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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6A010204
지역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심곡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정지

“도서 6개면허구 육지 3면 1읍이 부천군이었는데 소사읍 하나를 가지고 부천시를 맨든 거에요. 어떤 면에선 참 기형적이지.”

해방 후 부천에는 소사극장이 들어섰고 이 때 심곡본동에 부천 최초의 노점상인 깡시장이 형성되어 청과물 도매시장의 문을 열었다.

근대에 들어 도시구획정리가 되면서 깊은구지 쪽으로 높게 붙어 있던 경인국도가 현재의 직선 모습으로 새롭게 포장되었고 노점상을 이루었던 거리에 자유시장이 들어섰다. 더불어 육상에 있었던 땡땡이 골목 또한 지하도로 탈바꿈하였다.

이처럼 근대시기에 이르러 급격한 도시발전과 함께 다사다난한 변화를 겪은 부천을 이정우 씨는 다음과 같이 회고하였다.

“원래 옛날에는 소사읍이 개봉동, 오리동까지였다고. 근데 오리동이 자유당(시절) 쯤에 영등포구로 편입됐어. 그래서 소사의 반쪽을 가지고 시로 만든거야. 당시 부천군이 소래면, 오정면, 계양면, 소사읍면 해서 4개 읍면이었고 도서지역이 덕적, 용유, 대부, 영흥, 영종 이렇게 6개면이었다고. 도서 6개면허구 육지 3면 1읍이 부천군이었는데 부천군이 도서는 다 옹진군으로 붙이고 소래면은 시흥군으로 붙이고 계양면, 오정면은 김포군으로 붙이고 그리고 소사읍 하나를 가지고 부천시를 만든 거예요. 어떤 면에선 참 기형적이지.”(이정우, 前 라이온스협회 사무총장, 68세)

만약 당시 부천의 대표자였던 공화당 국회의원이 부천 향토 출신이었다면 좀 더 규모 있는 도시가 되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한 이 할아버지는 이윽고 부천의 명물 중의 하나인 각궁 하나를 빼어 들었다. 그리고 아직 활 시위를 떠나지 않는 전통의 숨결이 부천에 남아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일까? 부천은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문화도시로 제3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정보제공]

  • •  이정우(前 라이온스협회 사무총장, 68세)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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