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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령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085
한자 馬嶺峙
이칭/별칭 마협치,마치협,마치(馬峙),마령(馬嶺)
분야 지리/자연 지리
유형 지명/자연 지명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상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전구간 마령치 - 경상북도 청도군∼경상남도 창녕군
해당 지역 소재지 마령치 -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금곡리지도보기
성격 고개
높이 400m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금곡리에서 경상남도 창녕군 성산면 연당리로 넘어가는 고개.

[명칭 유래]

마령치는 청도군에서 창녕군으로 가는 다섯 개의 주요 고개인 버티재, 마령치, 배고개, 통짐이 고개, 매봉재 중 하나이다. 명칭에 대한 정확한 유래는 전해지지 않지만, 마치(馬峙), 말치, 마령(馬嶺), 마령치, 마랑재 등의 이름으로 불렸다. 주변 마령재에서 금곡리로 이어지는 골짜기 이름이 말치골로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말과 관련이 있는 지명으로 추정된다. 『오산지(鰲山志)』[1673]에서는 “비판산[비슬산]의 지맥이 남쪽으로 가서 마치협(馬峙峽)을 지난 뒤 굽이쳐 갑을령(甲乙嶺)이 됐다가는 동쪽으로 굽는다.”라고 기록한다. 여기서 마치협마령재를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자연 환경]

마령치는 불똥갓산[611.6m]과 남쪽의 수봉산[592.6m] 사이에 있는 고도 400m의 고개이다. 소나무 군락이 압도하고 있으며, 봄이면 진달래, 철쭉 등으로 아름다운 곳이다.

주변에 미티재와 방골재, 퉁점이재, 배고개 등이 위치하며, 서쪽은 창녕군 대합면·성산면과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면·구지면·현풍면 등 달성 남부권이 분포하고, 동쪽으로는 풍각을 시작으로 청도의 넓은 땅이 위치한다.

[현황]

송서리에서 청도천의 지류인 풍각천을 거슬러 올라 봉기리를 지나 금곡리 입구에 이르면 마령치를 넘게 된다. 청도와 창녕을 잇는 다섯 개의 고개가 있었지만 마령치는 그 중 가장 많은 통행량을 자랑하였다고 한다.

마령치의 동쪽에 위치한 청도의 풍각면은 일찍이 고추와 땅콩이 유명하고, 송서리는 큰 규모의 우시장으로 알려져 있었다. 풍각 시장에서 구입한 소와 작물들은 금곡리를 지나 마령치를 넘었다고 한다. 이를 반영하듯 금곡리에는 과거 주막이 성행했다고 전해지며, 주막을 이용한 소장수들은 여러 개 박아둔 말뚝에 소를 매어 놓고는 주막에서 숙식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일제 강점기 이전까지 오가는 사람들로 번잡했던 마령치가 인적이 드문 곳으로 바뀐 것은 아래 비티재를 따라서 신작로가 생기하면서부터이다. 비티재청도군 풍각면과 창녕군 성산리를 연결하는 국도 20호선이 지나는 고개이다. 이 길을 따라 일제 강점기 때 자동차가 오갈 수 있는 신작로가 생기고, 버스가 다니기 시작하면서 마령치에는 인적이 드물게 되고 비티재의 통행량이 높아졌다.

6·25 전쟁 기간에 남북 방향의 낙동강 물길을 지키던 미군 방어선이 무너지면서 1950년 9월 창녕과 달성 쪽의 수많은 피란민들이 마령치를 넘어서 청도 풍각천청도천 등에 움막을 치고 전쟁 기간 동안 버텼다. 당시 패배했던 미군 부대가 자동차로 비티재를 넘어 온 후 마령치 초입과 금곡리 입구 마을 숲에 진을 치고 전선을 지켰다고 전해진다. 당시를 기억하던 마을 주민들은 줄줄이 비티재를 넘어 오던 미군의 자동차 행렬과 마령치를 넘어 오는 피난민들의 행렬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2013년 현재 마령치는 더 이상 행인들이 오가는 도로로 남아 있지 않으며, 산을 찾는 등산객들이 이용하는 등산로 역할을 한다. 과거 마령치가 담당했던 역할을 비치재가 대신하고 있으며, 통행량의 증가로 인하여 비치재 또한 도로 확장을 위한 공사가 시행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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