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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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돈을 맺고 마을을 이룬 이웃사촌 작동에는 오래전부터 여흥민씨, 청주한씨, 해주정씨가 세거해 왔다. 비록 지금 구 작동에서도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아졌지만 이들은 작동의 토박이로서 마을 운영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작동의 여흥민씨들은 경숙옹주와 여천위 민자방의 혼인으로 여흥민씨 여천위파로 인식되기도 하는데 여흥민씨가 작동에 정착하게 된 내력에 대해서는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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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이라는 지명은 1914년 일제에 의해 지어졌기 때문에 부천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유일하게 부천임씨가 있을 뿐이다. 다만 현재 부천과 가까운 곳인 부평엔 왕건을 도와 고려를 세우는 데 일등공신이 된 이희목의 부평이씨가 있고, 희귀성인 부평 사씨(舍氏)가 있다. 조선시대까지 부천이 부평으로 불렸기 때문에 부천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에 부평이씨와 부평 사씨(舍氏)를 포함시킬 수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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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한씨의 집성촌 양지마을에서는 원미산으로 알려진 ‘멀미’의 제일봉우리인 장대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장대봉에서 아침 해가 제일 먼저 불끈 솟아올라 마을 이름이 양지마을이 되었다. 양지마을은 청주한씨들이 주로 사는 마을이고 가운데 당아래는 대흥기계나 대아정밀 등이 밀집해 있는 공단에 위치해 있었다. 너머 당아래는 부천종합운동장 근처로 흔히 고비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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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란을 시조로 하고 한언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부천시의 세거 성씨. 청주한씨의 시조 한란(韓蘭)은 기자조선을 세운 기자를 조상으로 하는 우량(友諒)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다. 「청주한씨대동보」에 의하면, 우량은 마한이 망한 후 신라에서 벼슬을 하여 한씨를 하사받았다고 한다. 우량의 32세손 한란은 928년(태조 11)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甄萱)을 정벌할 때 공을 세운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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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계수동에 일대에 있는 조선시대의 청주한씨 문중 묘역. 계수동 일대의 청주한씨 묘역은 한명회의 동생인 한명진이 중시조가 되는 양도공파(襄悼公派)의 선영이다. 청주한씨 묘역은 크게 네 개 구역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시기별로 본다면 먼저 묘역의 가장 중심부인 한언의 묘를 중심으로 한언 신도비, 한홍윤 묘, 한용 묘가 있다. 한언 묘 동쪽 능선에는 총 7기의 묘역과 8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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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부천 지역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희직(希直). 한명진(韓明溍)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한언(韓堰)이며, 외할아버지는 민시생(閔始生)이다. 아버지는 한홍연(韓弘演)이며 장인은 권식(權軾), 아들은 강원도 도사와 좌집의를 지낸 한수덕(韓守德), 호조정랑과 금구현감을 지낸 한수성(韓守性)이다. 한구는 강원도 도사와 의주목사를 역임하였으며, 승정원 부승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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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공신. 본관은 청주(淸州). 시호는 양도(襄悼). 아버지는 감찰 한기(韓起)이고, 어머니는 세자좌문학 이적의 딸이다. 형은 한명회(韓明澮)이다. 청주한씨는 한명진의 아들인 한언(韓堰) 때부터 부천 지역에 정착하였다. 한명진은 1453년(단종 1) 진사시에 합격하고, 1453년 수양대군(首陽大君)을 도와 계유정난에 공을 세워 추충위사정난공신 3등에 녹훈되고 지의금부사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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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부천 지역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주. 아버지는 장수현감을 지낸 한탁(韓濯)이다. 한명회의 동생 한명진의 후손이다. 고부군수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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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부천 지역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한명진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형조정랑과 금천군수를 지낸 한숙(韓塾)이다. 한성흠은 1705년(숙종 31) 무낭청, 1706년(숙종 32) 도총부관을 거쳐 1717년(숙종 43) 태안현감에 부임하였다. 또한 1724년(경종 4) 전라우수사, 1728년(영조 4) 회령부사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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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부천 지역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한명회(韓明澮)의 동생이자 부천의 청주한씨 입향조(入鄕祖) 한명진(韓明溍)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조참판에 추증된 한진(韓鎭)이고, 부인은 유조의(柳祖誼)의 딸이다. 형제로는 내금위를 지낸 동생 한수우(韓守佑)가 있고, 아들은 호조판서를 지낸 한준(韓準)이다. 한수경은 1522년(중종 17)에 부천의 옛 지역인 부평도호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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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부천 지역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수이(受而), 호는 송월당(松月堂). 