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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600957
영어공식명칭 Sammal|Saemmal Village
이칭/별칭 윤촌(潤村),섬말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기도 부천시 고강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영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샘말 - 경기도 부천시 고강동
성격 마을

[정의]

경기도 부천시 고강동에 있었던 자연 마을.

[명칭 유래]

최현수의 『부천사연구』1[1992]에는 샘말에 대하여 “샘말[금강아파트가 있는 20통 지역]: 『조선지지자료』에는 샘[우물]의 한자식 표현인 윤을 사용하여 이곳을 윤촌(潤村)이라 하였다.”라고 하였다. 글자가 비슷하여 간(澗)[산골물 간]을 윤(潤)[젖을 윤, 윤택할 윤, 물기 윤]으로 잘못 읽은 결과로 보인다.

한도훈의 『부천의 땅이름 이야기』[2001]에는 “샘말은 샘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섬말이 샘말로 바뀐 것으로 보아야 한다. 웃말에서 보았을 때 마치 섬처럼 생겼대서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중략] 마을 한가운데는 대동우물이 있었고 샘 좌우에는 텃밭이 있었다.”라고 하였다. 양경직은 『고강동·성곡동 마을지』[2015]에서 찬우물[寒泉·冷泉]샘말[澗村]의 유래에 대하여 “차가운 샘이 있어 찬우물이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에 ‘간촌(澗村): ᄉᆡᆷ말-고리동(古里洞)’으로 기록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는 부평군 하오정면 고리동에 간촌[ᄉᆡᆷ말]으로 표기되어 있다. ‘간(澗)’ 자는 ‘산골 물’을 의미하고, 간수(澗水)는 산골 물, 또는 시내를 뜻한다. 간곡(澗谷)은 산골짜기를 말한다. ‘간촌’이라는 뜻은 산 중턱에, 비교적 산 깊은 곳에 형성된 마을을 의미한다.

정치영은 『지리지를 이용한 조선시대 지역지리의 복원』[2021]에서 “촌락 내부에는 주민들이 공동으로 이용하는 공간이 존재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우물과 방앗간이었다. 우물은 여성들의 중요한 정보 교환 장소로도 이용되었다. 수력을 이용하는 물레방앗간은 촌락 앞이나 옆을 흐르는 계류 변에 입지해 있었다.”라고 하였다. 물은 생존하는 데 필수이기에 산골 물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흔히 말하는 샘은 산꼭대기에서 발원하는 근원적인 물줄기를 의미하는데, 여기에서는 물줄기를 이루어 흐르는 산골 물을 의미한다. 섬처럼 생긴 섬말이라면 당연히 서촌(嶼村)이라 했을 것인데, 섬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 아니라 물이 생활하기에 충족한 정도였기에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형성 및 변천]

본래 부천시 고강동 20통 지역으로 고강선사유적공원 아래에 있었는데 주변을 공원으로 만들면서 사라졌다.

[자연환경]

