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6010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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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Jangseungbaegi|Jangseungbaegi Village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기도 부천시 삼정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경태,권혜령 |
장승백이 - 경기도 부천시 삼정동 | |
성격 | 마을 |
[정의]
경기도 부천시 삼정동에 있었던 자연 마을.
[개설]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며 마을에 들어오려는 악귀를 쫓기 위해 세워진 장승이 경인고속국도 너머[구 도로변]에 있었다. 장승은 커다란 고목을 숭배했던 원시신앙에서 비롯된 것으로 옛날 사람들은 장승에게 길을 떠난 가족의 안녕을 빌기도 하고 자식을 점지해 달라고 기원하기도 하였다. 또한 장승은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큰 거리에 세워 고을에서 고을까지의 거리를 새겨 넣어 이정표를 삼기도 하고 행정구역 경계를 표시하기도 하였다. 나그네는 장승을 보고 길잡이를 삼았으며 그 밑에서 봇짐을 풀어 놓고 쉬어 가기도 하였다. 장승백이가 있던 주변의 논들을 장승백이들이라 하였다.
[명칭 유래]
장승이 세워진 마을이어서 장승백이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삼정동 장승백이의 장승은 신흥동 70번지~신흥동 80번지[1910년 부평군 삼정리 89번지, 삼정리 90번지 일대]로 추정된다. 부천나들목에서 서쪽으로 300m되는 경인고속국도 너머의 구 도로변이다. 삼정에서 한다리를 거쳐 부평 황어장으로 가는 길목이어서 일찍이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오래전부터 부평을 왕래하던 길목이어서 장승의 역사는 오래된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장승백이에 세워졌던 장승의 모습을 본 사람은 현재 아무도 없다. 장승백이는 일제강점기 초기에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당시 수리조합의 수로를 내기 위해 없앴다는 얘기도 있다. 장승이 없어진 이유도 자세히 밝혀진 바가 없으나 마을 사람들은 장승이 서 있었다는 것만은 들어서 기억하고 있다.
[자연환경]
장승백이는 서북쪽으로는 대장들·김포평야가 맞닿아 있는 넓은 들과 가까이 있었다. 높은 지형이 아니라 낮고 평탄한 지형을 이루고 있었다. 장승백이의 동북쪽으로는 개롱지에서 흘러내린 물이 녹교지들을 거쳐 상아재들을 지나 경원세기 뒤에 있는 오정 천척골로 흘렀다.
[현황]
산업길사거리에서 서쪽 삼정교삼거리의 경인고속국도 방향에 장승백이가 있었고, 그 앞으로 들이 펼쳐져 있었다. 장승백이에는 현재 금속 정밀 공장들이 가득한 오정동 공업단지가 형성되어 있다. 부천나들목에서 북서쪽으로 장승백이길이 있어 마을의 흔적이 길 이름에 남아 있다. 2001년 10월에 삼정동 마을 사람들이 이곳에 장승들을 모아 세운 장승백이공원을 세우고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