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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부천문화대전 > 부천향토문화백과 > 삶의 터전(자연과 지리) > 인문지리 > 지명·마을

  • 자연마을

  • 가운데당아래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춘의동에 있던 자연 마을. 가운데당아래는 당아래고개를 사이에 두고 양지말과 경계를 이루는 마을로서 당아래 3개 마을[양지말, 가운데당아래, 너머당아래] 중 가운데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가운데당아래’라고 했으며, 전주이씨와 원주원씨, 수성최씨가 촌락을 이루고 살아 왔다. 당아래를 혹 ‘당하리’라고 표기한 경우도 있다. 가운데당아래는 부천시 춘의동에 있는 마을이다. 부...

  • 겉저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춘의동에 있던 자연 마을. 겉저리에서 ‘겉’의 어원은 ‘갗’이다. 갗이 겉으로 변한 것으로, 가장자리를 뜻한다. 곧 겉저리는 중동 벌판을 내다보는 춘지봉이 있는 춘의산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음을 알려 준다. ‘저리’는 들이 있는 곳이라는 뜻의 ‘들이’가 변한 말이다. 곧 겉저리는 ‘중동 벌판을 내다보는 산 끝자락에 있는 들’이라는 뜻으로 ‘갗들이’가 ‘갗덜이’, ‘갗...

  • 구지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상동에 있던 자연 마을. 구지말은 구지리(仇之里, 九芝里), 꾸짓말, 꾸지말, ᄭᅮ지말, 구진말, 꾸진말[故老]이라고도 하였다. 여러 이칭의 기본형이라 생각되는 구지말은 ‘구지마을’의 준말이다. 국어학계에서는, ‘구진말’은 구지[串]+ㅅ+말[村] 정도의 구짓말에서 ‘말’의 ‘ㅁ’이 비음이어서 ‘짓’이 ‘진’으로 변동된 것으로 생각된다. ‘꾸진말’은 구진말에서 어두 경...

  • 깊은구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심곡본1동에 있던 자연 마을.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는 석촌면에 속하는 깊은구지를 심곡리(深谷里)로 표기하고 있다. ‘깊은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깊은구지에서 ‘깊은’은 ‘깊다’는 우리말이고, ‘구지’는 ‘곶’이 그 원형으로 ‘곶’을 ‘고지·구지·꽃’으로 발음하였다. 그러므로 깊은구지는 골짜기에서 들판 쪽으로 툭 튀어나온 곳에 있어 붙...

  • 게레울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범박동에 있던 자연 마을. 게레울은 계리월(鷄里月)이라고도 하였다. 게레울의 명칭에 대한 유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첫째, ‘계리월’이 ‘게레울’로 바뀌었다고 보는 설이다. 이는 닭이 아름다운 달을 보고 울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였다. 둘째, ‘계리월’은 ‘게레울’의 잘못된 표기로 그 어원을 ‘골의울’로 보는 설이다. ‘골의울’이 ‘고래울’로, 이것이 다시 ‘게...

  • 꽃구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약대동에 있던 자연 마을. 이 지역에 야생화가 많이 피었다고 하여 붙여졌다는 유래담이 있으며, 한자로는 ‘화곡(花谷)’으로 쓰고 있다. 화개는 전적굴에 있던 포구의 이름으로, 실제 지명에는 ‘화개’라는 명칭은 없고 화개앞벌이란 지명만 남아 있다. 지금의 삼정종합사회복지관에서 남쪽으로 이어진 부천테크노파크 단지의 아파트형 공장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 화개앞벌이다. 꽃구지...

  • 넘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중동에 있던 자연 마을. 넘말은 간람말, 간담말, 중리(中里)라고도 하였다. 중리는 장말[張村, 큰말], 넘말, 외딴말, 일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넘말은 큰 마을인 장말의 언덕 너머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넘말’ 지명은 약대에도 있는데 안동네 고개 너머에 있어 붙여졌다는 유래는 같으나, 다만 약대에서는 안동네와 넘말이 서로를 가리켜 넘말이라 부...

  • 누른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에 있던 자연 마을. 오정마루 서남쪽 아래 능성에 있던 마을이다. 누른말은 늘어지다는 의미로 오정마루에서부터 서남쪽으로 길게 뻗어 있는 지형을 지칭하는 것이다. 늘어진 지형을 가리키는 누른말이 누런 소가 누워 있는 모양으로 변형된 것이다. 한자로 ‘와우리(臥牛里)’라 표기하였다. 한편, ‘누른’ 또는 ‘누룩’은 나루를 가리키는 말로, ‘’에서 ‘노’가 되고...

  • 내촌주막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내동에 있던 주막.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는 상오정면 내촌리(內村里) 주막명(酒幕名)에 내촌주막(內村酒幕)으로 표기되어 있다. 내동은 삼정이나 약대, 도당과 같이 약대로 불리다가 약대와 삼정은 밖약대[반약대]로, 내동과 도당은 안약대라 하였다. 내동은 안쪽 마을이란 의미로 상오정면의 제일 안쪽에 있다는 의미다. 내촌주막은 대장 한다리, 약대 목숙교...

  • 먹적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심곡동에 있던 자연 마을. 먹적골에는 몇 가지 지명 유래가 전한다. 첫째, 목자리(木子里)는 ‘오얏 리(李)’ 자를 ‘나무 목(木)’ 자와 ‘아들 자(子)’ 자로 풀어서 쓴 이름으로 ‘오얏골’, 곧 자두나무를 많이 심었던 데서 유래한 것으로 여겨진다. 1919년 지도에는 목자리(牧自里)로 기록되어 있는데 지금은 먹절골로 변형되어 부르고 있다. 두 번째는 풍수지리적 지...