부천의 청주한씨 입향조(入鄕祖) 한명진(韓明溍)의 6세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판서를 지낸 한여수(韓汝溲)이고, 아버지는 한오규(韓五奎)이다. 한숙(韓塾)은 허목(許穆)에게서 학문을 배웠고, 1673년(현종 14) 진사시에 급제하여 진사가 되었다. 1680년(숙종 6) 편수관에 천거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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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옥경(沃卿). 아버지는 전구서승(典廐署丞) 한명진(韓明溍)이며, 어머니는 권제(權踶)의 딸이다. 영의정을 지낸 한명회(韓明澮)의 조카이다. 음보(蔭補)로 등용되어 1469년(예종 1) 부사과로서 진사시에 장원하고, 1474년(성종 5) 식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대사성이 되었으며, 1475년 형조참의 겸 부총관이 되었다. 147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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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계수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한언의 묘. 한언(韓堰)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옥경(沃卿)이다. 아버지는 한명회(韓明澮)의 동생인 한명진(韓明溍)이고, 어머니는 권제(權踶)의 딸이다. 부인은 밀양박씨(密陽朴氏)이다. 음보(蔭補)로 입사(入仕)하여 1469년(예종 1) 부사과로서 진사시에 장원을 하였고, 1474년(성종 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대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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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부천 지역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계수동에 정착한 한명진(韓明溍)의 후손으로, 조부는 한오규(韓五奎), 부친은 한숙(韓塾)이다.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중추부사(同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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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부천 지역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할아버지는 한숙(韓塾), 아버지는 한덕흠(韓德欽)이다. 지금의 경기도 부천시 계수동에 정착한 한명진(韓明溍)의 후손이다. 홍문관 정자(弘文館正字) 등을 역임하였다. 1727년(영조 3) 분관(分館)으로 회자(回刺: 승문원에 새로 들어온 사람이 허름한 차림을 하고 밤에 선배들을 찾아다니며 동료로 인정받던 일)하지 않아 귀양 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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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청주한씨 부천 입향조. 본관은 청주(淸州). 고조할아버지는 시조인 한란의 12세손인 문열공(文烈公) 한상질(韓尙質)이다. 할아버지는 양도공(襄悼公) 한명진(韓明溍)이고, 아버지는 한언(韓堰)이다. 처는 여흥민씨(驪興閔氏)로, 승사랑 민시생(閔始生)의 딸이다. 한홍연(韓弘演)은 한언의 넷째 아들로 경기도 부천시 계수동에서 분가하여 경기도 부천시 춘의동에 정착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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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부천 지역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화윤(華允). 할아버지는 한명진(韓明溍)이고, 아버지는 대사헌을 역임한 청평군(淸平君) 한언(韓堰)이며, 어머니는 정부인 밀양박씨이다. 아들은 공조참판을 역임한 한용(韓鏞)이다. 부인은 숙부인(淑夫人) 원주변씨(原州邊氏)이다. 한홍윤은 아버지 한언이 부천시 계수동에 정착하면서 부천에 살게 되었다. 진사에 올라 어모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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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부천 지역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할아버지는 한명진(韓明溍)이며, 아버지는 한언(韓堰)이다. 한홍택은 언양현감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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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부천 지역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한황은 현재의 경기도 부천시 계수동에 정착했던 한명진(韓明溍)의 8세손으로, 선전관(宣傳官) 등을 역임했다. 증조할아버지는 승정원 좌승지에 추증된 한오규(韓五奎)이고, 할아버지는 형조정랑(刑曹正郞)과 금천군수(金川郡守)를 지낸 한숙(韓塾), 아버지는 한덕흠(韓德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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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계수동에 있는 산. 함박산은 ‘크고 밝게 빛나는 산’이라는 신성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뫼가 바로 함박산의 어원으로 ‘한’은 ‘크다’라는 뜻이다. ‘’은 ‘밝은, 빛나는’의 뜻으로 삼한시대 이전 태양신을 지칭할 때 주로 쓰이던 말이다. 뫼는 산을 지칭하는 말이므로 족장들이 살고 있던 신성한 마을의 뒷산을 가리켜 함박산이라고 명명했다. 한자로 함박산(咸朴山)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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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작동에 있는 골짜기. 여흥민씨가 조상의 산소 앞에 세워 놓은 솟대가 있는 골짜기란 의미에서 붙여졌다고 한다. 또한 불을 질러 땅의 경계를 삼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까치울[작동]은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작미골·절골·화죽골·탑골·지골·까치울 등의 골짜기가 많이 분포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시기에도 변함이 없다가 중동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삼태기산과 시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