자로 화포(華浦)라고 표기한다. ‘화’는 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곶’에서 나온 말로, 곶이 꽂이 되었다. 우리말로 곶개, 고지개, 구지개라 한다. ‘개’는 개 포(浦)로 포구를 뜻한다. 그러므로 화개는 ‘바다 쪽으로 툭 튀어나온 포구’를 의미한다. 화개 앞이어서 화개앞벌 또는 화개앞들이라고 불렀다. 한자로는 화포야(華浦野)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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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를 시조로 하고 김백순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부천시의 세거 성씨. 희천김씨의 시조 김우(金佑)는 신라 경순왕의 여덟째 아들 김추(金錘)의 셋째 아들이다. 고려 강종 때 문하시중으로 나라에 공을 세워 온양군에 봉해짐으로써 온양을 본관으로 하는 온양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13세손 김우(金宇)가 1400년(정종 2) 내란을 평정한 공으로 희천군(熙川君)에 봉해졌다. 이후 후손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