  • 멧마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원종동에 있는 자연 마을. 멧마루는 먼마우, 먼마루, 원종동(遠宗洞)이라고도 한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는 하오정면 원종리(遠宗里)[먼마우, 먼마루]라 되어 있다. 원종동은 마을의 지형이 산마루처럼 둥그러니 생겼고 밋밋한 산허리를 끼고 집들이 마을을 이루고 있어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다. 즉 원종동의 토박이 명칭인 ‘멧마루’의 ‘메’는 산(...

  • 벌응절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역곡동에 있는 자연 마을. 벌응절리는 벌말, 벌골[坪村], 절골, 안마을, 안동네라고도 한다. 죽산박씨 문중이 약 200여 년 전에 이곳에 정착하면서 ‘벌골’이란 마을 이름을 부르게 된 것을 일인(日人)들이 발음상 편리한 점을 따 벌응절리(伐應節里)로 동명(洞名)을 지었다는 설이 있다. 또 하나는 벌응절리는 벌말·벌골에 자리 잡은 마을이란 의미라는 의견이다. 세 번째...

  • 사래울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역곡동에 있는 마을. 역곡2동 삼신아파트 단지가 사래울이다. 남쪽으로는 부천동초등학교, 가톨릭대학교 성심교정이 자리 잡았고, 북쪽으로는 감배산이 있었는데 지금은 빌라 단지가 들어서 있다. 사래울은 ‘새를’이라고도 부르고, ‘사하리(沙下里)’, ‘사리월(士里月)’, ‘사래리(士來里)’라고도 부른다. 『지명조사철』[1959]에는 사래리(士來里)에 대해 “행정구역 벌응절리...

  • 사래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상동에 있던 자연 마을. 최현수의 『부천사연구』1[1992]에 사래이에 대해 “이 지역은 척박한 토양으로 인해 전답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진 곳이다. 이에 서촌말이나 주변 마을 지주들이 묘지기나 마름에게 보수로 사래를 한 땅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라고 하였다. 위 기록에서 ‘사래’의 사전적 의미는 이희승의 『국어대사전』[1961]에 “묘지기나 마름이 보...

  • 산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송내동에 있던 자연 마을. 산골이란 이름은 한자로 쓰면 산곡(山谷)이고 고대어로 쓰면 미골이다. 이곳을 미골이라 하지 않고 산골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이곳 마을이 조선시대에 들어서 형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송내동 398번지[경인로60번길 18] 일대에 있던 마을로 지금은 한국전력공사와 부천여자중학교가 있는 주변 지역에 해당된다. 이곳은 약 300여 년 전부터 평산신씨...

  • 산우물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중동에 있던 자연 마을. 최현수의 『부천사연구』1[1992]에는 “산우물[시민회관 옆]: 산에 우물이 있어서 붙여졌다는 설과 우물과 상관없이 장말에서 볼 때 산 너머에 있는 마을이기 때문에 붙여졌다는 설이 있고, 혹 큰 우물이란 설도 있다.”라고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 인천부 신현면(新峴面) 조에도 동리촌명으로 산정리(山井里), 즉 산우물이...

  • 새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작동에 있던 자연 마을. 새로 들어선 마을이라고 해서 새말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조선지지자료에는 언급이 되어 있지 않아 일제시대 이후에 생긴 마을이다. 베리네천을 사이에 두고 작미골에 새말과 새마을이 형성되었다. 마을 부근에 은데미산을 넘는 새말고개가 있었고, 마을 건너편에는 삼태기산이 있었다. 은데미산 동남쪽에 새로 마을이 형성된 것이다. 작동에서 여월동 쪽에 있던...

  • 샘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고강동에 있던 자연 마을. 최현수의 『부천사연구』1[1992]에는 샘말에 대하여 “샘말[금강아파트가 있는 20통 지역]: 『조선지지자료』에는 샘[우물]의 한자식 표현인 윤을 사용하여 이곳을 윤촌(潤村)이라 하였다.”라고 하였다. 글자가 비슷하여 간(澗)[산골물 간]을 윤(潤)[젖을 윤, 윤택할 윤, 물기 윤]으로 잘못 읽은 결과로 보인다. 한도훈의 『부천의 땅이름 이...

  • 샛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고강동에 있는 자연 마을. 샛골은 샛말에서 뒤골 쪽으로 철탑 못 미친 지역, 즉 샘말과 뒤골 사이에 있는 마을이라는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원래는 이곳에 마을이 없었는데 1950년 밀양변씨 변호면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남쪽으로는 대머리산이 있고, 북쪽으로는 뒤골이 자리 잡고 있다. 샛골은 부천시 고강동 263번지 일대로 가구 수는 총 3가구이다....

  • 샛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에 있던 자연 마을. 오정마루에서 서쪽으로 능성이를 이룬 곳에 새로 마을이 형성되어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혹은 새마을을 줄여서 부른 이름이라고도 한다. 샛말은 큰말과 누른말 사이에 있던 조그만 마을로 현재 오정동 275~284번지 3통과 23통 지역이다. 오정큰길이 뚫리면서 조각난 마을이 되었다. 전씨가 주축이 되어 마을이 형성되었고, 현재도 몇 가구의 주...

  • 서촌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송내1동에 있던 자연 마을. 서촌말은 서촌+마을[말]의 합성어이다. ‘서촌’은 서씨 집성촌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동리명이다. 『조선의 취락』에 의하면 과거 마을의 이름을 짓는 법 중 성씨를 넣어 짓는 명명법이 있다. 동족 부락의 경우 그 성씨 밑에 -촌, -동, -촌동, -씨동, -가동 등의 후부 요소를 붙여 불렀다. 서촌말 외에 인근 지역에 여러 예가 있는 바, 이는...

  • 섬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대장동에 있는 마을. 대장동은 조선시대 부평도호부 시절 주화곶면에 속했다가 1914년 부천군이 탄생되자 부천군 소속이 되었다. 1973년 부천군이 시로 승격될 때 김포군 오정면으로 이속되었다가 1975년 다시 부천시로 복귀하면서 부천시 오정동의 법정동이 되었다. 이 지역은 인천광역시 계양구 계산동으로 가는 길목이다. 최현수의 『부천사연구』1[1992]에는 “섬말: 7...

