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6019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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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睦一信-碑 |
영어의미역 | Memorial Stone for Mok Ilsin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기도 부천시 중동 1177[소향로 162] 부천중앙공원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유영자 |
성격 | 비|시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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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일시 | 2000년 |
관련인물 | 목일신 |
재질 | 화강석|마천석 |
높이 | 208㎝ |
너비 | 106㎝ |
소재지 주소 | 경기도 부천시 중동 1177[소향로 162] 부천중앙공원 |
소유자 | 부천시 |
[정의]
경기도 부천시 중동 부천중앙공원에 있는 동요 작가 목일신을 기리는 노래비.
[개설]
목일신(睦一信)[1913~1986]은 1913년 1월 18일 전라남도 고흥군 고흥면 행정리 425번지에서 장로교 목사며 독립운동가인 목치숙[일명 홍석]과 신애은 사이에서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60년부터 26년 간 경기도 부천시 범박동에 살면서 「자전거」, 「누가 누가 잠자나」, 「자장가」, 「비누방울」 등의 동요와 민요 400여 편을 작사하였다.
[건립경위]
2000년 10월 3일 부천시비건립위원회에서 26년 간 부천시 범박동에 살면서 어린이를 위한 동요 작사에 크게 공헌한 목일신을 기리기 위해 노래비를 건립하였다.
[형태]
목일신 노래비는 화강석 바위를 세워 바위 전면에 마천석을 깐 후 글자를 새겼다.
[금석문]
전면에는 동요 「자전거」의 가사가 새겨져 있다. 후면에는 목일신의 약력이 간단히 새겨져 있으며, 글씨는 정산 김세규가 썼다. 「자전거」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찌르릉 찌르릉 비켜나셔요/ 자전거가 나갑니다/ 찌르르르릉/ 저기 가는 저 영감 꼬부랑 영감/ 어물어물 하다가는 큰일납니다/ 찌르릉 찌르릉 비켜나셔요/ 자전거가 나갑니다/ 찌르르릉/ 오불랑 꼬불랑 고개를 넘어/ 비탈길을 스르륵 지나갑니다/ 찌르릉 찌르릉 이 자전거는/ 울아버지 사오신 자전거라오/ 머나먼 시골길을 돌아오실 제/ 간들간들 타고 오는 자전거라오"
[의의와 평가]
「자전거」는 목일신이 13세 되던 1926년 소학교 시절, 즉 지금의 초등학교 5학년 때 쓴 동요라고 하며, 1931년 5월에 발표되었다. 김광묵이 편찬한 『찌르릉 찌르릉 비켜나셔요』에 목일신이 「자전거」를 작사한 동기가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내가 보통학교 5학년 때 미국 선교회에서 우리 아버지에게 아주 멋진 자전거 한 대를 기증하였다. 나의 아버지는 그 자전거로 각 처의 교회를 순회하시며 교역의 일을 보셨는데, 쉬시는 날에는 나에게 양보해 주셔서 나는 시오리나 되는 보통학교를 그 자전거를 타고서 다니게 되었다. 하루는 그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갔다가 집으로 와서 지어 본 것이 동요 「자전거」이다. 그것을 『아이생활』에 발표했는데, 1년 후에 김대현 씨가 작곡하였다.”
1920년대 우리 문학사는 시대적 우울을 노래하던 암울한 시기였다. 이 시기에 어린 나이의 목일신이 작사한 동요는 아무런 도전도 받지 않고 순수한 동심이 담겨 있어 더 소중하다. 목일신은 1960년부터 부천시 소사구 범박동에 있는 신앙촌에 입주하여 주로 수필을 쓰며 「범박동가」를 짓기도 했다.
『재미있는 부천 이야기』를 쓴 최현수는 “그의 작품은 우리 민족의 넋을 잠재우고 흔들어 깨워주는 요람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또한 어린이와 민중의 정서를 개척하기에 힘썼으며, 「해병의 노래」 등 천지를 뒤흔드는 군가도 작사하여 용맹을 드높이는 데도 일익을 담당했습니다. 강한 이미지의 글을 발표한 은성[목일신의 호]에게 있어 제자들은 늘 따뜻한 사랑과 정성스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고 하였다.
21세기를 사는 오늘날의 어린이들은 상업주의의 영향으로 순수함을 잃어가고 있으며, 동요의 빛이 희미해져 가고 있다. 어린이들은 대중가요의 심한 노출로 인해 어른들의 노래에 익숙해져 있다. 이러한 시대에 만인이 오가는 공원에 건립된 목일신의 동심을 새긴 노래비는 어른들에게는 어린이의 순수를 돌아보게 하고, 어린이들에게는 관심을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