샘말고강로132번가길 40[고강동 360], 고강로152번길 35[고강동 360-3] 일대로 옛 고강본동사무소가 있던 주변이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1.02 샘말 <참고문헌> <문헌><저자>김기빈</저자>, <서명 검색어='한국의 지명 유래'>『한국의 지명유래』</서명>1~4(<출판사항>지식산업사, 1990~1997</출판사항>)</문헌> <문헌><저자>이민우</저자>, <서명 검색어='한국지명사전'>『한국지명사전 1993-1994』</서명>(<출판사항>한국교열기자회, 1993</출판사항>)</문헌> <문헌><서명 검색어='부천 문화의 재발견'>『부천 문화의 재발견』</서명>(<출판사항>부천문화원, 1996</출판사항>)</문헌> <문헌>한도훈, 부천의 땅이름 이야기(부천문화원, 2001)</문헌> <문헌><서명 검색어='부천시사'>『부천시사』</서명>(<출판사항>부천시사편찬위원회, 2002</출판사항>)</문헌> <문헌><서명 검색어='내 친구 부천'>『내 친구 부천』</서명>(<출판사항>부천시, 2007</출판사항>)</문헌> <문헌>인천,부천역사(http://cafe.naver.com/bcmoonhwa.cafe)</문헌>
2010.12.18 샘말 1) <문단><지명 검색='1' 검색어='샘말'>샘말</지명>은 <서명 검색='0' 검색어=''>『조선지지자료』</서명>에는 <지명 검색='0' 검색어=''>윤촌(潤村)</지명>으로 표기되어 있어 물가 옆에 있는 마을임을 나타내 주고 있다. 우리말로는 <지명 검색='1' 검색어='섬말'>섬말</지명>로 표기되어 있다. <지명 검색='1' 검색어='샘말'>샘말</지명>은 샘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는 <지명 검색='1' 검색어='섬말'>섬말</지명>이 샘말로 바뀐 것으로 여겨진다. <지명 검색='1' 검색어='섬말'>섬말</지명>은 섬처럼 물길이 휘돌아 가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지명 검색='1' 검색어='웃말'>웃말</지명>에서 보았을 때 마을이 마치 섬처럼 보였으므로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된다.</문단> ーー> <문단><지명 검색='1' 검색어='샘말'>샘말</지명>은 <서명 검색='0' 검색어=''>『조선지지자료』</서명>에는 <지명 검색='0' 검색어=''>간촌(澗村)</지명>으로 표기되어 있어 물가 옆에 있는 마을임을 나타내 주고 있다. 우리말로는 <지명 검색='1' 검색어='섬말'>섬말</지명>로 표기되어 있다. <지명 검색='1' 검색어='샘말'>샘말</지명>은 샘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는 <지명 검색='1' 검색어='섬말'>섬말</지명>이 샘말로 바뀐 것으로 여겨진다. <지명 검색='1' 검색어='섬말'>섬말</지명>은 섬처럼 물길이 휘돌아 가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지명 검색='1' 검색어='강상골'>강상골</지명>이나 <지명 검색='0' 검색어=''>응구리</지명>에서 보았을 때 마을이 마치 섬처럼 보였으므로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된다.</문단> 2) <소표제>[형성 및 변천]</소표제> <문단><지명 검색='1' 검색어='샘말'>샘말</지명>에는 해방 후까지 다섯 채 가량의 초가가 있었고, 이씨·김씨·장씨가 흩어져 살았다. 마을 한가운데에는 대동우물이 있었고, 샘 양쪽에는 텃밭이, 샘 앞에는 물이 흘러내려 형성된 텃논이 있었다. 마을에는 <인명 검색='0' 검색어=''>연안이씨</인명> 장손이 살던 ㅁ자 형태의 큰 집이 있었는데 1914년 일제강점기에 행정명이 개칭될 때 이 집 행랑채가 <기관 검색='0' 검색어=''>오정면 면사무소</기관>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지명 검색='1' 검색어='샘말'>샘말</지명> 뒤에 있던 <지명 검색='0' 검색어=''>샘말산</지명>은 <인명 검색='0' 검색어=''>연안이씨</인명> 종중산으로 영의정을 지낸 <인명 검색='0' 검색어=''>연안이씨</인명> <인명 검색='0' 검색어=''>이천보</인명>의 묘가 있었다.</문단> --> <문단><지명 검색='1' 검색어='샘말'>샘말</지명>에는 해방 후까지 다섯 채 가량의 초가가 있었고, 이씨·김씨·장씨가 흩어져 살았다. 마을 한가운데에는 대동우물이 있었고, 샘 양쪽에는 텃밭이, 샘 앞에는 물이 흘러내려 형성된 텃논이 있었다. 마을에는 <인명 검색='0' 검색어=''>연안이씨</인명> 장손이 살던 ㅁ자 형태의 큰 집이 있었는데 1914년 일제강점기에 행정명이 개칭될 때 이 집 행랑채가 <기관 검색='0' 검색어=''>오정면 면사무소</기관>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지명 검색='1' 검색어='샘말'>샘말</지명> 뒤에 있던 <지명 검색='0' 검색어=''>샘말산</지명>은 <인명 검색='0' 검색어=''>연안이씨</인명> 종중산으로 영의정을 지낸 <인명 검색='0' 검색어=''>연안이씨</인명> <인명 검색='0' 검색어=''>이천보</인명>의 묘가 있었다.</문단> <문단><지명 검색='0' 검색어=''>샘말산</지명>은 <지명 검색='0' 검색어=''>굴운산</지명>에서 뻗어나온 산이다. <지명 검색='0' 검색어=''>굴운산</지명>에서 한 봉우리가 뻗어져나와 <지명 검색='0' 검색어=''>샘말산</지명>이 된 것이다. 그 <지명 검색='0' 검색어=''>샘말산</지명>아래 <지명 검색='1' 검색어='샘말'>샘말</지명>이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1970년 지도를 보면 <지명 검색='0' 검색어=''>굴운산</지명>이 있고, <지명 검색='0' 검색어=''>굴운산</지명> 동남쪽 아래 <지명 검색='0' 검색어=''>샘말산</지명>의 위치가 명확히 나타나 있다. <지명 검색='0' 검색어=''>굴운산</지명> 자락 아래 <지명 검색='0' 검색어=''>고강로</지명> 옆에 <지명 검색='0' 검색어=''>샘말산</지명> 자락이 조금 남아 있어 <지명 검색='0' 검색어=''>샘말산</지명>의 흔적을 증명해 주고 있다. 현재 <지명 검색='1' 검색어='부천시'>부천시</지명> 지도에는 <지명 검색='0' 검색어=''>굴운산</지명>을 <지명 검색='0' 검색어=''>샘말산</지명>으로 잘 못 표기하고 있다.</문단> 3) <소표제>[현황]</소표제> <문단>지금의 <지명 검색='0' 검색어=''>고강동 360번지</지명>와 360-3번지 일대로, 아파트와 옛 <기관 검색='0' 검색어=''>고강본동사무소</기관> 근방이다.</문단> --> <문단>지금의 <지명 검색='0' 검색어=''>고강동 360번지</지명>와 360-3번지 일대이다.</문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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