  • 신상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상동에 있던 마을. 상동은 과거 부평군 석천면 상리(上里)였다.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부천군 계남면 소속이 되었다가 1973년 부천시가 탄생하자 구지리[송내동]와 상리[상동]를 합해 송내·상동을 신설하였고, 1985년 상동으로 분동되었다. 최현수의 『부천사연구』1[1992]에는 신상리(新上里)에 대해 “신상리: 부평과 접해 있는 마을이 새로운 상리인 신상리...

  • 양안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송내동에 있던 자연 마을. 양안리는 경기도 부천시 송내동 377번지 일대 구지리와 심곡리 경계 지역으로 10여 가구가 살고 있던 작은 마을이다. 양안리 부근을 지나던 경인고속국도 변에 주막집이 몇 채 자리 잡고 있었다. 『부천시사』[2002]에서 양안리의 한자는 ‘볕 양(陽)’, ‘편안할 안(安)’이고 안은 하천을 의미하므로, 양안은 ‘볕이 잘 드는 하천과 접해 있는...

  • 영신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3동에 있는 자연 마을. 1950년대 말 범박동에 신앙촌이 형성될 때 이 지역에 신앙촌의 남자 신도들을 위한 숙소를 만들면서 타 지역 사람들이 모여 들어 마을이 형성되었다. 서로 믿고 의지하며 오래 살자는 뜻으로 영신(永信)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영신은 한신아파트 바로 위쪽의 소사본동 266번지 일대로, 이곳은 범박으로 가는 산길이 뚫려 있었다. 애초 시온고등...

  • 웃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작동에 있는 자연 마을. 성곡중학교를 지나 까치울공원이 조성되어 있는 까치울고개에 있는 마을로 부천시 작동 126번지 일대를 말한다. 까치울은 세 개의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는데 양지말[웃말]과 응달말, 새로생긴 마을이라는 의미의 새말[新村, 아랫말]이 그것이다. 양지말은 남향의 양지 바른 곳에 있어 붙여진 명칭이며 웃말은 까치울고개 위쪽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 육형제마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내동에 있던 자연 마을. 부천군 시절 약대동에서 오정면사무소를 가려면 첫 번째 고개인 분둣재에서 왼쪽으로 들어서면 내리인데 처음 만나는 마을이 육형제마을이었다. 구 오정구청 쪽에 있는 낮은 고개 너머에 있었다. 내촌[리]은 옛날 상오정면에 속하였다. 상오정면 중 약대, 삼정은 밖약대[반약대]라 하고 내동과 도당은 안약대라 하였다. 내동은 조선시대에 세종대왕의 둘째 아...

  • 은데미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성곡동에 있던 자연 마을. 은데미는 언담리(彦淡里), 원담이, 원당리, 원데미, 원대미, 언대미, 은댕이 등으로도 불렸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는 하오정면 원종리에 속한 자연 마을 언담리로 표기해 놓고 있다. 언담리의 언(堰)은 제방이나 방죽, 저수지 등 물을 가두어 두는 시설을 뜻하고 담(淡)은 음차하여 담장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물을 저장하는...

  • 은행단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고강동에 있는 주택단지. 은행단지(銀杏團地)는 호암산 아래 식골[息谷]에 있다. 식골은 안산골이라고 한다. 1960년대 말에 서울 사람이 이곳에 관상수와 많은 은행나무들이 심었는데 거기에서 ‘은행단지(銀杏團地)’라는 이름이 생겼다. 은행단지는 1960년대 말에 서울 사람이 이곳에 관상수와 많은 은행나무들을 심으면서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는 가로수로 은행나무를 많...

  • 응달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작동에 있는 자연 마을. 까치울에서 능안으로 넘어가는 지역, 즉 능안으로 들어가는 곳이다. 동남쪽의 시루뫼[甑山]에 가려서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지는 곳이어서 응달말로 불렸다. 응달말 동남쪽에 있던 시루뫼가 지금은 허물어져 없어져서 ‘응달말’이라는 이름의 유래 속에만 남게 되었다. 시루뫼 자리에는 전원주택 단지인 전원마을이 들어서 있다. 서북쪽 역곡동에서 고강동 방향...

  • 외딴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중동에 있던 자연 마을. 외따로 떨어진 마을이라고 하여 외딴말로 불렸다. 장말이 동남쪽 방향에 길게 언덕위에 자리를 잡고 있었고, 동북쪽에는 약대가 있었다. 겉저리의 고비골에서 흘러 내려온 냇물이 마을 남쪽을 지나갔다. 부평수리조합이 생긴 뒤로는 동부간선수로 지선이 일곱집매 동쪽에 있었다. 마을에 큰물이 차면 주민들은 넘말이나 장말로 피신을 해야 했다. 그만큼 물과...

  • 장갯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고강동에 있던 자연 마을. 장개의 어원은 잔개로 ‘잔’은 작다는 뜻이고 ‘개’는 포구를 뜻한다. 그러므로 장갯말은 작은 포구 마을이라는 의미이다. 근처에 장끼, 즉 꿩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도 전한다. 그러나 확실한 지명 유래는 알 수 없다. 장갯말은 부천시 고강동 일대에 형성된 자연 마을로 포구와 연관되어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주변에 포구가 형성되어...

  • 장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중동에 있던 자연 마을. 장말은 장촌(張村), 간데미, 중말, 중리라고도 한다. 장말은 현 장말어린이공원 일대이다. 장씨 마을의 줄임말로 덕수장씨(德水張氏)가 여기에 집성촌을 이루고 살아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풀이이다. 덕수장씨의 시조 장순룡의 16세손인 장몽기[혹은 13세손 장여진]가 경기도 평택에서 이곳으로 옮겨 와 조선 중기 이후 400여 년 동안...

