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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부천문화대전 > 부천의 마을 이야기 > 심곡동(깊은구지) > 부천 신시장의 개척자들 > 부천 실크로드의 주역, 자유시장 상인들

  • 새벽 두 시의 달음박질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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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연안부두에서 생선을 떼다가 새벽 두 시에 자전거를 타고 영등포 시장에 가서 팔았어요.” 부천 자유시장에서 약 17년 동안 이장을 역임했다는 이춘중 할아버지(76세). 6·25 전쟁 이후부터 시장과 인연을 맺어 온 할아버지는 초기시장부터 현재 자유시장에 이르기까지 시장의 형성 과정을 기억하는 몇 안 되는 토박이 상인이다. “6·25 때 내가 열아홉 살이었는데 그 때가 부천군...

  • 땡땡이 골목의 터주, 쌀집아저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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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에는 허가 없이 쌀장사 못했어요. 어쨌든 배는 안 굶으니까 부자였지요.” 자유시장에서 곡물, 고추 장사를 하기 위해 50년 동안 조치원, 신탄진, 공주, 천안장터를 누비고 다녔다는 김홍갑 할아버지(77세)와 이춘자 할머니(70세) 부부. 옛날에는 시골에서 곡물을 직접 운송했다고 한다. 깊은구지에 워낙 유명한 소사 복숭아밭이 천지라서 잠깐 과일 장사도 하셨다고. “깊은구지 전체...

  • 세 발 달린 황소를 끄는 사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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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에서 건어물 장사함시로 자전거, 기차, 삼발이 차 안타본 것이 없죠.” 1965년부터 자유시장에서 건어물 장사를 시작하셨다는 배석홍 할아버지(73세). 1957년도에 군 제대하고 부천에 정착하신 할아버지는 자유시장의 전경을 줄줄 읊으셨다. “자유시장을 가로지르는 개울이 하나 있었어요. 자유시장 뒤편으로는 과수원이 있었는데 대부분은 포도밭과 복숭아밭이었어요. 그 위로 올라가면...

  • 자유시장 상인들의 든든한 조력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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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의 자유시장은 오후 네 시만 되면 사방에서 밀려드는 인파 때문에 몸살을 앓았어요.” 부천자유시장상인회의 23대 대표를 역임하고 있는 조길원 이사장. 2005년 인정재래시장 추진위원이 발족된 후 조합이 생긴 것은 불과 2년에 지나지 않지만 시장의 역사를 만들기 위해 전직 회장들을 찾아서 많은 자료를 구축해 놓고 있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지금껏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

  • 자유시장의 신화, 경인약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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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병원에서 치료하지 못한 환자들도 많이 찾아와서 치료했어요. 약방 노하우가 있었거든요.” “저희 시아버님(고 노병일 씨, 1915년생)께서 한 삼십년 일하시다가 제가 넘겨받았죠.”(김송자, 자유시장 경인약국, 61세) 일제시기부터 자유시장 골목의 터줏대감이었던 경인약국, 지금은 약국이지만 그때만 해도 약방으로 불렸다. 그리고 1972년, 약사였던 며느리 김송자[61세] 씨가...

  • 노점시장을 주름잡은 여장부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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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깡시장에서 받은 야채를 서울 중앙시장 다리에서 팔다가 순경에게 붙들려서 많이도 잡혀갔지.” 경제 능력이 없었던 남편 대신 일찌감치 생활전선에 뛰어든 박금희 할머니(77세). 현재 부천역전 앞에서 거주하신 지 50년이 넘었다. 자유시장 안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인이라고 한다. 박정희 정권 때, 새마을 지도자로 임명을 받아서 자유시장 살림을 맡아 보기도 했다. 하지만 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