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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시장의 신화, 경인약국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6A030205
지역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심곡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정지

“당시 병원에서 치료하지 못한 환자들도 많이 찾아와서 치료했어요. 약방 노하우가 있었거든요.”

“저희 시아버님(고 노병일 씨, 1915년생)께서 한 삼십년 일하시다가 제가 넘겨받았죠.”(김송자, 자유시장 경인약국, 61세)

일제시기부터 자유시장 골목의 터줏대감이었던 경인약국, 지금은 약국이지만 그때만 해도 약방으로 불렸다. 그리고 1972년, 약사였던 며느리 김송자[61세] 씨가 물려받았다. 하지만 겉보기에는 영락없는 현대식 약국이다. 1943년 이전까지는 일본 목조식 적산가옥이었다고 하는데 화재가 한번 크게 나고 나서 현재의 건물을 세웠다고 한다.

“장사는 옛날이 훨씬 나았죠. 지금보다 시장이 활성화 되었으니까요. 머 이제는 병원에서 처방전을 내주니까 완전히 패턴도 바뀌었지만요.”(김송자, 자유시장 경인약국, 61세)

무엇보다 약을 짓는 솜씨가 귀신같아서 단골손님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시장 안에는 서너 군데 약방이 있었는데 환자들이 몰리는 약방은 이곳 하나였다. 병원에서 치료하지 못한 환자들도 찾아와서 완쾌한 적이 많았다고 한다. 특히 피부환자들이 잘 찾았다고 하는데 연고에 대한 탁월한 노하우가 있었던 듯 했다.

“일단 아버님이 약값을 비싸게 안 불렀어요. 그래서 생활이 어려운 시장사람들이 많이 찾아왔었죠.”(김송자, 자유시장 경인약국, 61세)

경인약국의 맥을 잇는 김송자 씨 가족은 숨은 약방 노하우를 2~3대에 걸쳐서 이어가고 있다. 현재는 작은 아들이 약국을 관리하고 있는데 약국경영에 강한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일제시기와 6·25전쟁을 거쳐 부천의 번영과 쇠락의 현장을 지켜본 살아있는 전설, 경인약국. 많은 세월이 흘러 자유시장 거리에는 다수의 병원과 약국이 들어섰지만 사람들이 기억하고 찾는 단 하나의 이름으로 또 하나의 전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정보제공]

  • •  김송자(자유시장 경인약국, 6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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