  • 장승백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삼정동에 있던 자연 마을.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며 마을에 들어오려는 악귀를 쫓기 위해 세워진 장승이 경인고속국도 너머[구 도로변]에 있었다. 장승은 커다란 고목을 숭배했던 원시신앙에서 비롯된 것으로 옛날 사람들은 장승에게 길을 떠난 가족의 안녕을 빌기도 하고 자식을 점지해 달라고 기원하기도 하였다. 또한 장승은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큰 거리에 세워 고을에서 고...

  • 전적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약대동에 있던 자연 마을. 전적굴의 ‘전적(前積)’ 한자는 앞 전(前)·쌓을 적(積) 자이므로 곧 앞둑마을이라는 의미이다. 마을 앞에 둑이나 토성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고 하고 있으나 정확한 지명 유래는 알 수 없다. 다만 적곡은 바닥이 메워진 골짜기 또는 들판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음을 볼 때 이것이 아닌가 추론해 보는 견해도 있다. 마을 앞에 제방이 있었거나...

  • 점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여월동에 있던 자연 마을.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는 하오정면(下吾丁面) 여월리에 있는 점촌(店村)[졈말]으로, 1918년 지도에도 ‘점촌’으로 쓰고 일본어로 ‘졈말’이라 표기하고 있다. 조선 후기에는 농업을 비롯한 모든 산업 분야에서 발전이 이루어졌다. 수공업 분야도 민영 수공업이 발달함에 따라 옹기점·유기점·철기점 등 수공업촌인 점촌이 전국에서...

  • 정주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약대동에 있던 마을. 『부천시사』[2002]에는 정주는 우리말로 ‘살말’이라고 표기할 수 있다고 하였다. ‘살’은 물가, ‘말’은 마을을 뜻하고 ‘바닷가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정주는 물가에서 조금 위쪽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하였다. 일반적으로 작은 마을은 골·굴·실·말 등으로 표기하고 한자로는 ‘골 곡(谷)’ 자를 써서 표기하는데, ‘고을 주(州)’로 표기한 것...

  • 조마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부천동에 있는 마을. 조마루는 조종리라고 불리던 마을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는 옥산면(玉山面)에 속하는 마을로 ‘조종리(朝宗里)’라 표기하였다. 『호구총수(戶口總數)』에서는 조종리(曺宗里)로 불리다가 ‘조종리(朝宗里)’로 한자가 바뀌었다. 성 조(曺) 자가 마을·관리·관아의 뜻을 가진 조(朝)로 바뀐 것으로, 이에 따라 조마루에 가장 먼저 정착한...

  • 진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심곡본동에 있던 자연 마을. 군대가 주둔한 곳이기에 진대(陣垈)·진촌(陣村)·진말[鎭村] 등의 이름이 붙었다는 유래가 있고, 하나는 비가 조금만 와도 배수가 잘 되지 않아 땅이 질어서 붙여졌다는 의견이 있으나 확인하기는 어렵다. 진말은 긴말이 우리말의 구개음화 현상에 따라 변형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지형이 길게 늘어져 있는 마을을 의미한다. 지도를 살펴보면 북쪽의...

  • 아파트마을

  • 그린마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중동에 속하는 신도시 아파트 마을. 1993년 중동 신시가지 개발에 따른 인구 증가로 인해 중동과 상동이 새롭게 개발되면서 형성된 신도시 아파트 마을 가운데 하나이다. 1993년부터 입주하기 시작한 삼성아파트, 우성아파트, 한신아파트, 금호아파트, 한양아파트 단지로 구성되어 있다. 중2동 신흥고가사거리에 위치하며, 마을 주변에 소향공원이 있어 주민들의 휴식 및 산책로...

  • 금강마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중동에 속하는 신도시 아파트 마을. 1993년 중동 신시가지 개발에 따른 인구 증가로 인해 중동과 상동이 새롭게 개발되면서 형성된 신도시 아파트 마을 가운데 하나이다. 1995년 5월부터 주공아파트 4단지가 입주하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중4동 길주사거리와 중동대로사거리 사이에 위치한 마을로 주변에 어린이공원과 계남공원이 있으며, 중동대로 방면으로 마을 외곽에는 시민의...

  • 꿈동산마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상동에 있는 신도시 아파트 마을. 1993년 중동 신시가지 개발에 따른 인구 증가로 인해 중동과 상동이 새롭게 개발되면서 형성된 신도시 마을 중 하나이다. 1994년부터 입주하기 시작한 신안아파트 단지로 이루어져 있다. 마을 주변으로 솔안공원이 있어 주민들의 휴식 및 산책로로 이용되며, 마을 외곽으로 시민의 강이 흐르고 있고, 마을 곳곳에 동백꽃과 은행나무, 단풍나무...

  • 꿈마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중동에 있는 신도시 아파트 마을. 1993년 중동 신시가지 개발에 따른 인구 증가로 인해 중동과 상동이 새롭게 개발되면서 형성된 신도시 아파트 마을 가운데 하나이다. 1994년부터 입주하기 시작한 한진아파트, 삼환아파트, 동아아파트, 서안아파트, 건영아파트와 위브더스테이트 주상 복합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2동 계남고가사거리와 먹거리삼거리 근처에 위치하며, 마을 외곽으...

  • 다정한마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상동에 있는 신도시 아파트 마을. 1993년 중동 신시가지 개발에 따른 인구 증가로 인해 중동과 상동이 신도시가 되면서 새로이 형성한 신도시 마을 중 하나이다. 2002년 9월부터 입주하기 시작한 다정한마을은 4개의 아파트 단지로 구성되어 있다. 마을 주변으로 단지 내에 시냇가와 연못 있으며, 징검다리와 돌다리로 이어져 있고, 마을 외곽은 공원으로 이루어져 있는 등...

