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시장에서 받은 야채를 서울 중앙시장 다리에서 팔다가 순경에게 붙들려서 많이도 잡혀갔지.” 경제 능력이 없었던 남편 대신 일찌감치 생활전선에 뛰어든 박금희 할머니(77세). 현재 부천역전 앞에서 거주하신 지 50년이 넘었다. 자유시장 안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인이라고 한다. 박정희 정권 때, 새마을 지도자로 임명을 받아서 자유시장 살림을 맡아 보기도 했다....
“옛날에는 허가 없이 쌀장사 못했어요. 어쨌든 배는 안 굶으니까 부자였지요.” 자유시장에서 곡물, 고추 장사를 하기 위해 50년 동안 조치원, 신탄진, 공주, 천안장터를 누비고 다녔다는 김홍갑 할아버지(77세)와 이춘자 할머니(70세) 부부. 옛날에는 시골에서 곡물을 직접 운송했다고 한다. 깊은구지에 워낙 유명한 소사 복숭아밭이 천지라서 잠깐 과일 장사도 하셨다고. “깊...
“일대 지역이 대부분 야채 깡시장과 하꼬방(판자촌)으로 유명했는데 소사역 지나는 길 양옆으로는 광주리 장사꾼들이 즐비했어요.” 부천 자유시장은 역세권에 포함돼 입지 조건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셈이다. 하지만 이 가운데 점포 소유주가 직접 장사하는 가게는 20여 개에 불과하며 194개가 임차 형태의 가게다. 현재 상인과 종업원을 합쳐 600여 명이 자유시장에서 생업활동을...
“인천 연안부두에서 생선을 떼다가 새벽 두 시에 자전거를 타고 영등포 시장에 가서 팔았어요.” 부천 자유시장에서 약 17년 동안 이장을 역임했다는 이춘중 할아버지(76세). 6·25 전쟁 이후부터 시장과 인연을 맺어 온 할아버지는 초기시장부터 현재 자유시장에 이르기까지 시장의 형성 과정을 기억하는 몇 안 되는 토박이 상인이다. “6·25 때 내가 열아홉 살이었는데 그 때...
“시장에서 건어물 장사함시로 자전거, 기차, 삼발이 차 안타본 것이 없죠.” 1965년부터 자유시장에서 건어물 장사를 시작하셨다는 배석홍 할아버지(73세). 1957년도에 군 제대하고 부천에 정착하신 할아버지는 자유시장의 전경을 줄줄 읊으셨다. “자유시장을 가로지르는 개울이 하나 있었어요. 자유시장 뒤편으로는 과수원이 있었는데 대부분은 포도밭과 복숭아밭이었어요. 그 위로 올라가면...
“부천 자유시장 건너편이 깡시장이 있던 곳인데 그곳에서 과일이 경매를 통해 도매로 팔려나갔어.” 부천의 동쪽 끝, 서울과의 경계를 이루는 신월산 서쪽 기슭에 깃든 동네가 까치울이라고 불리는 작동이다. 한적한 산골이었던 이곳에도 큰 길이 나고 주택단지들이 들어서서 더 이상 한촌이 아니지만 그래도 숲이 우거진 산에 가깝고 밭이 많이 남아 있어 전원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