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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601006
한자 長-
영어공식명칭 Jangmal|Jangmal Village
이칭/별칭 장촌(張村),간데미,중말,중리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161번길 22[중동 721]|중동 748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경태권혜령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장말 -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161번길 22[중동 721]|중동 748지도보기
성격 마을

[정의]

경기도 부천시 중동에 있었던 자연 마을.

[개설]

장말은 장촌(張村), 간데미, 중말, 중리라고도 한다.

[명칭 유래]

장말은 현 장말어린이공원 일대이다. 장씨 마을의 줄임말로 덕수장씨(德水張氏)가 여기에 집성촌을 이루고 살아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풀이이다. 덕수장씨의 시조 장순룡의 16세손인 장몽기[혹은 13세손 장여진]가 경기도 평택에서 이곳으로 옮겨 와 조선 중기 이후 400여 년 동안 살아왔기 때문으로 ‘장말’, 즉 ‘장씨촌’으로 불렀다고 한다.

또 하나는 장말의 장자는 ‘긴 장(長)’ 자로 성씨 ‘장(張)’ 자와 다르다. 이는 곧 장씨가 정착하기 전에도 ‘장말’로 불렸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장말은 마을이 동서로 길게 늘어져 있는 ‘긴말’을 한자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장말이 동서로 길게 늘어진 산등성이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부천시사』[2002]의 주장이 있다. 그러나 1913년 지도에 장촌이라 기록되어 있고, 장말도당굿과의 연계성, 세거한 장씨들의 증언 등을 종합할 때 덕수장씨가 여기에 집성촌을 이루고 살아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형성 및 변천]

덕수장씨가 집성촌을 이루면서 형성된 것으로 보기도 하고 이전부터 길게 늘어서 있는 마을로 형성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적어도 1913년 이전에 덕수장씨 집성촌이 형성되면서 번성한 것으로 보인다.

[자연환경]

거마산 줄기 바로 아래에 있는 산을 상살미라고 하고, 상살미 끝 언저리에 있는 마을을 장말이라고 한다. 장말은 산자락에 있으면서도 나무가 별로 없었다. 외딴말이나 일곱매집 같은 경우는 한강수리조합이 생기기 전까지 큰 해일이 밀려오면 농토가 바닷물에 잠겨 버려 장말로 피난 나오기 일쑤였다고 한다.

장말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의 농장이 주를 이루었던 곳이다. 농사를 지어 대규모로 지은 쌀을 타작하는 타작 마당이 ‘사래이의 들마당’이라는 땅이름으로 굳어질 만큼 그 규모가 컸다. 사래이 쪽으로는 복숭아밭이 있었다.

[현황]

장말은 부천시 중동로161번길 22[중동 721]와 중동 748번지 일대의 마을로 부천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도당굿이 남아 있는 곳이다. 장씨 마을 사람들이 함께하는 굿을 의미하는 장말도당굿은 초기에는 덕수장씨의 조상신을 숭배하는 제의 형식으로 행해지다가 차차 마을 공동체 성격으로 발전하여 추수 감사의 성격과 마을의 안녕, 평안을 기원하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도당할아버지는 장말 장씨 문중의 남자에게 세습되어 내려오는데 1960년대 중반 새마을운동에 밀려 그 맥이 끊기기도 하였다. 1992년 장말도당굿보존위원회가 결성되면서 다시 재개되어 매년 1회씩 굿을 올리고 있다. 1990년 10월 10일 경기도도당굿이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중동신도시로 개발되어 장말 일대에는 복사골마을·중동시장·장말어린이공원 등이 들어서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1.02 장말 <참고문헌> <문헌>한도훈, 부천의 땅이름 이야기(부천문화원, 2001)</문헌> <문헌><서명 검색어='부천시사'>『부천시사』</서명>(<출판사항>부천시사편찬위원회, 2002</출판사항>)</문헌> <문헌><서명 검색어='부천시의 역사와 문화유적'>『부천시의 역사와 문화유적』</서명>(<출판사항>부천시·한양대학교 문화재연구소, 2005</출판사항>)</문헌> <문헌><서명 검색어='내 친구 부천'>『내 친구 부천』</서명>(<출판사항>부천시, 2007</출판사항>)</문헌>
2010.12.20 장말 1) <소표제>[현황]</소표제> <문단><지명 검색='1' 검색어='장말'>장말</지명>은 <지명 검색='1' 검색어='중동'>중동 721번지</지명>와 748번지 일대의 마을로 유일하게 도당굿이 남아 있는 곳이다. 장씨마을 사람들이 함께 하는 굿을 의미하는 <지명 검색='1' 검색어='장말'>장말</지명> 도당굿은 초기에는 <인명 검색='1' 검색어='덕수장씨'>덕수장씨</인명> 조상신을 숭배하는 제의 형식으로 행해지다가 차차 마을 공동체 성격으로 발전하여 추수 감사의 성격과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지명 검색='1' 검색어='장말'>장말</지명>에는 도당할아버지가 장씨 문중의 남자에게 세습되어 내려오는데, 1960년대 중반 새마을 운동에 밀려 그 맥이 끊기기도 했다. 1992년 <기관 검색='0' 검색어=''>장말도당굿보존위원회</기관>가 결성되면서 다시 재개되어 매년 1회씩 굿을 올리고 있다.</문단> --> <문단><지명 검색='1' 검색어='장말'>장말</지명>은 <지명 검색='1' 검색어='중동'>중동 709번지</지명>와 771번지 일대의 마을로 유일하게 도당굿이 남아 있는 곳이다. 장씨마을 사람들이 함께 하는 굿을 의미하는 <지명 검색='1' 검색어='장말'>장말</지명> 도당굿은 초기에는 <인명 검색='1' 검색어='덕수장씨'>덕수장씨</인명> 조상신을 숭배하는 제의 형식으로 행해지다가 차차 마을 공동체 성격으로 발전하여 추수 감사의 성격과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지명 검색='1' 검색어='장말'>장말</지명>에는 도당할아버지가 장씨 문중의 남자에게 세습되어 내려오는데, 1960년대 중반 새마을 운동에 밀려 그 맥이 끊기기도 했다. 1992년 <기관 검색='0' 검색어=''>장말도당굿보존위원회</기관>가 결성되면서 다시 재개되어 매년 1회씩 굿을 올리고 있다.</문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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