  • 덕유마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중동에 있는 신도시 아파트 마을. 1993년 중동 신시가지 개발에 따른 인구 증가로 인해 중동과 상동이 새롭게 개발되면서 형성된 신도시 아파트 마을 가운데 하나이다. 1996년 주공아파트 2단지가 입주하기 시작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 중3동 길주길에 위치하며, 마을 외곽으로 시민의 강이 흐르고 있어 주민들의 휴식 및 산책로로 이용되며, 마을 곳곳에 나무와 꽃이 심어져...

  • 라일락마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상동에 있는 신도시 아파트 마을. 1993년 중동 신시가지 개발에 따른 인구 증가로 인해 중동과 상동이 새롭게 개발되면서 형성된 신도시 가운데 하나이다. 2002년 5월부터 입주하기 시작한 라일락마을은 6개의 아파트 단지로 구성되어 있다.. 서울지하철 7호선 연장 구간[온수~부평 구간] 공사가 상동 무지개사거리를 중심으로 라일락마을과 인접해서 시행 중이다. 마을 주변...

  • 목련마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상동에 있는 신도시 아파트 마을. 1993년 중동 신시가지 개발에 따른 인구 증가로 인해 중동과 상동이 새롭게 개발되면서 형성된 신도시 마을 가운데 하나이다. 2003년 8월부터 입주하기 시작한 LG상록아파트로 형성되었다. 마을 주변으로 시민의 강이 흐르며, 마을 곳곳에 목련 및 나무 등이 심어져 있는 등 친환경적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동의 중서부에 있는 마을로...

  • 무지개마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중동에 속하는 신도시 아파트 마을. 1993년 중동 신시가지 개발에 따른 인구 증가로 인해 중동과 상동이 새롭게 개발되면서 형성된 신도시 아파트 마을 가운데 하나이다. 1993년부터 입주하기 시작한 동신아파트와 럭키아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중1동 부명사거리와 중앙공원 사이에 위치하며, 주변에 넓은 중앙공원이 있어 주민들의 휴식 및 산책로로 이용된다. 마을 외곽으로 시...

  • 미리내마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중동에 속하는 신도시 아파트 마을. 1993년 중동 신시가지 개발에 따른 인구 증가로 인해 중동과 상동이 새롭게 개발되면서 형성된 신도시 아파트 마을 가운데 하나이다. 1993년과 1995년부터 입주하기 시작한 삼성아파트, 동성아파트, 한신아파트, 금호아파트, 한양아파트, 롯데미리내아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중1동 중앙공원사거리에 위치하며, 마을 주변에는 넓은 중앙공원...

  • 반달마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상동에 있는 신도시 아파트 마을. 1993년 중동 신시가지 개발에 따른 인구 증가로 인해 중동과 상동이 신도시가 되면서 새로이 형성된 신도시 아파트 마을 중 하나이다. 반달마을은 1993년부터 입주하기 시작한 선경아파트, 삼익아파트, 동아아파트, 건영아파트, 신라아파트, 극동아파트 단지로 구성되어 있다. 송내역 인근에 있으며 한아름사거리에서부터 서촌사거리까지 걸쳐 있...

  • 벚꽃마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상동에 있는 신도시 아파트 마을. 1993년 중동 신시가지 개발에 따른 인구 증가로 인해 중동과 상동이 신도시가 되면서 새로이 형성한 신도시 아파트 마을 가운데 하나이다. 2002년 4월 28일부터 입주가 시작된 세종그랑시아아파트 단지로 이루어진 마을이다. 마을 주변은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와 인천시 사이에 위치한 완충 녹지 지역으로서 자연 녹지 지역으로 지정되어 토...

  • 복사골마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중동에 속하는 신도시 아파트 마을. 복사골은 복숭아꽃이 많이 피는 마을이라는 옛 지명으로 복숭아꽃을 의미하는 복사와 마을을 의미하는 골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합성어이다. 1993년 중동 신시가지 개발에 따른 인구 증가로 인해 중동과 상동이 새롭게 개발되면서 형성된 신도시 아파트 마을 가운데 하나이다. 1993년부터 입주하기 시작한 건영아파트와 시영아파트 단지로 구성되어...

  • 백송마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상동에 있는 신도시 아파트 마을. 1993년 중동 신시가지 개발에 따른 인구 증가로 인해 중동과 상동이 새롭게 개발되면서 형성된 신도시 아파트 마을 가운데 하나이다. 2002년 3월부터 입주하기 시작한 LG상록아파트, LG SK아파트, 풍림아이원아파트, 동남아파트 단지로 구성된 마을이다.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 부천 지역 구간의 하부 공간 2만여 평에 시민들을 위한...

  • 사랑마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상동에 있는 신도시 아파트 마을. 1993년 중동 신시가지 개발에 따른 인구 증가로 인해 중동과 상동이 새롭게 개발되면서 형성된 신도시 아파트 마을 가운데 하나이다. 1993년부터 입주하기 시작한 삼익아파트, 선경아파트, 벽산아파트, 청구아파트 단지로 구성된 마을이다. 교육마을로도 일컫는다. 마을 외곽으로 시민의 강이 흐르고 있어 주민들의 휴식 및 산책로로 이용되며,...

  • 연화마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중동에 속하는 신도시 아파트 마을. 1993년 중동 신시가지 개발에 따른 인구 증가로 인해 중동과 상동이 새롭게 개발되면서 형성된 신도시 아파트 마을 가운데 하나이다. 1994년과 1995년부터 입주하기 시작한 마을로 쌍용아파트, 대원아파트, 건영아파트와 위브더스테이트, 리첸시아의 주상 복합 단지로 구성되어 있다. 중2동 신흥고가사거리에 위치하며, 마을 주변에 벌막공...

