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600220 |
---|---|
한자 | 內洞密陽朴氏家戶籍單子 |
영어공식명칭 | Household Register of Miryang Bak Lineage in Naedong |
이칭/별칭 | 「내동 밀양박씨가 호구단자」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경기도 부천시 내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희태,임학성 |
작성 시기/일시 | 1800년 7월 - 「내동 밀양박씨가 호적단자」1점 작성 |
---|---|
작성 시기/일시 | 1803년 - 「내동 밀양박씨가 호적단자」 2점 작성 |
작성 시기/일시 | 1806년 - 「내동 밀양박씨가 호적단자」 2점 작성 |
작성 시기/일시 | 1810년 - 「내동 밀양박씨가 호적단자」 2점 작성 |
소장처 | 밀양박씨 종가 - 경기도 부천시 내동 |
발견|발굴처 | 밀양박씨 종가 - 경기도 부천시 내동 |
성격 | 호적 문서 |
관련 인물 | 박상흠|박영한|박종한 |
용도 | 호구 조사 |
수급자 | 부평부 |
[정의]
경기도 부천시의 밀양박씨 가문에서 소장하고 있는 1800년부터 1810년까지의 호적단자.
[개설]
호적단자는 호구단자라고도 한다. 호구단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관에서 호구장적(戶口帳籍)을 만들 때 호주가 자기 호(戶)의 상황을 적어서 관에 제출한 문서이다. 밀양박씨 종중에서 보관하고 있던 호적단자는 총 7점으로 주소가 모두 부평도호부 상오정면(上梧亭面)으로 되어 있다. 호주의 직역은 모두 벼슬하지 않은 양반의 호칭인 유학(幼學)으로 기재되어 있다. 시기별로는 1800년(정조 24)의 것이 1점[호주 71세 박상흠(朴祥欽)], 1803년(순조 3)의 것이 2점[호주 41세 박종한(朴宗漢)[박상흠의 아들]·43세 박영한(朴英漢)[박상흠의 조카]], 1806년의 것이 2점[호주 44세 박종한·46세 박영한], 1810년의 것이 2점[호주 47세 박종한, 1점은 초본(草本)] 등이다.
[제작 발급 경위]
조선시대 호적대장을 작성하기 위해 밀양박씨 가의 호주가 작성하여 부평도호부에 제출한 호적단자로, 이 문서는 관아에서 사실 여부를 확인한 후 호주에게 돌려주었다.
[형태]
7점의 호적단자 모두 인적 사항을 행을 바꾸어 나열하여 기록하고 있으며, 크기는 차이를 보인다. 1800년 박상흠 호적단자는 가로 34㎝, 세로 37㎝이다. 1803년 박종한 호적단자는 가로 38㎝, 세로 44㎝, 박영한 호적단자는 가로 38㎝, 세로 51㎝이다. 1806년 박영한 호적단자는 가로 38㎝, 세로 47㎝, 박종한 호적단자는 가로 39㎝, 세로 48㎝이다. 1810년 박종한 호적단자는 가로 38㎝, 세로 42㎝이다.
[구성/내용]
호적단자는 호적대장을 만들 때 각 호(戶)의 인적 사항을 관에서 관리하기 위해 제출하게 하는 문서이므로, 호주와 처의 이름·나이·직역·본관 및 4대조인 부친, 조부, 증조부, 외조부의 이름과 직역, 동거 가족의 이름·나이·직역 등이 기재되어 있다.
호주 박상흠이 1800년에 작성한 호적단자를 예로 들면, 당시 박상흠은 직역이 유학, 나이가 71세였으며, 부 박호(朴壕)의 직역은 통덕랑(通德郞), 조부 박규문(朴奎文)은 통훈대부행사간원헌납겸춘추관기사관(通訓大夫行司諫院獻納兼春秋館記事官), 증조부 박선(朴渲)은 증무공랑승정원주서겸춘추관기주관(贈務功郞承政院注書兼春秋館記注官)으로 기재되어 있다. 이로 보아 박상흠의 집안은 대대로 벼슬을 한 당시로서는 전형적인 사대부 가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처는 파평윤씨 윤흔(尹昕)의 딸로 기재되어 있으며, 38세의 아들 박종한과 24세의 며느리 남양홍씨가 동거하고 있는 사실이 기재되어 있다. 문서 말미에 ‘경신칠월(庚申七月)’이라 기재되어 있어, 이 문서가 1800년 7월에 작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 후기 부천 지역 사람들의 가족사와 생활사를 살필 수 있는 자료로 그 가치가 매우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