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05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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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天安湖西銀行-萬-事件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내수 |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천안에 있는 호서 은행 지점에서 인출한 자금으로 독립운동을 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된 사건.
[개설]
신현상(申鉉商)과 최석영(崔錫榮)은 1930년 2월에 양곡 거래 조건으로 호서 은행 천안 지점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인출하여 무정부주의 운동자금으로 쓰다가 1930년 4월 30일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일제 강점기의 우리나라 무정부주의 운동에서는 일반적으로 어떠한 수단도 불사하며 격렬한 무력 항쟁을 펼쳤다는 점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재중국 조선 무정부주의자 연맹이 결성되던 초기부터 일제의 관영 건물 및 기타 어용 기관을 파괴할 것을 결의하고 폭탄 제조를 계획하였으며, 이에 필요한 자금 조달을 위하여 외국 위폐를 위조하고 있었다. 그리고 텐진[天津] 방면으로 잠입하여 일본인 경제 기관에서 자금을 빼앗아 오는 일도 감행하였다.
[경과]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중국으로 탈출한 무정부주의자 신현상(申鉉商)은 북경과 상해 등지에서 활약하는 혁명 동지들과 약속하고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고자 다시 국내로 들어왔다. 신현상은 충청남도 아산에서 정미업을 하던 최석영(崔錫榮)과 거사를 계획하였다. 신현상은 최석영이 미곡상을 경영하며 거래처인 호서 은행에 상당한 신용을 쌓아 놓은 것에 주목하였다.
1930년 2월 신현상과 최석영은 인천 기선 회사의 선하(船荷) 증권을 위조하여 호서 은행 천안 지점에서 5만 8000원의 거액을 찾아 중국으로 탈출하였다. 이는 세간에는 ‘천안 호서 은행 7만원 사건’으로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렸다. 당시로 보면 5만 8000원은 상당한 금액이었는데, 이에 한동안 운동자금이 바닥나서 침체 상태에 빠져 있던 재중국 조선 무정부주의자 연맹은 활기를 되찾았다.
상하이[上海]에서 활동하던 김구(金九)는 이들이 북경에 도착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정화암(鄭華岩)에게 임무를 주어 이들을 베이징[北京]으로 향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움직임은 텐진의 일본 영사관 경찰에게 들키는 바람에 1930년 4월 30일에 체포되고 말았다. 두 사람은 남은 돈과 함께 조선으로 압송되었는데, 같은 해 11월 예심이 종결되고 12월 2일 공주 지방 법원에서 신현상은 징역 2년형, 최석영은 징역 4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의의와 평가]
신현상과 최석영이 마련한 운동 자금은 1930년 4월에 신현정(申鉉鼎)·최석영(崔錫榮) 등이 천안의 호서 은행에서 5,700원의 자금을 가져오자 유자명(柳子明)·이달(李達)·이하유(李何有)·오면식(吳冕植) 등과 함께 재중국 무정부주의자 연맹 상해부(在中國無政府主義者聯盟上海部)를 조직하였으며, 남화 한인 청년 연맹(南華韓人靑年聯盟)을 조직하여 본격적인 무력 항쟁을 도모하였다. 일부는 무정부주의 운동가들에게 전달되어 무정부주의운동 자금으로 활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