  • 은하마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중동에 속하는 신도시 아파트 마을. 1993년 중동 신시가지 개발에 따른 인구 증가로 인해 중동과 상동이 새롭게 개발되면서 형성된 신도시 아파트 마을 가운데 하나이다. 1994년부터 대우·동부아파트, 효성·쌍용아파트 단지, 1995년부터 주공아파트 5단지가 입주하기 시작하여 은하마을이 형성되었다. 중4동 부천시청 인근에 위치하며, 마을 외곽으로 시민의 강이 흐르고 있...

  • 중흥마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중동에 속하는 신도시 아파트 마을. 1993년 중동 신시가지 개발에 따른 인구 증가로 인해 중동과 상동이 새롭게 개발되면서 형성된 신도시 아파트 마을 가운데 하나이다. 1993년부터 입주하기 시작한 주공아파트 6단지, 신동아아파트, 영남아파트, 극동아파트, 두산아파트로 형성된 마을이다. 중3동 중흥사거리에 위치하며, 마을 주변으로 나무와 꽃이 심어져 있어 친환경적인...

  • 진달래마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상동에 있는 신도시 아파트 마을. 1993년 중동 신시가지 개발에 따른 인구 증가로 인해 중동과 상동이 새롭게 개발되면서 형성된 신도시 아파트 마을 가운데 하나이다. 2002년 4월부터 입주하기 시작한 대우아파트, 대림아파트, 신동아파밀리에아파트, 효성써미트빌아파트, 효성센트럴타운아파트 단지로 구성되어 있다. 상3동 길주길에 위치하며, 마을 주변으로 석천중학교 옆에...

  • 포도마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중동에 있는 신도시 아파트마을. 중동 포도마을이 들어선 송내역 주변에 있던 포도밭은 상공회의소 부근 포도밭과 함께 1970년대 중반까지 포도 재배지로 유명하였다. 중동 포도마을이라는 명칭도 포도 재배지였던 데서 유래한 것이다. 1993년 중동 신시가지 개발에 따른 인구 증가로 인해 중동과 상동이 새롭게 개발되면서 형성된 신도시 아파트마을 가운데 하나이다. 1993부터...

  • 푸른마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상동에 있는 신도시 아파트 마을. 1993년 중동 신시가지 개발에 따른 인구 증가로 인해 중동과 상동이 새롭게 개발되면서 형성된 신도시 아파트 마을 가운데 하나이다. 2002년 5월부터 입주가 시작된 창보밀레시티아파트와 한라아파트 단지로 구성되어 있다. 상2동 중앙사거리 근처에 위치하며 마을 외곽으로 시민의 강이 흐르고 있고, 마을 곳곳에 많은 푸른 나무들과 꽃들이...

  • 하얀마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상동에 있는 신도시 아파트 마을. 1993년 중동 신시가지 개발에 따른 인구 증가로 인해 중동과 상동이 새롭게 개발되면서 형성된 신도시 아파트 마을 가운데 하나이다. 2002년 3월부터 입주가 시작된 현대아파트, 주공아파트, 경남아파트 단지로 구성되어 있다. 푸른마을 한라비발디아파트와 하얀마을 주공아파트 사이에 개천이 흐르며, 마을 외곽은 시민의 강으로 이루어져 주민...

  • 한라마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중동에 속하는 신도시 아파트 마을. 1993년 중동 신시가지 개발에 따른 인구 증가로 인해 중동과 상동이 새롭게 개발되면서 형성된 신도시 아파트 마을 가운데 하나이다. 1995년부터 입주하기 시작한 주공아파트 1단지로 형성된 마을이다. 중4동 중원고사거리 근처에 위치하며, 중동대로 방향으로 시민의 강이 흐르고 있어 주민들의 휴식 및 산책로로 이용되고 있으며, 마을 곳...

  • 한아름마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상동에 있는 신도시 아파트 마을. 1993년 중동 신시가지 개발에 따른 인구 증가로 인해 중동과 상동이 새롭게 개발되면서 형성된 신도시 아파트 마을 가운데 하나이다. 1994년부터 입주하기 시작한 현대아파트, 라이프아파트, 삼환아파트, 동성아파트, 동아아파트, 한국아파트, 동원아파트 단지로 구성되어 있다. 정보산업고삼거리 근처에 위치하며, 마을 내에 작은 공원이 있어...

  • 행복한마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상동에 있는 신도시 아파트 마을. 1993년 중동 신시가지 개발에 따른 인구 증가로 인해 중동과 상동이 새롭게 개발되면서 형성된 신도시 아파트 마을 가운데 하나이다. 2002년 5월부터 입주하기 시작한 금호어울림아파트, 서해쌍뜨르아파트, 한양아파트 단지로 구성되어 있다. 상2동 중앙사거리 근처에 위치하며 단지 사이마다 나무와 꽃으로 어우러져 있다. 마을 외곽은 시민의...

  • 논·밭

  • 갈막부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중동에 있던 언덕. 갈막에서 ‘갈’은 ‘갈라진’의 뜻으로 보이며, ‘막’은 ‘메’가 그 원형으로 보인다. 대리미재와 산언덕이 두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부리는 산이라는 백제어이다. 벌응절리에 있는 알묏부리와 그 뜻이 같다. 여러 갈래로 갈라진 산등성이라는 뜻의 ‘갈멧부리’가 ‘갈막부리’로 발음이 바뀐 것으로 여겨진다. 갈막부리 아래 서쪽으로는 동부간선수로 막바지로 사...

  • 덕배미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상동에 있던 논. 부천시의 옛 상동 210-1번지 일대의 논을 이르는 말로 ‘덕배미’란 땅이 기름진 논이란 뜻이다. ‘배미’는 ‘논배미’의 준말로 논의 뙈기를 세는 말이다. 근처 어느 논보다도 유난히 큰 논이었던 한배미 지역으로 예부터 지역의 농민들 사이에서는 “소래산의 맑고 경치 좋은 기운을 받아야 덕배미골에 가 농사를 지어 본다.”라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좋은 논...

