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601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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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Jeolgogae|Jeolgogae Pass |
이칭/별칭 | 잘고개,사현(寺峴),사치(寺峙) |
분야 | 지리/자연 지리 |
유형 | 지명/자연 지명 |
지역 | 경기도 부천시 도당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경태 |
전구간 | 절고개 - 경기도 부천시 도당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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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지역 소재지 | 절고개 - 경기도 부천시 도당동 |
성격 | 고개 |
[정의]
경기도 부천시 도당동 개롱지에서 여월동 안골로 넘어가는 고개.
[개설]
절고개는 잘고개, 사현(寺峴), 사치(寺峙)라고도 한다.
[명칭 유래]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는 “졀ㅅ골[절골]은 상오정면 도당리에 있다.”고 되어 있다. 『부천시사』[2002]에 의하면 절고개의 지명 유래는 절이 있어 ‘절고개’라고 이름 붙인 것은 아니라고 한다. 전국의 많은 절고개가 그 땅 이름으로 인해 절이 있었다는 설화가 따라붙고, 그 설화는 절이 없어진 이유를 절에 빈대가 많아 스님이 절을 떠났다고 결말이 맺어지기 때문이다. 절이 있어 이름 붙여진 것이라기보다 ‘잘고개’가 변한 것으로 보고 있다. ‘잘’은 ‘작다’는 의미의 ‘잔’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므로 ‘잔고개’에서 ‘잘고개’로 바뀌고 이것이 ‘절고개’로 바뀐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도당의 장고개에 비해 그 크기가 작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쓰고 있기도 하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가 교체되면서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으로 인하여 많은 사찰이 철폐되었다. 조선 후기 당쟁의 격화와 뒤이은 세도정치로 정치 질서가 문란해지고 탐관오리들이 생겨났다. 이들은 토색질을 일삼았는데 그중 하나가 사찰을 유흥장화하여 사찰 재산을 탕진케 하여 이로 인해 사찰이 철폐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절이 없어진 이유를 절에 빈대가 많아 스님이 절을 떠났다고 하였다. 그러니까 절고개는 절이 있어 생긴 지명으로 볼 필요도 있다.
[자연환경]
절고개는 개롱지에서 안골로 넘어가는 고개로, 도당동과 약대동 등에서 여월·까치울·온수동 쪽으로 넘어갈 때 거쳐야 하였다. 절고개는 매봉을 등산하는 사람들의 등산로이면서 매봉 봉우리에 있는 군부대의 군사 도로로도 이용되고 있다. 군부대가 있어서 매봉 정상으로는 통하지 못한다.
[현황]
춘의산에서 보면 바깥쪽은 도당동 쪽이고 안쪽은 여월동 쪽이 된다. 도당산 백만송이장미원에서 옛 여월정수장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이 고개를 넘어 안골약수터를 거쳐 춘지봉으로 넘어간다. 약수터 주변을 시민들의 휴식터로 개발해 시민들이 수시로 찾는 곳이기도 하다.
수정일 | 제목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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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0 | 절고개 | 1) <소표제>[현황]</소표제> <문단><지명 검색='0' 검색어=''>춘의산</지명>에서 <지명 검색='1' 검색어='춘의동'>춘의동</지명>과 <지명 검색='1' 검색어='여월동'>여월동</지명> 경계 지점 동쪽 골짜기에서 형성된 지역으로, <지명 검색='0' 검색어=''>춘의산</지명>에서 보면 바깥쪽은 <지명 검색='1' 검색어='도당동'>도당동</지명> 쪽이고 안쪽은 <지명 검색='1' 검색어='여월동'>여월동</지명> 쪽이 된다. <지명 검색='1' 검색어='부천시 종합운동장'>부천시 종합운동장</지명>을 지나 <지명 검색='0' 검색어=''>서울</지명> 쪽으로 가다 <지명 검색='0' 검색어=''>까치울사거리</지명>를 지나면 <지명 검색='1' 검색어='까치울정수장'>까치울정수장</지명>이 위치하고 있다. 이곳이 <지명 검색='1' 검색어='안골'>안골</지명>이다.</문단> --> <문단>춘의산</지명>에서 보면 바깥쪽은 <지명 검색='1' 검색어='도당동'>도당동</지명> 쪽이고 안쪽은 <지명 검색='1' 검색어='여월동'>여월동</지명> 쪽이 된다.</문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