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601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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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甫淳 |
영어음역 | Choe Bosun |
이칭/별칭 | 문정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부천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강옥엽 |
[정의]
고려 후기 안남대도호부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예부상서를 지낸 최균(崔均)의 아들로, 형제로는 공부상서를 역임한 최보연(崔甫延)이 있다. 부인은 용구현부인 진씨(龍駒縣夫人 秦氏)로 합문지후(閤門祗候) 진중기(秦仲基)의 딸이다. 아들은 최윤칭(崔允偁)과 최윤개(崔允愷) 두 명으로, 장남은 내시합문지후(內侍閤門祗候)이고 막내는 국자박사겸직한림원(國子博士兼直翰林院)이다. 딸은 세 명인데, 장녀는 예부원외랑(禮部員外郞) 최씨에게 시집갔고, 두 명 역시 관인(官人)의 아내가 되었다. 최보순의 4세손으로 충선왕 때 지감찰사사(知監察司事)를 지낸 최성지(崔誠之)가 있다.
[활동사항]
최보순은 의종에서 고종 연간에 활약한 고려의 문신이다. 유화부(流化府)[지금의 전라북도 전주] 사람으로,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었으나 공부에 전력을 다하여 과거에 급제하고 황주 장서기(黃州掌書記)가 되었는데, 정사는 청백을 주로 하였다. 안남대도호부사(安南大都護府使)가 되었을 때 둑을 높게 쌓고 고랑을 터서 수화(水禍)를 제거함으로써 백성을 평안하게 다스렸다. 후에 여러 번 승직되어 소부감(小府監)이 되었으며 항상 제고(制誥)를 맡았었다.
1208년(희종 4) 금나라의 황제가 즉위했을 때 최보순이 축하문을 지었는데 “태수로서 강을 건너는 것은 진(晋)나라가 새로 왕조를 세운 것과 같고, 황제로의 등극은 주역에서 말한 바 나타난 용(龍)이 밭에 있다는 괘(卦)에 부합한다.”라는 문구가 있었다. 이것은 당시 금나라 임금이 형제간에 임금자리를 서로 쟁탈한 것을 폭로한 것이라 하여 중서성(中書省)에서 문책하여 최보순을 파면시켰다.
그러나 뒤에 이부시랑(吏部侍郞)이 되고, 1212년(강종 1) 우간의대부(右諫議大夫)로 과거를 주관하여 위대여(魏大輿) 등을 시취(試取)하였다. 이듬해 동지공거(同知貢擧)로서 지공거가 되어 동중서문하평장사(同中書門下平章事) 이주장(李柱長)과 함께 허수(許受) 등을 시취하였다.
1222년(고종 9) 참지정사로서 또 지공거를 맡았으며, 중서시랑평장사판병부사(中書侍郞平章事判兵部事)를 거쳐 이듬해 수문전대학사동수국사(修文殿大學士同修國史)를 역임하였다. 1227년 감수국사(監修國史)가 되어 수찬관 김양경(金良鏡)·임경숙(任景肅)·유승단(兪升旦) 등과 함께 『명종실록』을 찬수하였다. 이듬해 수태사판이부사(守太師判吏部事)에 올랐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문정(文定)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