  • 두멍배미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상동 일대에 있던 논. 두멍배미에서 배미는 논배미로 논을 가리키고, 두멍이란 물을 담아 두는 독을 가리킨다. 둠벙의 다른 말이다. 그러므로 논 가장자리에 둠벙이 있어 물을 항상 담아 두면서 농사를 짓는 논이라고 해서 두멍배미라 불렀다. 두멍배미 바로 동쪽으로 바퀴논이 자리하고 있다. 두멍배미는 현재 상동 410번지[송내대로73번길 31] 일대로, 무궁화상가와 나진빌딩...

  • 대리미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상동에 있던 밭. 밭의 모양이 다리미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근래에 붙여진 것으로 추측된다. 보통 다리미를 대리미라고 했다. 산언덕 모양이 동그랗게 생겼다. 대리미재는 상동 175-4번지 일대의 밭을 이르는 말로 중동~상동 간의 경계를 이루던 곳이다. 밭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조그만 언덕 같은 산이었는데, 이것을 깎아 밭으로 개간을 했다. 물문개에서 서쪽으...

  • 수렁배미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상동에 있던 논. 수렁처럼 무른 개흙으로 된 논배미여서 수렁배미라 하였다. 실제로 소가 들어가서 논을 갈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현재 수렁배미 자리에는 송내초등학교가 들어섰고, 송내주공아파트 3단지·4단지·5단지가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 제비군논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중동에 있던 논. 제비군논은 제비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 아니라 제부군논의 발음이 변하여 된 이름이다. ‘제부(堤阜)’란 둑을 일컫고, ‘군논’은 깊은 논을 말하므로 제부군논은 ‘둑을 쌓아 만든 깊은 논’을 뜻한다. 중동 78~79번지 일대에 된벌이라는 논이 있었는데 한라마을과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둔 곳으로 제비군논과 된벌 일대에서 농사를 지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원...

  • 한미재단 4H 훈련농장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63년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에 한미재단이 만든 지도자 양성 교육기관이자 실습 농장. 한미재단은 6.25전쟁을 겪고 있는 한국을 재건하기 위하여, 당시 드와이트 데이비드 아이젠하워(Dwight David Eisenhower) 대통령의 권유로 1952년 8월 백악관에서 발족한 비영리 사설 원조 기관이다. 이후 1979년까지 26년 동안 한국에 5,000만 달러를 원조하여, 한국의...

  • 둑·포구

  • 고라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삼정동에 있던 포구. 고라개의 ‘고라’는 ‘옛 고(古)’ 자, ‘소라 라(螺)’ 자로 소라의 옛말이고, ‘개’는 포구를 뜻한다. 소라가 많이 잡히던 포구임을 짐작할 수 있다. 고라개는 삼정동의 관문이자 포구로, 물이 들어오면 황석어와 참치가 많이 잡혔다. 고라개에서 배를 이용하여 대장이나 김포를 왕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부천시 삼정동 일대에는 포구가 있었고, 이 포...

  • 고리울뚝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고강본동에 있던 둑. 고리울뚝은 고리동보(古里洞洑)라고도 하였다. 고리울뚝은 고리울마을에서 시작하여 고리울 곰달래고개 상류까지 양쪽으로 쌓은 둑이다. 고리울마을은 고강동 선사유적 주거지 앞에서 고강사거리 앞까지 길게 뻗어 있던 마을이었다. 간데미 아래와 봉배산 사이에 있던 마을로, 둑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강상골 상류까지 서해의 조수가 밀려들었을 것으로 여겨지며 이를...

  • 데부둑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대장동과 오정동, 삼정동, 약대동, 중동, 상동에서 경기도 김포까지 이르렀던 인공하천. 데부둑의 정식 명칭은 동부간선수로(東部幹線水路)이다. 부천 사람들은 ‘대보, 대보둑, 데부뚝’으로, 소사읍을 중심으로는 ‘오대보’, ‘오데부’ 등으로 불렀다. 부평구에는 대보로(大洑路)라는 도로명이 있는데 이는 서부간선수로가 지나간 것에 연유한 것이다. 동부간선수로는 경기도 김포시...

  • 방오리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대장동에 있던 둑. 방오리보는 대장리에서 원종리까지의 둑 길이가 5리(五里)쯤 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대장동 새보둑 상류에서 원종동 방오리들까지의 거리가 대략 2.21㎞이다. 통상 5리(里)를 2㎞로 계산한다. 같은 들판을 두고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 하오정면 원종리(遠宗里) 조에는 영야(鈴野)[방우리들]라 기록되어 있다. 방오리보를 원종동...

  • 새기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원종동에 있던 둑. 새기보는 부천시 원종1동 200번지 일대에 있었던 마을인 새기, 혹은 수역이마을의 지명과 관련이 깊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 의하면 새기보는 1800년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조선지지자료』에는 부천시 원종동 일대의 마을인 새기, 수역이마을 인근에 조성된 보로 기록되어 있다. 새기는 좌우에 새터말과 언데미[은데미]...

  • 새보둑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대장동에 있던 보.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펴낸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는 신보(新洑)로 기록되어 있다. 새보둑은 새로 만들어진 둑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새보둑은 1900년쯤 서해의 바닷물이 밀려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만들어졌다고 한다. 새보둑이 조성되면서 섬말 사람들은 농사짓기가 훨씬 편해졌다고 한다. 새보둑으로 인해 대장동 큰...

  • 앞보둑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원종동에 있던 둑. 앞보둑은 중보둑과 함께 지금의 부천시 상오정로184번길 62[원종동 129-6], 상오정로182번길 53[원종동 129-9] 및 상오정로184번길 42[원종동 129-28] 일대에 있었던 둑이다. 앞보뚝, 원종리보라고도 한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의 하오정면 원종리 조에 원종리보(遠宗里洑)[먼마루보]라 하고 60여 년 전에 민간...

