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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찾아 삼만 리~ 뚜벅이 지게꾼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6B030101
지역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작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조택희

부천 자유시장 건너편이 깡시장이 있던 곳인데 그곳에서 과일이 경매를 통해 도매로 팔려나갔어.”

부천의 동쪽 끝, 서울과의 경계를 이루는 신월산 서쪽 기슭에 깃든 동네가 까치울이라고 불리는 작동이다. 한적한 산골이었던 이곳에도 큰 길이 나고 주택단지들이 들어서서 더 이상 한촌이 아니지만 그래도 숲이 우거진 산에 가깝고 밭이 많이 남아 있어 전원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예전부터 작동 주민들은 농토를 갈아서 곡식을 심고 과실을 거두는 등 땅에 붙어살았다. 주위에 산이 많아서 비탈길마다 과수 농사를 지었다. 그 중 복숭아와 수박이 대표 작물이었는데 길도 나지 않은 깊은 산 중에 살다보니 수확을 하더라도 제 값을 받고 파는 일이 걱정이었다. 복숭아는 6~8월 한여름 땡볕에 따야 한다. 수확 시기도 짧다. 백도는 최적기 하루 이틀을 놓치면 끝이 아니던가.

“이 지역의 과일은 맛이 굉장히 뛰어나서 인기가 좋았어. 팔다가 없으면 다른 지역 과일을 공수해 와서 여기 물건이라고 속여 팔기도 했어. 물건은 들어오자마자 막바로 팔려나갔기 때문에 금세 동이 났지.”(민경남, 부천교육박물관장, 1941년생)

작동 토박이인 민경남 씨는 지게를 짊어지고 시장으로 행상을 떠나야 하는 농부들이 그야말로 땡볕에 죽을 각오로 길을 나서야 했다고 회상했다. 지금이야 농사만 지으면 차가 와서 실어 오고가고 또 직접 가게를 운영하기도 하지만, 수십 년 전에는 하나부터 열까지 발품을 팔아야 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교통수단이 발달되지 못하다보니 수확한 농작물들을 직접 수작업을 통해 판매를 하러 다니는 고생을 되풀이해야 했던 것이다. 특히 과일은 행상을 꾸리는 그 무게만도 만만치 않았기에 시장에 들고 나가는 일만 해도 엄청난 작업이었다.

부천 자유시장 건너편이 깡시장이 있던 곳인데 그곳에서 과일이 경매를 통해 도매로 팔려나갔어. 일단 밭에서 수확된 과일, 채소는 집하장이라고 할 수 있는 깡으로 모였거든. 그러고 나서 다시 전문 경매사에 의해 도매로 넘겨졌지.”(민경남, 부천교육박물관장, 1941년생)

이처럼 도매시장이 따로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작동에서 농사지어 수확한 채소를 일일이 등짐과 광주리를 이고 지고 날라야 했던 것이다.

“비가 오면 과실들이 나무에서 떨어져서 제 값을 다 못 받으니까 그냥 바구니 하나에 가득 담아서 약간의 돈만 받고서 팔고 했지.”(민경남, 부천교육박물관장, 1941년생)

작동 토박이 민경재 할아버지도 직접 행상을 하시며 겪었던 어려움들을 회상하셨다.

깡시장이 파하면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팔기 시작했는데 그런 집들은 주로 부자 집들이 많다고. 그런데 그런 집들은 시장 물건을 잘 사지 않았어. 동네 시끄럽다고 면박을 주기만 했었지.”(민경재, 작동 토박이, 1931년생)

복숭아를 구매하기 위해 모인 전국의 장사치들 중에도 자가나 버스, 철도를 이용하여 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깡시장까지 하룻길을 꼬박 걸어 나와야 하는 사람들 수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 과수원을 자기 재산으로 가진 집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고. 대부분은 농사를 지어서 시장에 내다팔거나 소를 키워 입에 풀칠하고 자식을 공부시키고 했지. 야채나 과일 같은 경우 그때그때 수확하여 내다팔았는데 지금이야 도로가 나서 시장으로 가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1960년대만 해도 길이 없어 산을 넘어 한참을 가야 시장에 도착할 수 있었어.”(민경재, 작동 토박이, 1931년생)

십 오륙 세의 어린 나이부터 지게를 짊어지고 시장을 오갔다는 민경재 할아버지. 내다 팔 물건을 잔뜩 실어서 험한 길을 가다보면 너무 힘들어서 쉬고 가다를 반복했다는데 목적지까지는 수 시간이 지나야 도착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물건을 모두 판매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민경재, 작동 토박이, 1931년생)

복숭아를 팔기 위해 하루 종일 시장과 거리에서 입씨름을 한 할아버지는 날이 어두워져서야 지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복숭아가 많이 팔린 날은 발길이 날아갈 듯 가벼웠지만 그렇지 않은 날에는 배고픔만 더했다고 한다. 시장을 오가며 굶주렸던 속을 달래기 위해 하나씩 덥석 베어 물던 복숭아 그 향기가 아직도 눈물겹단다. 작동 마을 사람들에게 복숭아는 가난하고 배고프던 시절 배를 채워주고 생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해 주는 삶의 동반자였다.

[정보제공]

  • •  민경남(부천교육박물관장, 1941년생)
  • •  민경재(작동 토박이, 1931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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