  • 중보둑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원종동에 있던 둑. 중보둑은 앞보둑과 함께 부천시 상오정로184번길 62[원종동 129-6], 상오정로182번길 53[원종동 129-9] 및 상오정로184번길 42[원종동 129-28] 일대에 있었던 둑이다. 1850년쯤에 축조된 민간 소유의 둑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원종리에서 오쇠리로 가는 방향으로 앞보둑, 중보둑, 뒷보둑 순으로 있었다. 원종리보는 앞보둑과 중...

  • 화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약대동에 있던 포구 이름. 경기도 부천시 약대동에 있던 마을인 전적굴 앞에 형성된 포구라고 전한다. 『부천사연구』[1992]에는 화개를 꽃구지[花谷]라 하며, 이 지역에 야생화가 많이 피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였다. 『부천시사』[2002]에서는 화개는 전적굴에 있던 포(浦) 이름으로, 실제 지명에는 ‘화개’라는 이름은 없고 ‘화개앞벌’이란 지명만 남아 있다면서, 서해...

  • 우물

  • 밑우물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춘의동에 있던 우물. 우물이 양지마을 쪽 춘의산 아래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양지말에서 춘지봉으로 올라가는 초입에 있는 작은 옹달샘으로, 상수도가 설치되기 전까지 마을 주민들의 생활용수와 식수로 이용되어 소중히 다루어졌다. 예전에는 유명한 약수로서 사대부집 규수들이 쌍가마를 타고 와 약수를 떠 놓고 치성을 드리곤 하였다. 하지만 양지마을에 이사를 온 한 아낙...

  • 찬우물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고강동 호암산 중턱에 선사시대부터 있었다고 전하는 우물.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는 간촌(澗村)[ㅅᅟᅢᆷ말]으로 고리동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호암산(虎巖山)[봉배산] 중턱 고강동 선사유적 주거지는 청동기시대 주거지가 발견된 곳으로써 한강 지류 지역인 부천의 선사시대 역사를 유추해 볼 수 있는 곳이다. 청동기시대 제사 유적인 적석환구유구, 취락 유...

  • 청수정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고강동에 있는 우물. 1433년(세종 15) 변종인이 강상골에 정착하면서 판 우물이다. 우물의 물맛도 고장에 따라 다른데, 특히 청수정은 물맛이 신선하고 청아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1986년 도시계획 도로구역으로 편입되어 매몰되었으나, 마을 사람들이 샘 줄기 위쪽으로 새로 조성하였다. 강장골은 예전 고강3동 29통 지역으로, 강장은 세조 때 판서를 지낸 변종인...

  • 고지명

  • 고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부천시 괴안동의 옛 이름. 고얀은 한자로 ‘괴안동(槐安洞)’으로 표기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도 옥산면에 속하는 괴안리(槐安里)로 표기되어 있는데 우리말로는 표기되어 있지 않다. 해마다 봄이면 음식을 차려 놓고 괴목(槐木)[느티나무]에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빌었기 때문에 괴안리라고 하였다는 유래도 전한다. 한편, ‘고얀’이라는 지명이 골짜기 안에 있...

  • 계양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고려 후기 경기도 부천 지역의 옛 이름. 계양도호부는 고려 후기 부천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구역이다. 940년(태조 23) 지방의 명호를 고칠 때 수주(樹州)로 개명된 후 995년(성종 14) 지방관이 처음으로 부임한 부천 지역은 정치적·군사적 중요도에 따라 안남도호부·계양도호부·길주목·부평부 등 읍호의 승강이 반복되고 명칭이 자주 변경되었다. 특히 계양도호부 시기에는 인천의 대...

  • 부평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고려시대·조선시대 부천 지역의 옛 이름. 1310년(충선왕 2)에 부평부(富平府)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하였다. 원래는 황무지였으나 농경지를 개척하여 넓은 곡창지가 되고 수확량이 많았으므로 ‘부할 부(富)’자와 ‘넓은 평(平)’자를 써서 부평이라 하였다. 원래 부평은 현재의 계산동이 중심지였으나 부평역이 생기면서 중심지가 옮겨져 부평역 주변과 시장 지역을 부평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 수주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고려 전기 경기도 부천의 행정 지명. 계양산 북쪽 수소리(樹蘇里)에 청사가 있었는데, 이곳이 밀림 속처럼 울창하다 하여 수주(樹州)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수주는 고구려 때 주부토(主夫吐), 통일신라시대 장제(長堤)에 이어 세 번째로 쓰인 부평의 행정 지명이다. 고려 초에는 대체로 고려왕조에 협조적이거나 귀부(歸附)해 온 지방 세력의 근거지를 주(州)로 삼는 경우가 많았는데, 당시...

  • 안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고려 후기 경기도 부천 지역의 이름. 고려시대의 지방제도는 940년(태조 23) 지방의 명호를 고친 이후 성종 대에 12목을 설치하였고, 현종 대에 4도호부 8목을 거쳐 5도 양계로 고착되었다.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는 현종 대에 설치되었던 4도호부 중의 하나이다. 안남산(安南山)의 지명은 안남도호부가 생기면서 유래되었다 한편에서는 안남도호부의 안남은 물가나 하천과 연결시켜 설명하...

  • 주부토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고대 부천 지역의 옛 이름. 고구려식 지명인 주부토는 문헌에서 전하는 부천 지역 최초의 지명이다. 이것은 당시 황무지에 둑을 쌓아 농경지로 만들었는데 그 둑이 연이어져 줄보둑→주부토라고 부르는 데서 비롯된 듯하다. 처음 땅이름은 우리말이었는데, 중국에서 한자가 들어온 다음 이를 한자로 표기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한자 해석식 뜻풀이는 별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다. 주부토는 삼한시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